2024년 6월 15일 (토)
(녹) 연중 제10주간 토요일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강론자료

그리스도왕 대축일-나해-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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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신부 [gold] 쪽지 캡슐

2000-11-25 ㅣ No.214

연중 제 34 주일 (그리스도왕 대축일 )

        

          다니엘 7,13-14   묵시 1,5-8    요한 18.33-37

    2000. 11. 26.

주제 : 내가 되고 싶은 왕

 

한 주간 잘 지내셨습니까?

컴퓨터 혼란 문제로 전혀 시작할 것 같지 않았던 2000년이 어느 덧 한 달을 남겨놓은 때에 도달했습니다. 올 초만 하더라도 세상이 망할 것처럼 시끌벅적했었는데, 우리는 근 11달을 보내고, 연중 34주일을 맞았습니다. 계산 방법이 조금 다르긴 합니다만, 이번 주간은 교회 달력으로는 한 해를 정리하는 주간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며 살았던 올 한 해가 하느님에게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 돌이켜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오늘은 우리 신앙인 삶의 스승,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드리는 특별한 날이며, 그 분을 왕이라고 부르는 날입니다. 하지만, 오늘 축제일의 명칭, '그리스도왕 대축일'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실제 삶과는 걸맞지 않는 이상한 주일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사용하는 언어 '왕'과, 신앙에서 이야기하는 언어 '왕'이 표현은 같더라도 그 의미는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일반적인 의미 '왕'의 뜻을 국어사전은 '군주 또는 임금'이라는 말로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사용하는 언어 왕은 민주주의 시대에 사람들이 선출하는 대통령보다 훨씬 더 강하고 세상에 비교할 것이 없는 절대적인 권리를 지닌 사람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모습은 로마 제국 황제의 대리인으로 와 앉은 빌라도 총독에게 죄인으로 끌려와 심문 당하는 모습입니다. 그런 비참한 분을 가리켜 신앙에서는 왕이라고 부릅니다.

 

신앙을 귀중하게 생각하지 않거나 우리가 살아가는데 별로 중요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예수님을 왕이라고 부르는 일에 따로 질문하지도 않고 그 의미를 생각해보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보통의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길만한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것보다도 내가 투자한 주식 값이 떨어졌다거나 환율이 올랐다거나 하는 소리, 기름 값이 또 오를지도 모른다는 소리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이렇게 일상적인 삶에 관심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왕이라고 부르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저도 젊기는 합니다만, 저보다 더 젊은 사람들이 갖는 습성의 하나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튀는 것'입니다. 튄다는 것은 내가 보통 걸음으로 지나가도 주변의 사람들이 나에게 시선을 집중해주기를 바라는 행동입니다.  그와 같은 일을 바라는 사람들은 연예인을 커다란 직업으로 여기고, 사람들의 인기를 받을 수 있는 일을 찾아 헤맵니다. 이런 행동은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알려주러 오신 '사랑을 실천하신 왕' 예수님의 삶의 태도와는 어울리지 않는 일입니다.  현대인의 시각에서 본다면, 예수님은 왕이 아니었고, 왕의 자격도 없었으며, 다른 사람들이 부러움의 눈초리로 쳐다볼 만한 특별한 일도 하지 않은 '실패한 인생의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그렇게 인간적으로 분석하고 규정할 수 있는 예수님의 삶에 대하여 그리스도교 신앙에서는 '왕'이라고 신앙으로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그 사실을 알고 시작했거나 또는 모르고 시작했거나 간에 신앙의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삶을 본받을 것을 반복해서 요청합니다.  그렇게 두 가지 판단아래서 이리저리 헤매는 것이 신앙인이 가는 삶의 어려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삶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나머지는 신앙에 의한 것입니다.  인간의 시각으로 보면 신통치 않은 예수님이 어떤 일을 하실 분인지 다니엘 예언서는 아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큰소리치는 사람, 권력을 한 손아귀에 틀어쥔 현세의 왕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구름을 타고 오시며 언제인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세상 모든 민족이 그분에게 영광과 존경을 바치는 분으로 등장한다는 것이 신앙인의 눈으로 바라본 왕이며,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그분에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물론 그 왕은 인간의 왕, 총독 앞에서 죄인으로 서셨던 분이었고, 십자가에서 자신의 목숨을 바쳐 죽음으로써 우리에게 구원의 선물을 안겨주신 분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 살아가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의 왕'으로 고백한다면, 그에 알맞은 행동을 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삶의 결과로 찾아오는 영광은 적당히 하는 눈가림으로서 우리에게 오는 영광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하느님 앞에서 완벽한 삶을 살지는 못합니다.  그렇다고 '일부러 실망하면서 살 필요'도 없는 일이 그것입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대로 신앙인의 삶에 성실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사랑의 실천으로 기억하는 우리도 삶에서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며 그들을 위해서 잠시나마 기도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런 행동을 올바로 할 줄 아는 것이 짧거나 긴 인생을 지내며 '진짜 왕이 될 수 있는 비결'이며, 남들이 정말로 부러워할 만한 '튀어 보일 수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셨던 사랑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이 담긴 성서를 올바른 자세로 대하겠다는 다짐과 실천도 필요한 일입니다.

 

잠시, 올해를 지내면 나는 예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성서를 얼마나 자주 보았는지, 삶의 반성을 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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