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일 (토)
(홍)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강론자료

연중 31 주일-가해-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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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1999-10-30 ㅣ No.161

연중 제 31 주일 (가해)

        말라기 1,14ㄴ-2,2ㄴ.8-10 1데살로니카 2,7ㄴ-9.13  마태 23,1-12

 1999. 10. 31.

주제 : 올바른 삶을 위하여 갖추어야 할 자세

 

오늘은 전교의 성월, 10월을 보내는 마지막 날입니다.  꽤 오래 전에 유행했던 ’10월의 마지막 밤’을 노래하던 유행가를 기억하시는 분이 있다면 우리가 할 일도 많았는데 그 많던 시간이 쏜살같이 우리 곁을 스쳐 지나버린 듯 하다는 허전한 생각을 갖게도 합니다. 그만큼 우리가 이루고 싶은 일은 많은데 시간이 없다는 소리이니 좀 더 바쁘게 살아야 한다는 소리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여러분은 현실에서 얼마나 기쁘게 사십니까?  혹시 자신이 또는 자신이 잘 아는 사람이 곁에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 기쁘셨던 일은 있었습니까?  질문이 어렵지 않다면 대답을 쉽게 할 수 있을 것이고, 그 대답을 안다면 늘 기쁘게 살 수 있는 비결도 우리는 아는 셈입니다.  질문과 응답을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는 해 봤습니다만, 실제 생활은 말처럼 간단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하느님의 말씀은 ’참으로 행복을 우리 곁에 붙잡아 두기 위한 방법은 어떤 것일까?’를 알려주시는 말씀입니다. 물론 겉으로 드러난 표현은 위협이고, 내가 딛고 서 있는 기초가 막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는 겁을 잔뜩 갖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드러나는 표현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 귀에 들려오는 소리대로만 받아들인다면, 두 발을 딛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서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현실을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행복의 길로 더 가까이 갈 수 있겠는지, 아니면 지금 살고 있는 행복에서도 멀어질 수 있는지 구별될 것입니다.

 

스스로를 달래는 뜻에서라도 오늘의 말씀을 그렇게 생각해보지만 그것이 위협인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남들보다 나은 위치에 있고, 다른 사람들보다 더 힘있는 위치로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더 피부에 와 닿을 것입니다.  말라기 예언서와 마태오 복음의 이 부분을 듣고 생각할 때마다 제가 느끼는 위협은 아마도 여러분이 오늘 듣는 말씀으로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할 것입니다. 아무리 아니라고 하더라도 저는 여러분 앞에서 큰소리치고 드러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서 말씀에 이르면 저는 여러분들에게 부탁합니다.  여러분의 기도 가운데 ’제가 올바른 사람으로 설 수 있도록 기억해 주시라’고 말입니다. 물론 많은 분들이 기억해주시고 함께 해 주셨기에 제가 오늘의 모습으로 그나마 서 있을 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삶의 본보기를 보인다는 것은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은 저마다 삶에서 기대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평가에 만족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같은 자리에서 술을 한잔하면, 좋아하는 이들은 ’분위기를 맞출 줄 안다’고 칭찬하고 그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저 사람은 저렇게 술 먹고 어울리기만 좋아해?’하고 묻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 사회에 ’놀부 땅 배’라는 말이 나온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위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면, 겉으로 드러내는 걱정의 말이 때로는 독침이 될 수도 있는 것이 세상에서 사용하는 말의 힘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본받지 말아라.  오늘 복음에 나오는 이 말씀은 참으로 두려운 것입니다. 자녀를 낳고 그 자녀를 기르는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비판에서 자유롭다고 말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말하는 대로 본보기를 보이는 것은 벙어리가 아니면 실천이 불가능 할만큼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어려운 것을 알면서도 살아야하는 사람의 삶이란 참으로 어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것만큼 불쌍한 일이 따로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딴 방법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길이를 안에서 그 안에서 좌우로 움직이는  ’시계 추’처럼 왔다갔다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우리의 생명이 다한 그날에 지난 삶을 한눈에 보시고 판단하시는 것은 하느님의 역할입니다.

 

우리 사람들에게 그런 한계가 있다는 것을 하느님이 모르시지도 않을 것입니다.  애초에 그렇게 불완전하게 창조된 것이 인간이기에 말입니다. 기껏 세상을 다스리라고 ’에덴 동산’ 한가운데서 살게 해 주었더니 조금 더 맘대로 살겠다는 허영심 때문에 뱀의 유혹에 빠져서 자신의 온 몸을 밧줄로 묶은 것이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겁을 먹으며 산다면, 하느님이 원하시는 삶도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현실생활에서도 얻을 수 이익이 크면 내가 가진 힘과 돈을 사용하는 지혜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부러 잘못을 찾아서 하는 행동이 아니라면 하느님 앞에서 좀 더 굳세게 설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갖추는 것도 오늘 우리가 해야 할 다짐의 한가지일 것입니다.

 

사랑의 하느님.

약하고 약한 것이 인간이라는 것은 압니다. 우리가 그 약함에 눌려서 그대로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당신의 뜻을 기억하고 넘어진 현실에서도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힘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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