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일 (토)
(홍)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강론자료

연중 32 주일-나해-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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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신부 [gold] 쪽지 캡슐

2000-11-12 ㅣ No.207

연중 32 주일 (나해)

 

            1열왕 17,10-16    히브리 9,24-28    마르 12,38-44(또는 41-44)

     2000. 11. 12.

 

주제 : 하느님은 우리에게서 무엇을 원할까?

 

이젠 겨울이 가까워졌습니다.

건강 조심하시고 잘 살피셔야 늘 맞이하는 시간도 조금이나마 더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몸을 움직이는 것이 예사롭지 못하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삶의 모범을 남기는 일도 쉽지 않겠지만, 하루를 살아가는 자신의 몸도 비슷한 길을 걸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오늘은 연중 32주일입니다.  

교회의 한 해는 연중 주간 34주간으로 끝납니다. 달력으로 표시되는 한 해가 마감되기 전에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그래서 올해도 ’석 주일’밖에 남지 않은 시기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한해를 마감한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 우리는 내가 만든 인생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아름다움을 보존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아직 아름답지 않다면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지난 주일에는 단풍 이야기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물론 말은 쉽게 할 수 있습니다만, 그 삶의 정신대로 사는 일이 쉽지는 않은 일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은 결코 편하지 않습니다. 항상 행복하고 항상 즐거운 일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이 각자 처한 입장에 따라서 그 판단을 달리할 수도 있습니다만 이 말은 공통적일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은 크게 변하지 않습니다. 옛날에 흔히 쓰던 말대로 천지개벽이 이루어진다면 몰라도 어제와 비슷한 삶이 오늘의 삶이고, 올해를 바탕으로 해서 내년에도 살게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변화 없는 것 같고, 반복되는 듯한 모습 가운데서 어떤 모양으로 살아야 잘 산 것인지, 하느님에게서 잘 살았다는 평가를 얻을 수 있는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이런 갈등과 고민에 답을 주는 것이 오늘 열왕기에 나오는 사렙다 여인의 자세와 마르코 복음에 나오는 ’렙톤’ 두 개를 봉헌한 여인에게서 볼 수 있는 삶의 자세입니다.  가난한 것은 누구나 싫어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부자가 되려고 애쓰고 어떻게 하면 내 주변에 재산을 더 모을 수 있을까 하는 여러 가지 궁리를 합니다.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사람이라는 생명체가 가진 한계입니다. 그러므로 복잡하고 힘든 삶에서 효과적으로 지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찾는 일은 참으로 지혜로운 자세입니다.

 

사람의 목숨은 ’소 힘줄’보다도 질기다는 말을 우리는 가끔씩 사용합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이 그 상황을 변화시키려고 애쓸 때 우리는 그런 말을 씁니다. 그렇게 애쓰는 모습이 좀 더 나은 결과를 맺으려면 사람이 노력하는 일에 하느님께 대한 자세를 살펴야한다고 말하는 것이 오늘 1독서와 복음에 나오는 이야기의 공통점입니다. 여러분은 그 공통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몇 마디로 이야기하면, 삶의 중심을 하느님께 두라는 이야기입니다.  사렙다 마을의 과부는 무슨 이유로 엘리야 예언자의 말대로 했을까?  복음에 나오는 가난한 과부는 무슨 마음이 있어 자신의 전재산인 ’렙톤’ 두 개를 헌금통에 넣었을까?  우리가 함부로 단정할 수 없는 마음의 자세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밖에 할 말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삶의 자세를 읽으신 하느님이 합당한 선언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삶에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려고 애씁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 얼마나 많이 우리의 고집이 들어가는지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고집 없이 살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목소리를 높이어 내 생각만이 옳고 다른 사람의 생각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좋지 않은 일입니다.

 

바오로 사도께서 고린토에 사는 사람들에게 권했던 삶의 자세,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1고린 10,31)’ 사는 자세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삶을 평가해 주실 분은 하느님이시기에 ’오로지 나 ’ 하나만 만족하는 삶을 살아서는 하느님의 선한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삶에서도 만족하고, 하느님의 자비도 기대할 수 있는 삶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오늘 독서와 복음에 나오는 삶의 자세를 알아듣고 그에 합당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연중 32 주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잠시 우리 삶을 기쁘게 받아주시도록 기도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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