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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중국 상해: 한국 교회의 꽃망울을 터트린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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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7-30 ㅣ No.687

세계 교회 신앙유산 순례 - 중국 상해


한국 교회의 꽃망울을 터트린 곳

 

 

한때 프랑스 조계(租界, 청나라에서 외국인이 행정자치권이나 치외 법권을 가지고 거주한 조차지)였던 상해는 오늘날 경제적으로 눈부시게 발전을 하였고 정치적으로도 중국의 지도자들을 여러 명 배출하여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서울이 한강을 기준으로 강남과 강북으로 나뉘듯 상해는 황푸지앙(黃浦江)을 중심으로 포동과 포서로 나뉜다. 포동에는 동방을 비추는 구슬을 상징하는 동팡밍쥬(東方明珠) 탑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으며, 한국과는 종교적으로 인연이 깊다.

 

국가적으로는 상해 임시정부가 한국 순례객들의 눈길을 끌지만, 우리 가톨릭 신앙인에게는 성 김대건 신부가 사제품을 받은 곳인 진쟈상(金家港, 이하 김가항) 성당이 성지 순례지로서 꼭 찾아보아야 할 곳 중의 하나로 지목된다.

 

상해의 또 다른 성지 순례지로 김대건 신부가 첫 미사를 봉헌한 포서에 있는 헝탕(橫堂) 성당이 있고, 또한 ‘땀의 순교자’로 일컫는 최양업 신부가 사제품을 받은 곳인 쉬자후이(徐家淮, 이하 서가회) 성당이 있다.

 

 

김가항 성당이 무너지던 날

 

김가항은 성이 김(金) 가인 사람이 한데 모여 살았던 데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다. 2001년 3월에 헐린 옛 김가항 성당은 17세기 명나라 때 중국 화동지역에 최초로 건립된 뒤 남경교구 주교좌성당으로 지정되었으며, 1845년 8월 17일에 성 김대건 신부가 이곳에서 조선교구장 페레올 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아 한 · 중 양국 천주교회사 안에서 중요한 사적지의 하나로 자리 잡아왔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상해시 정부의 포동 경제개발 시책에 밀려 철거되기 전까지 수많은 한국 교우들이 우리 신앙의 뿌리를 찾고자 다녀갔다.

 

성당을 지키려던 노력에도 결국 포클레인에 김가항 성당 지붕이 무너져 내리던 날, 내 마음도 같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그 충격으로 한동안 위궤양을 앓기도 하였다. 철거 전 마지막 미사를 김가항 성당에서 거행하고서 상해에 살고 있는 한국 신자들과 그곳의 중국 신자들과 함께 행렬하여 김대건 성인의 척추 뼈를 담은 성광을 탕무치아오(唐墓橋) 성당으로 이동하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마침 탕무치아오 성당 입구에는 한국과 중국의 신앙 교류 역사와 김대건 성인의 발자취를 묘사한 글이 쓰여있어 우리 모두의 가슴을 미어지게 하였다. 김가항 성당 철거 뒤 대들보와 기왓장은 얼마 안 되어 한국으로 옮겨져 은이 공소에 철거 전 실측한 도면에 따라 똑같은 모습으로 복원되었다고 하니 그것으로 위로를 삼아본다.

 

포동 공항에서 자동차로 40분 정도 거리에 새로 지어진 김가항 성당(60쪽 사진)은 주변 건물과 조화를 잘 이뤄 아름답다. 옛 김가항 성당 자리에서 1Km 떨어져 있으며, 성당 안에는 김대건 성인의 유물과 함께 기념 경당이 마련되어 있다.

 

 

최양업 신부 서품 성당, 서가회 성당

 

서가회 성당은 현재 상해 교구의 주교좌성당으로서 서(徐) 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 세워진 성당으로 역사적으로 명나라 말기 중국 천주교의 발전에 커다란 업적을 남긴 쉬광치(徐光啓, 마태오)와 연관된 곳이다. 또한 최양업 신부가 1849년 4월 15일에 당시 강남 교구장 마레스카 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포동의 김가항 성당에서부터 서가회 성당까지는 자동차로 30~40분 거리에 있으며 지하철을 이용하면 서가회 역에서 내리면 된다.

 

성당에서 멀지 않은 곳의 교차로를 중심으로 초대형 백화점과 컴퓨터 매장이 둘러싸고 있어 인간의 끝없는 욕심으로 높아만 가는 세속 건물 속에 건전한 인간 양심의 보루인 신앙의 상징으로서의 교회 첨탑이 낮고 초라해 보인다. 성당 외부에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공원 전면에는 두 개의 첨탑과 네 복음사가의 상징물이 조각되어 있다.

 

내부로 들어가면 우리네 명동대성당과도 같은 고풍스러운 분위기에 기둥마다 최첨단 대형 텔레비전이 설치되어 있고, 쉬광치와 마태오 리치 선교사가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대형 그림도 볼 수 있다. 신문이나 방송을 보면 해마다 부활절에 이곳에서 수많은 세례자가 탄생한다. 그리고 아직도 매주 한 번씩 라틴어로 미사가 거행되고, 매일 미사 영성체 때 신자들이 두 줄로 나와 제단 주변의 장궤틀에 무릎을 꿇고 흰 보로 두 손을 감싸고 입으로 성체를 받아 모시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두 분 사제를 본받아

 

이제 상해는 온갖 조명과 높은 빌딩으로 눈부신 발전을 뽐내고 있지만, 그곳에 서면 150년 전 수많은 어려움에도 꿋꿋하게 지킨 신앙의 씨앗이 꽃망울을 막 터트렸던 바로 그 시간으로 돌아가게 한다. 10대의 어린 나이에 가족을 떠나 수천 리 험한 길을 걸어 중국으로 건너가신 두 분, 그 어려운 신학을 중국말과 라틴어로 공부하면서 느꼈을 한계, 전혀 다른 음식과 문화적 충격 등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이었을 것이다.

 

한국외방선교회 사제로서 중국에서 10년 가까이 지내면서 두 분 성인 신부님을 본받아 착한 목자로 좋은 선교사로 열심히 살도록 도와주십사 눈물로 기도했던 시간들이 새삼 떠오른다. 모든 형편을 알고 계시는 하느님의 보살핌과 두 분 성인의 간구 덕분에 아무 사고 없이 지낼 수 있었으리라.

 

지난 6월 19일 예수성심대축일부터 ‘사제의 해’가 시작되었다. 한국 교회에 베풀어 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리며 경외의 심정으로 하느님의 활동을 다시 한 번 묵상하고 우리의 사제직과 사목적 임무를 영적 신학적으로 깊이 이해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우리보다 앞서 간 신앙 선조들, 특별히 피와 땀으로 얼룩진 역사 속의 순교자셨던 두 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최양업 프란치스코 사제를 본받아 우리의 사제직의 의미를 되새기며, 한국인을 구원하고자 고군분투하셨던 불같은 열성으로 점점 밋밋해져 가는 우리네 신앙에 다시 불을 지피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최양업 프란치스코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김광우 세례자 요한 - 한국외방선교회 사무처장 신부. 중국에서 9년간 머물면서 사천성 나환우 공동체, 상해 한인신자들과 함께 지냈다.

 

[경향잡지, 2009년 7월호, 글 · 사진 김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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