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일 (토)
(홍)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강론자료

연중 22 주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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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욱 [eliapark] 쪽지 캡슐

1999-08-29 ㅣ No.147

연중 제22주일(가해)

1999. 8. 29.(수색)

. 제1독서 : 예레미아20,7-9./ . 제2독서 : 로마서12,1-2./ . 복음 : 마태오16,21-27.

 

옛날 어느 학교에 칠수와 만수와 박수가 다녔습니다. 칠수는 힘이 쎄고 싸움을 잘하는 아이였고, 만수는 칠수만큼 힘이 쎄지는 못하지만 깡이 쎄고 남에게 지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였고, 박수는 공부도 잘하고 선생님 말씀도 잘 듣는 모범생이었습니다. 이 셋은 같은 반이었는데, 박수는 반장이고, 칠수와 만수는 만나면 싸우기만 하는 문제아들이었습니다. 칠수와 만수는 처음 만난 그날부터 싸웠습니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처음에는 말로 싸우다가 마침내는 교실 안에서 주먹다짐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박수는 반장으로써 이 싸움을 말리려고 했는데, 도저히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 때, 담임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오시다가 이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매우 화가 많이 나셨습니다.

'같은 반 친구들끼리 서로 위해주고 사랑하지는 못하고 싸움을 하다니...,' 선생님은 화가 나서 칠수와 만수를 앞으로 불러내셨습니다. 그리고는 엎드려뻗쳐를 시키고는 사랑의 매를 때리셨습니다. 그리고는 일으켜 세워 사랑에 대해서, 그리고 우정에 대해서 일장연설을 하시고는, 칠수와 만수에게 '화해의 악수'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칠수와 만수는 아직도 분을 삭히지 못했는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고 숨을 씩씩 몰아쉬면서도, 선생님이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힘없이 손을 내밀어 힘없는 악수를 했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해결되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방과후 칠수와 만수는 약속이나 한 듯이 학교 뒷골목으로 가서 본격적으로 싸웠습니다. 그 다음 날 그 반의 모든 아이들은 칠수의 터져 부어오른 입과 만수의 멍든 눈주위를 보면서 그 전날의 상황을 대강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칠수와 만수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만나면 계속 티격태격 싸웠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무서워서 주로 선생님 안보는 데서 싸웠습니다. 몇 달이 지나는 동안 칠수와 만수는 단 하루도 빠짐없이 싸웠는데, 선생님께 들킨 것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선생님은 그 때마다, 매도 때려보고, 화장실 청소, 교실 청소, 반성문 쓰기등 여러 가지 처벌을 내리고, 그 때마다 '화해의 악수'를 시켰지만, 칠수와 만수의 전쟁을 그치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선생님 앞에서 화해와 사랑의 악수를 하고 포옹을 했다고, 마음속의 미움까지도 사랑과 우정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 날도 칠수와 만수는 어김없이 싸웠습니다. 마음속에 가득찬 미움으로 칠수와 만수는 아주 사소한 일로 시비를 걸고, 마침내는 교실 안에서 또다시 주먹다짐을 하였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반장인 박수는 열심히 말리려고 하고..., 그 때 선생님이 교실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처럼 선생님은 칠수와 만수를 앞으로 부르셨습니다. 칠수와 만수는 언제나 그랬듯이 선생님 앞에서도 분을 삭히지 못하고 씩씩대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그때 깨달으셨습니다.

 

'화해의 악수를 아무리 해도 마음속의 미움을 없애주지는 못하는구나... 사랑을 가르치려면 사랑이 어떤 것인지 직접 보여주어서 그 사랑에 감동하게 하는 수밖에 없구나... 내가 자신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주어야 겠다.'

 

이런 생각을 하신 선생님은 칠수와 만수에게 교실 뒤에 있는 대걸레 자루를 두 개 가져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칠수와 만수는 언제나처럼 '또 얻어맞겠구나'하고 생각하며 대걸레 자루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칠수와 만수야, 내가 너희를 잘못 가르쳐서 너희가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하는 것 같구나. 선생님은 너희에게 사랑을 가르쳐주고 싶었는데, 선생님이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보여주지 못한 것 같다. 이제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주고 싶구나."

 

이렇게 말씀하시고 선생님은 교실바닥에 엎드리셨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서로에게 가진 분이 풀릴 때까지 선생님을 때려라." 이 말을 들은 칠수와 만수가 어쩔 줄을 몰라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을 바로 그 때, 모범생이자 반장이었던 박수가 나서서 선생님께 울면서 말했습니다.

 

"선생님, 안됩니다. 결코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을 박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박수야, 너는 나를 사랑하고, 내 말을 잘 듣는다고 하지만, 언제나 너의 생각만 하는구나. 선생님은 너만이 아니고 학생들 모두를 사랑한단다. 내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사랑하는 칠수와 만수가 서로 사랑할 수 없단다. 박수야, 내가 지금 하는 일을 막지 마라. 그리고 네가 나를 조금이라도 존경하고 사랑한다면, 너도 나중에 이렇게 하렴.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잘못된 길로 나갈 때, 너의 희생으로 그 사람이 올바른 길로 돌아오도록 해주어라."

 

그래서 박수는 울면서 뒤로 물러났고..., 칠수와 만수도 울면서 선생님을 때렸습니다. 얼마를 때렸는지, 대걸레 자루는 마침내 부러져버렸고, 선생님은 그제서야 일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칠수와 만수는 진정한 화해와 사랑의 악수를 하게 되었고, 그 후에는 선생님과 함께 그 반 학생들 모두가, 또 그 학교 학생들 모두가 진정한 우정과 사랑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이야기입니다. 제가 오늘 이 이야기를 이 귀중한 강론시간에 해 드린 것은, 이야기 속의 모범생이자 반장인 박수의 모습이 오늘 복음의 베드로의 모습과 너무도 비슷하며..., 모든 학생들의 마음속에서 미움을 없애고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고자 자기를 희생한 선생님의 모습이, 고통의 길인 줄을 아시면서도 십자가의 길로 주저함 없이 나아가시는 예수님의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주님, 안 됩니다. 결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는 너무도 흥분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하느님의 나라를 다스리실 영광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버려져 고난을 받으시고, 마침내는 죽음을 당하실 것이란 말을, 예수님께 직접 들었기 때문입니다. 당신께서 진정한 왕이시고, 사람들을 모두 죽일 수도, 또 살릴 수도 있는 분이신데, 왜 그러셔야 하는지..., 또 모르고 당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다 아시면서 왜 그 고통의 길을 스스로 가려고 하시는지..., 사람의 영광만을 생각하는 베드로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고통을 받으시고 죽는다'는 말씀에 너무도 흥분한 나머지, 그 뒤에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리라'는 말씀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이런 모습에 화를 내십니다. 어쩌면 너무도 예수님을 사랑하고 존경하기 때문에 나오는 베드로의 이 충성어린 말을, 예수님은 너무도 매정하게 잘라버리십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장애물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구나!"

 

지난 주 복음에서 예수님께로부터 교회의 반석이라며 있는 칭찬, 없는 칭찬 다 받았던 베드로가 오늘은 '사탄'이라는 최고의 욕을 먹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하느님의 아들이시자, 하느님 나라를 다스리시는 영광의 왕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은 절대적인 권력을 가시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당신의 말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다 죽여버릴 수도 있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철저히 힘없고 버림받은 모습으로 십자가 죽음을 당해야 하겠습니까.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은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셔야할 하느님의 일은 바로 이땅이 하느님의 나라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바로 그 안에 모든 이가 서로를 향한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참다운 정의와 평화가 넘쳐나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목숨을 바쳐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진정한 사랑을 가르치려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을 가르치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사랑을 보여주고, 그 사랑을 베풀어주며, 그 사랑으로 감동받아서, 그같은 사랑을 베풀지 않고는 못배기게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예수님은 너무도 잘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당신과 같은 그러한 사랑의 가르침을 우리도 실천하기를 바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능력과 권위를 갖추신 예수님, 그분은 진실로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서로 사랑하지 않는..., 하느님 나라의 법인 사랑을 행하지 않고, 이기적인 욕심과 그로인한 미움을 마음가득 가지고 사는 사람들을, 한 번에 다 이 세상에서 없어지게 하실 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리고는 오히려 당신을 고통스럽게하는 십자가를 택하십니다. 왜냐하면 사랑이란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앞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칠수와 만수가 선생님 앞에서는 아무리 '화해의 악수'를 해도, 마음속의 미움은 없앨 수가 없었듯이, 당신이 강제로 사람들에게 사랑을 강요하면, 겉으로는 당신이 무서워 서로 사랑하는 척만 하고, 마음속에는 여전히 미움만이 가득할 것이란 사실을, 예수님은 너무도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택하십니다. 당신 자신께서 스스로, 솔선수범하여 목숨을 바치는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랑을 행했을 때, 영광스럽게 부활한다는 사실도 알려주시고, 이 부활한 생명이 바로 진정한 승리, 진정한 영광, 영원한 생명이라는 사실도 알려주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십자가의 사랑에 감동하여, 그 사랑을 행하게 하시고, 그 같은 사랑을 행하면, 당신과 같은 부활의 영광을 얻게 되리라는 것을 알려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이러한 하느님의 사랑을 나의 인간적인 욕심으로 독차지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하느님께서 천벌을 내려주시기를 은근히 바라기도 하고, 또 간절히 기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오히려 그런 우리를 오늘의 베드로처럼 단호히 꾸짖으십니다. 그리고는 우리가 미워하는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도록 십자가 위의 당신의 처절한 모습을 보이십니다. 비록 지금 당장은 고통과 힘겨움이 계속된다 하더라도, 하느님 나라의 진정한 승리, 진정한 영광,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기쁨과 즐거움은 바로, 자신의 십자가를 미루지 않고 자신이 지고, 당신 뒤를 따라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당장의 편안함과 순간적인 기쁨만을 생각하는 사람의 일이 아니라, 고통과 힘겨움 속에서도 당신의 뜻인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진정한 영광과 영원한 기쁨을 얻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도록..., 십자가의 예수님, 영원히 살아계시며 우리를 다스리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마음에 커다란 사랑의 감동을 던지고 계십니다. 칠수와 만수와 박수의 선생님처럼 말입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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