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일 (토)
(홍)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강론자료

연중 23 주일-가해-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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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1999-09-04 ㅣ No.148

연 중  제  23  주 일 ( 가 해 )

  에제키엘 33,7-9  로마 13,8-10 마태 18,15-20

 1999. 9. 4.

 

주제 : 용서는 내가 살기 위한 방법

 

오늘은 9월 순교자 성월의 첫 번째 주일이며 연중 23주일입니다. 이 순교자 성월을 지내며 우리가 과거 200년 혹은 150년 이전의 순교자들이 보여주었던 삶의 모습을 그대로 반복할 수는 없지만, 세월이 달라지고 시간이 흐른 만큼 우리의 지혜가 발전했으므로 그 적용 방법도 새롭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삶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이라고 여러분은 생각하십니까?  물론 정답이 따로 준비돼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처한 입장과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내용에 따라 그 답이 달라지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이 표현하는 답에 대해서 그들의 말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자세라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질문을 드렸으니, 제 대답을 하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용서입니다.  가장 힘들다는 용서를 우리가 어떤 모습과 방법으로 해야 할 것이냐?  오늘 연중 23 주일을 지내며 우리가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용서는 사람에 따라서 그리고 시간에 따라서 때로는 사랑으로 때로는 아량으로 혹은 인내로 그 얼굴의 모습을 달리합니다.

 

우리가 70년 혹은 80년 또는 그 이상의 생명을 어떻게 살 것인지 그것은 온전히 개인의 자유이지만, 커다란 의미를 느끼고 살 것인지, 그저 하루하루 숨을 헐떡이면서 살 것인지 그 선택은 우리 자신이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용서도, 사랑도 아량을 베푸는 것도 인내를 가지고 같은 대상을 견디는 것도 모두 우리가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왜 용서를 해야 하는 것일까?  용서 같은 일 하지 않고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비결은 없을까? 누구든지 이 질문을 던질 수는 있지만, 맘에 꼭 드는 정답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왠지 모르게 용서한다면 내가 손해보는 듯한 느낌을 갖는 것이 실제 생활이기에 우리는 ’용서해야 한다’는 말에 고개를 가로젓기가 쉽습니다.  그만큼 용서는 하기 힘든 것입니다.  우리가 실생활에서 할 수 있는 용서는 사실 ’내가 살고, 내가 편해지고, 내가 떳떳하게 서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에게 잘못을 범한 사람에 대해서 용서를 해 주든 용서하지 않든 그것은 당사자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용서를 통하여 잔재(殘滓)를 털어 내지 않으면 부담스러운 것은 바로 그것을 기억하는 자신입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면,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서 들은 무조건적인 용서는 차원을 달리하는 아주 어려운 것입니다.

 

고해성사를 하다보면 가끔씩 상담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잘못한 어떤 사람이 있는데, 그것을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용서를 했답니다. 잘못은 저쪽 사람이 했고 용서는 내가 했는데, 실제로 잘못한 사람이 자신이 베푸는 용서를 받지 않고 오히려 제가 잘한 것처럼 큰소리 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네방네 소문내고 돌아다니는데 어떻게 해야 좋을 지 모르겠다’는 소리를 듣곤 합니다.  그런 상담의  말을 듣게되면,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 상책이라고 말해줍니다. 용서를 청하는 사람과 용서를 베풀어야 하는 사람의 판단이 서로 맞아야 진정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용서입니다.

 

이 용서는 사람을 살리는 모습으로도 나타나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그것이 보초의 역할입니다. 보초란 다른 사람이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지키는 눈을 뜨고 지켜야 할 사람입니다. 그런 책임이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판단하실 벌이 두려워서 우리가 보초의 임무를 수행해야 할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바로 보초의 역할이 됩니다.  보초의 역할은 우리가 기쁨으로 해야합니다. 비록 하느님의 협박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오늘의 말씀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위협이 아니라 우리가 꼭 그리고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기에 그 방법으로 말씀하신다고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100년 안쪽의 짧은 인생을 살면서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나 많겠습니까?  지구의 역사가 45억 년 또는 50억 년이 된다고 말하는 진화론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것은 ’새 발의 피만큼도 되지 않는 짧은 기간’입니다.<1/4500만 또는 1/5000만>  길게 생각하는 것은 인간이 가진 오만(傲慢)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의 크기를 크게 봐서 헤매는 것보다는, 겸손하게 자신의 위치를 생각하고 그 작은 범위 안에서 열심히 생활할 수 있는 지혜를 청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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