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일 (토)
(홍)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강론자료

연중 30 주일-가해-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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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1999-10-22 ㅣ No.157

민족들의 복음화(福音化)를 위한 미사

 

          이사야 2,1-5 로마서 10,9-18 마태오 28,16-20

     1999. 10. 24.

 

주제 : 우리 삶의 기쁨을 전하는 것이 참된 선교, 복음화

 

교우 여러분, 한 주간 평안히 잘 지내셨습니까?

오늘은 우리 삶의 기쁨을 이웃에게 전하고, 삶의 기쁨에 이웃을 초대하는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해서 함께 기도하는 주일입니다. 복음화는 어느 한 사람의 힘과 노력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 사람 모두 다 들으라고 마이크 잡고 노래하는 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은근함과 끈기로 삶의 가장 작은 부분부터 실천해 나갈 때 '우리 자신을 포함하는 민족들의 복음화'는 완성될 수 있을 것입니다.  복음을 알리고 복음의 삶에 초대하는 것이 이러하다면, 우리 각자가 복음을 전하는 길에 얼만큼이나 들어서 있는지 확인하는 일을 어려운 것이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3년간을 따라다녔던 제자들 앞에서 수난하고 죽으셨고 무덤에 묻히셨다는 사실은 제자들의 삶에서 모든 희망을 앗아가 버린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아마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하늘이 무너진 것'과 같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삶의 의미를 질문하고 목숨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골방에서 지낸 2박3일은 참으로 긴긴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삶에서 겪는 어려움 가운데 이와 같은 일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런 어려움이 있을 때 곤경을 헤쳐나가는 방법으로 우리가 제자들의 삶에서 배울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찾아 얻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가까운 데서 뵙고 모셨던 분들이므로 우리가 본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암담하던 처지에 빠져서 하루 또 하루를 고민하던 그들에게 스승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소식이 도착합니다. 그것은 말 그대로 복음이요, 새로운 삶을 약속하는 복된 소리였습니다. 그랬기에 그들은 목숨을 유지하고자 숨어있던 예루살렘 다락방, 골방에서 뛰쳐나올 수 있었고, 새로운 삶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 기쁨을 가득 안고 동분서주했습니다. 그렇게 40일을 지낸 다음, 제자들의 삶을 바라보시던 예수님이 새로운 결정을 내리십니다. 모두 갈릴래아에 있는 산으로 모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곳에 모인 열 한 명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당신이 받은 권한을 공개하고 그 권한을 제자들에게 나눠주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이런 배경아래서 오늘 우리가 듣는 하느님의 말씀은 축복을 전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약 2000년의 세월이 지난 시기에 살고 있는 우리는 예수님이 허락하신 이 권한을 얼마나 행사하고 사는지 우리의 모습을 돌이켜봐야 합니다.  신앙을 부담스럽게 생각할 사람들은 '우리더러 무엇을 더 행동하라는 것인지......'하면서 움츠러드는 자세를 가질 것입니다.  그리고 자꾸만 땅속으로 자신만의 감옥으로 피할 곳을 찾아서 잦아들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자세가 이러하다면, 우리 삶의 기쁨에 다른 사람을 초대하는 자세는, 우리 삶의 기쁨을 전하는 자세는 얼만큼이나 되는지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자들을 세상에 남겨놓고 갈릴래아에 있는 산에서 승천하시면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내용은 <첫째>, 내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복음을 알아듣는 사람들이 되게 할 것,  <둘째>, 하느님과 함께 살 수 있도록 세례를 받게 할 것,  <셋째>, 제자로서 스승에게서 배운 것을 가르쳐주고 같은 길을 걷도록 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면서 예수님의 이런 명령은 말하기 힘든 부탁이 돼버렸고, 그 부탁은 그 무게가 너무 가벼운 것이 돼서 잊어버려도 괜찮은 정도가 되거나 무시해도 부담감 없는 시대가 되고 만 듯 합니다.   200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이 판단하는 가치가 지나치게 빨리 변한 탓일 것이고, 우리가 인류에게 삶의 활기를 주는 복음에 무관심한 탓에 그렇게 되었을 것입니다.  심기일전(心機一轉)하는 방법을 통해서 본래의 정신을 깨우치는 것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우리가 그 복음을 전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결실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해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고 응답할 수 있으려면, 이사야 예언서 독서에 나와있는 말씀을 잘 깨달아야 합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미래 어느 날엔가 이루어질 일이라고 하면서 신앙인들이 고개를 들어 향할 오직 한 곳, 시온 산의 영광을 노래합니다.  이 &#39;시온 산&#39;이 이스라엘에 있는 작은 언덕을 가리킨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너무 좁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 자신이 시온 산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머무는 이 시대에 하느님의 복음이 전파되는 것은 바로 우리를 통해서 가능한 일이고, 우리 삶의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하느님에 대해서 알아들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이 시온 산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먼저 생각하고, 그분을 생활의 중심에 두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무엇이 달라도 다릅니다.

 

오늘은 복음을 미처 듣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날입니다.  또한 &#39;우리가 하는 작은 행동들이 모여 하느님께 영광이 될 수 있기&#39;(1고린토 10,31)를 함께 기도하는 날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생활의 정신을 전하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마음먹고 행동하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길을 찾아 나선다면, 그 길은 우리를 웃는 낯으로 반길 것이고, 우리의 노력을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서 하느님께 기도할 것입니다.  선교를 위한 우리의 발걸음이 가볍고 우리가 그 힘을 얻을 수 있도록 잠시 특별한 기도를 봉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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