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일 (토)
(홍)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강론자료

사순 1 주일-나해-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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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0-03-11 ㅣ No.192

사순 제 1 주일 ( 나해 )

         

         창세기 9,8-15   1베드로 3,18-22  마르코 1,12-15

     

     2000. 3. 12.

주제 : 유혹과 축복

 

오늘 하루도 우리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오전(오후) 행사를 거친 다음, 하느님을 찬미하고 우리 생활을 새롭게 다짐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이 자리에 모였읍니다.  몸은 이 자리에 와 있지만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생각은 여러 가지입니다.  미사가 빨리 끝나기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미사 후에 누군가를 만나서 담판 지을 일이 있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그 지혜를 청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오늘만큼은 미사에서 ’성가(聖歌)’를 제대로 불러야 하겠다고 다짐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이번 한 주간도 하느님이 주시는 은총을 받기 위해서 몸과 마음가짐을 추스르겠다고 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한 자리에 모여 있으면서도 여러 가지 생각과 여러 가지 목적을 갖고 동일한 시간을 지냅니다. 같은 시간을 지내면서도 꼭 필요할 마음은 ’내가 가진 이 마음이 하느님의 뜻에 일치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자세를 올바로 갖는다면 오늘 하루는 물론이고 이번 사순 1 주간에도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사순 첫 번째 주일입니다.  일년에 사순 시기 주일은 여섯 째 주일까지 있읍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부활 축일에 가까워질 것이고 그 때에 가서 우리가 사순절을 어떻게 지내왔는지 돌아보는 것은 우리가 받을 축복의 모습입니다.

 

이 사순 시기의 첫 번째 주일에 하느님은 ’계약’을 통하여 당신의 축복을 이야기하십니다.  사람들도 계약이라는 말을 씁니다. 그러나 사람이 사용하는 계약과 하느님께서 사용하시는 계약에는 차이점이 있읍니다. 사람은 계약의 성사 시간을 조급하게 정해놓는 데 비해서 하느님은 좀 더 여유 있게 기다려주신다는 점이고, 사람의 계약은 재산이나 명예에 관한 것으로 그 결과를 드러내지만, 하느님의 계약은 우리가 죽음을 택할 것인지 생명을 택할 것인지 우리의 선택대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독서 창세기의 말씀은 오랜 세월 전 ’노아 시대’ 홍수를 통하여 한바탕 인류를 심판하고 난 이후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이 감탄하면서 만들어놓은 세상이 올바른 길로 가기를 바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가진 경직된 생각과 자세가 아무 말도 못하고 인간에게 모든 것을 헌신했던 세상에게 심판을 가져왔읍니다. 사람들 때문에 땅이 고생한 것입니다. 그 이후에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일방적인 계약, 인간을 위한 계약을 다짐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다시는 홍수로 땅을 멸하지 않으리라’는 하느님의 선언은 그 말씀을 침착하게 전해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서글픈 마음마저 갖게 합니다.  애매한 땅을 심판해서라도 인간이 마음을 돌려 좋게 바뀌기를 바라셨을 하느님이시지만, 지금의 세상이 하느님의 마음에 꼭 든다고 그 누가 인정하겠읍니까?

 

계약에는 쌍방이 수용할 조건이 있읍니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에 대해서 빌려간 사람은 정해진 기간 안에 그 돈을 돌려 갚을 것과 때가 되면 이자를 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이 인류와 맺은 계약에는 목숨을 빌려준 것만큼 적당히 사용하고 나서 때가 되었을 때, 다른 모습이기는 하겠지만 합당한 이자를 붙여 반환해야 할 책임이 사람에게는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올바로 깨닫는다면, 이 세상에서 살다가 하느님이 계신 곳에 가야 하는 순간은 그 이자를 셈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복음에서는 그 이자를 올바로 셈하기 위한 방법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인간으로서 고생을 시작하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읍니다. 성령의 작용이기는 합니다만, 예수님에게 유혹하는 자가 다가옵니다. 그러나 우리 사람들에게는 유혹하는 자가 그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읍니다. 친절하게도 유혹하는 자가 힘들까봐 우리가 그 유혹하는 자를 향하여 제 발로 다가가기 때문입니다. 유혹자가 예수님을 유혹하는 데에 사용했던 방법은 마태오나 루가 복음서를 읽어보면 알 수 있읍니다.  마르코 복음사가의 생각에는 그 유혹의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유혹을 이겨내려는 예수님께 들짐승들도 평화로웠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시중을 들었다는 말씀이 더 중요한 것이기에 그것을 전하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도 비슷한 경험을 할 수는 있읍니다. 그것은 유혹의 과정을 잘 이겨낸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共感)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이면서도 인간을 위하여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본보기를 보이셨던 예수님은 사람들을 향하여 외칩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이 말씀대로 다른 사람에게도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자신도 그렇게 함께 사는 것, 이것이 유혹을 이겨낸 사람이 해야 할 일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언제 유혹의 길로 갈 거라고 여러분은 생각하십니까?

욕심을 가진 경우가 그 한 가지일 것입니다.  조금 더 명예를 얻으려 하고 남 보다 맛있고 기름진 것을 더 먹으려고 하고 남보다 더 많은 권력을 가지려고 할 때에, 우리는 다가올 생각을 품고 있지도 않을 유혹하는 자를 향하여 우리가 애써 다가가는 것입니다.  유혹으로 다가가는 세 가지 경우에는 공통점이 있읍니다. 전부 다 우리 몸과 관련된 것입니다. 전부 다 우리 생각과 관련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순절을 지내며 우리가 몸을 올바로 관리하고 생각을 바르게 다스리겠다고 다짐한다면, 적어도 우리는 유혹하는 자에게로 우리의 몸을 돌리지는 않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산 사람의 결과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을 우리가 이 사순절을 잘 지내고 난 다음, 우리에게 올 부활의 기쁨일 것입니다.

 

오늘은 사순 첫 번째 주일입니다.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마음, 지금 다짐하는 생각대로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도움을 함께 간청할 일입니다. 유혹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찾아는 것이듯이, 하느님이 준비하고 기다리시는 축복도 우리가 다가가야만 얻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도 하느님이 준비하시는 축복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복된 삶이 될 수 있기를 함께 기도해야 하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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