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5일 (토)
(녹) 연중 제10주간 토요일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강론자료

주님 세례축일-나해-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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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0-01-08 ㅣ No.180

주의 세례 축일 ( 나해 )

          이사 42,1-4.6-7   사도 10,34-38   마르코 1,7-11

     

     2000. 1. 9.

     

주제 : 세례 받은 사람으로 산다는 것

 

오늘은 예수님이 받은 세례를 기억하는 축일입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예수님의 세례는 자신이 누구이고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 세상에 등장하셨는지를 알려주는 사건의 한가지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공현(公顯) 사건의 하나입니다.  지난 주일에 우리가 기억했던 사건, 동방에서 온 박사들에게 모습을 보여주신 일이 자연의 징조를 통해서 하느님의 업적을 알아볼 수 있는 사건이었다고 한다면, 오늘 기억하는 세례는 공동체로 함께 머무는 사람들에게 이제는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를 알려주는 일의 한가지입니다.

 

이 자리에 함께 하신 여러분 대부분은 이미 세례성사를 받고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그 하느님을 따르려면 어떤 생활을 해야 하는지는 모두 아시는 분들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실행하고 있지 못하다고 우리가 신앙인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행동과 일치하는 않으면서도 말을 먼저 할 수 있는 이 소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실천하지 않아도 좋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삶에서는 우리가 자주 반복해서 듣고 강조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중 중요한 것을 선택하라고 하면, 가족에 대한 사랑일 것이고, 우리가 가진 능력을 올바르게 발휘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세례를 받고 사는 사람이 가야 할 길은 어떤 것일까 질문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응답하시겠습니까?  문제가 쉽지 않은 것만큼 대답도 간단히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한창 어려워지기 전에 ’잘 나가던 사업자’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마이더스의 손’을 가졌다고 하듯이 하는 일들마다 성공과 기쁨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렇게 되자 사람이라면 많은 경우 그렇듯이 욕심이 차츰 늘어만 갔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끊임없이 속으로 질문했습니다. ’내가 과연 욕심 많은 사람인가? 나 혼자만 잘 되자고 우기는 사람인가?’  그렇게 질문하면서도 그는 대답을 항상 준비하고 살았습니다. ’나는 욕심 많은 사람은 아니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뿐이다’.  그렇게 조금씩 자신이 하던 일의 범위를 늘려만 가던 그는 자신이 야망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은근한 자랑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뜻하지 않게 한가지 약속을 어기는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바쁜 일에 쫓기다가 그는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았고, 다른 일들 때문에 바쁘다는 이유로 대수롭지 않은 일에는 하나씩 둘씩 약속시간을 늦추기 시작했습니다. 정말로 합당한 이유 때문에 그렇게 하면서도 그는 아무런 미안한 마음도 갖지 않았습니다. 정말 합당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그에게 섭섭한 감정을 갖던 사람들 하나, 둘이 그를 떠나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작은 일에도 성실하게 해 주지 않으니 큰 일은 맡기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이더스의 손’을 가진 그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사람들이 자신에게서 멀리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땐, 문제의 크기가 보통은 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는 심한 배신감을 간직한 채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원망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되자 한창 잘 나가던 ’마이더스의 손’은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지내던 그는 옛날에 친하게 지냈던 사람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질문했죠. ’이 곤경에서 벗어나려면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으면 좋겠느냐고?...’  그 질문을 들은 친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뼈를 깎는 심기일전이 필요하네. 이제까지 마음대로 된다고 생각했던 일에서 과감하게 탈피하게. 과거의 아득한 영광에서 벗어나 새롭게 시작해야 하네. 그렇게 시작한다면 아프기도 하겠지만 뭔가 달라지지 않겠나?  그 방법은 머리 좋은 자네가 찾아보게 하면서...!’

 

세례는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야만 하는 우리에게 새로운 길, 인간의 힘을 넘는 또 다른 힘이 있음을 알려주는 하느님의 나침반입니다. 우리는 동서남북을 구별하고, 찾아가는 길의 올바른 방향을 이용해서 나침반을 이용합니다.  그러나 적당한 순간이 되면 우리는 그것을 믿지 않죠. 경험에 의존하게 되고, 내가 아는 지식을 따릅니다. 그때에 문제가 생긴다면 우리가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하느님의 나침반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마음에 새겨진 것이고, 마음의 눈으로 봐야만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심어진 하느님의 나침반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때는 세례를 받은 다음이고,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겠다고 다짐하는 순간부터입니다.

 

하느님의 나침반이 제대로 움직이는 사람들은 독서에서 제시하는 삶의 방법을 따르려는 사람들입니다. ’바른 인생길을 펼치고, 남들 앞에서 고함을 지르지 않으며, 아무리 어려운 곤경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올바른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만 행동하고, 책임 없는 말과 행동이라고 함부로 표현한다면, 그것을 세례 받은 사람들이 자신 안에서 움직이는 나침반의 역할을 애써 무시하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이 무엇인지 압니다. 이렇게 아는 것은 신약성서에 나오는 복음이 네 개라는 것을 아느냐고 묻는 것은 아닙니다.  그 복음이 제시하고 우리가 따라 살아야 할 삶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알아듣고 실천하기로 다짐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세례의 힘이고, 그것이 하느님의 자리를 간직한 우리에게 내려오시는 하느님의 힘인 것입니다.

 

세례 받고 사는 사람이 올바로 산다면, 우리의 삶을 마치는 순간이 될 때 우리는 하느님에게서 이러한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과 딸, 내 마음에 들었던 아들과 딸이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데 부끄럽지 않은 한 주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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