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인] 영원한 신앙인, 성인의 찬미 전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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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7-02 ㅣ No.676

영원한 신앙인, 성인의 찬미 전례

 

 

성인(聖人)이란 “하느님의 거룩함[聖性]에 참여하여 생전에 탁월한 성덕에 달하여 모든 사람의 모범이 되어 죽은 후 천국의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있음을 교회가 교도권에 의해 공식적으로 선언한 사람”이다. 넓은 의미에서 성인은 구원되어 천국 영복을 누리는 모든 사람을 의미하지만, 사도 성 바오로는 그의 서간 대부분에서 모든 그리스도 신자를 ‘성도’라고 부른다(1고린 1,2; 2고린 13,12; 에페 1,1; 필립 1,1; 골로 1,2 참조).

 

성인 중에는 여러 계급과 지위에 속하는 사람들과 여러 직업과 나이를 지닌 사람들이 있다. 교황, 주교, 황제, 왕, 의사, 과학자, 교사, 직장인, 농부, 어부 그리고 노예, 거지 성인도 있다. 큰 죄인이었다가 회개한 성인이 있는가 하면 한평생 거룩하고 순결하게 살았던 성인도 많다. 나이를 보면 노인, 장년, 청년, 소년, 그리고 애기 성인도 있다.

 

이 엄청나게 폭넓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성인들의 성덕은 교회에 유례가 없는 거룩함을 증명하는 동시에, 신자는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주님의 은총으로 높은 성덕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증하는 것이다. 사실, 가톨릭만큼 수많은 성인을 배출한 종교는 없다. 아울러 숭고한 성덕을 신자들에게 실현시킨 종교도 따로 없을 것이다. 참으로 성인은 교회의 보배요, 그리스도 신자의 자랑이자, 전인류의 값진 재산이다. 따라서 성인의 모습은 장차 완성될 하느님 나라를 보여주는 표상이기도 하다.

 

성인들의 놀라운 성덕은 그리스도의 모습과 그분의 복음이 비천하고 연약한 인간을 얼마나 높이 끌어올려 정화시키는가를 말해 준다. 복음의 숭고한 가르침은 그대로 실천할 수 있으며, 복음의 순수한 내용 역시 그대로 실현될 수 있다는 사실을 성인들의 생애가 증명해 준다. 그만큼 복음의 힘은 연약한 인간을 강하게, 평범한 인간을 탁월한 인간으로 또한 불가능을 가능케 한다. 우리는 늘 성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복음의 그 숭고성과 순수함을 높이 내걸어 실천에 옮겨야 할 것이다.

 

교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성인의 정확한 수는 확인할 수 없으나, “로마 순교록”에 기록된 성인 명단은 5천 명을 넘는다.

 

성인은 순교자와 증거자로 구분된다. ‘순교자’는 신앙의 진리 또는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이며, ‘증거자’는 순교하지는 않았으나 일생을 통해 탁월한 성덕에 달한 사람이다.

 

성인에 대한 신심은 원래 초기 교회의 순교자에 대한 공경에서 유래되었다. 처음에는 순교자를 찬양하고 본받는 ‘공경’과 ‘모방’이 그 신심의 내용이었으나 3세기부터 순교자의 전구를 비는 신심이 추가되고, 3세기말에는 증거자에 대한 신심도 시작되었다.

 

순교자를 처음으로 증인이라 부른 것은 뽈리까르뽀 주교의 “순교전”(165년경)에서였다. 여기서 순교자란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이 곧 하느님의 아들로서 바친 구속의 댓가(구세주)임을 피흘려 증거한 자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한편 110년경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는 스미르나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순교자란 피흘려 죽음을 당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죽음의 실재성을 입증한다고 하였다. 2세기 말엽 이레네오도 순교자를 “죽음을 당하신 그리스도의 증인”이라 불렀다. 순교자가 죽음을 당하면서까지 신앙을 증거할 수 있는 용기는 순교자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 하여 순교를 최고의 영예로 여겼다.

 

성인의 생애를 신자들에게 널리 알리고 성인의 축일을 지내기 시작한 것도 3세기부터다. 처음에는 순교자가 순교한 날을 ‘천국에 개선한 날’로 기념했다가, 이어서 증거자 성인을 위해서도 죽은 날을 ‘천국의 영원한 생명으로 탄생한 날’ 또는 ‘생애를 거쳐 탁마(琢磨)한 성덕의 보답을 받는 날’로서 기념했다.

 

5-6세기에는 성인에 관한 찬미가와 독서가 미사와 성무일도에 삽입되었다. 이와 때를 맞추어 성인들의 성화, 성상, 유물, 유해 등을 공경하기 사작했다. 성인의 머리 뒤에 ‘후광’(後光)을 그리는 습관도 5세기부터 시작한 것이다. 후광은 그리스도나 성인의 머리 부분을 둘러 싼 광휘로서 하느님의 신성이나 거룩함, 은총, 영광 그리고 인간의 윤리적 탁월성 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기법으로 외교적인 표현법을 그리스도교에서 인용한 것이다. 후광은 이로써 나타내고자 하는 대상에 따라 삼각형(성삼위, 하느님), 원형 안의 십자 표지(예수 그리스도), 원형(그리스도, 성모, 성인들) 등으로 그려진다.

 

최초의 시성식은 교황 요한 15세께서 성 울릭(Ulric 890-973년. 축일 7월 4일)을 993년에 성인품에 올린 것이다.

 

성인에 대한 신심은 중세기에 전성을 이루었다. 성인의 유적지를 성지로 여겨 순례하거나 각 성당, 단체, 개인마다 ‘수호성인’을 모시는 습관이 생겼다. 어떤 성인의 축일은 국가의 경축일로 지정되어 온 국민이 성대히 지내기도 했다.

 

이처럼 수호성인(守護聖人), 주보성인(主保聖人)을 모시는 관습은 두 개의 교리, 즉 “모든 성인의 통공”(사도신경)과 “하느님 나라의 구성원들은 각자 특수한 가능을 수행하고 있다”(1고린 12,12-3l 참조)는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에 근거를 둔다. 수호성인을 세우는 관습은 3세기경까지는 순교자만이 성당의 수호성인이 될 수 있었으나 그리스도교 공인 후에는 증거자, 주교, 선교사, 성당 창설자, 신비(삼위일체, 십자가, 구세주) 등도 성당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한 개인을 수호성인으로 초에 모시는 관습은 4세기 세례명으로 성인들의 이름을 선택하는 데에서 유래된 듯하다.

 

이리하여 성인의 성화, 성상, 유물에 대한 지나친 공경과 성인의 전구에 대한 미신적인 신심 행위가 성행되었다. 교회는 신자들의 극단적인 신심을 여러 차례에 걸쳐 시정하려 하였으나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그리하여 교회는 성인에 대한 ‘모방’과 ‘전구’의 바른 시행을 위해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년)에서 모든 성인의 통공, 성인 유해의 공경, 연옥, 대사, 성화상의 사용 등의 교령을 반포하면서 당시 종교 개혁자들에 의해 비난받던 성인에 대한 신심을 옹호하고 신자들에게 유익하고 바른 신심으로 권장하였다.

 

공의회 후, 성인에 대한 신심을 성서와 신학에 입각하여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하느님과 그리스도께는 ‘흠숭’(숭배, 예배; adoration)이란 단어를, 일반 성인에게는 ‘공경’(veneration)이란 단어 그리고 성모님께는 ‘특별 공경’(special veneration)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확립하였다.(제2차 니케아 공의회 787년). 다시 말해서 하느님과 그리스도는 절대적인 분으로 인정하고 기도와 찬미, 희생과 봉헌 등 무한한 영광과 찬양을 드리고 전면적인 의존과 순명을 표명하는 한편 성인은 피조물과 구원받은 자로서 탁월한 성덕에 달했으므로 그들을 찬양하고 모방하여 그들의 전구를 비는 것이다. 성모도 역시 피조물로서 구원받은 자이시긴 하나 성인들 중에서 특별한 은총을 받아 최고의 성덕에 달한 분으로 각별히 공경하는 것이다.

 

성인에 대한 신심의 실천은 근본적으로 그들을 존경, 찬양하며 그들의 전구를 빌고 본받는 일이다.

 

이 신심의 구체적인 실천으로서는 성인의 축일을 지내며 전례 기도 중에 성인의 이름을 기념하고 전구를 비는 기도를 바친다. 또한 어떤 성인을 세례명으로 하고 여러 성당, 단체, 가정이 수호성인을 모신다. 성인의 성화, 성상, 유물을 안치하며 성인전을 읽고 묵상하며 또한 성지 순례를 하기도 한다.

 

성인은 생전에 위대한 공덕을 세워 하느님의 마음에 드신 분으로서 그분의 기도는 큰 효과를 가져옴을 신자들은 믿는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 남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모두 온전해질 것입니다. 올바른 사람의 간구는 큰 효과를 나타냅니다”(야고 5,16). 또한 세상에 사는 사람들끼리 서로 기도하고 기도를 부탁할 수 있다면(로마 15,30-32; 에페 6,18-19 참조) 천상의 성인들 역시 지상의 신지들을 위해 기도할 것이고 성인들에게 기도를 부탁할 수 있다.

 

성인의 성덕을 본받는 것은 성인에 대한 신심의 중요한 실천이 된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나를 본받으십시오”(1고린 4,16). “하느님의 말씀을 여러분에게 일러준 지도자들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이 어떻게 살다가 죽었는지를 살펴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십시오”(히브 13,7)라고 사도 바오로는 그의 서간에서 말한다. 성 아우구스띠노 역시 “그들도 인간이라면 나도 인간이다. 그들이 할 수 있었다면 어찌 내가 하지 못하겠는가” 하며 성인의 삶을 확인했고 권장하였다.

 

성인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었다. 결점과 나약, 연약하고 평범한 인간 그리고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어야 할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느님의 은총과 자신의 노력으로 숭고한 성덕에 도달했다. 그들이 성덕을 탁마하는 과정에는 여러 희생과 고생이 따랐다. 그러나 인내와 희생, 고통의 극복으로 성덕을 체득하고 난 후, 그들만이 맛볼 수 있는 주님의 사랑과 기쁨,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 이는 세상의 어떤 사랑과 기쁨, 평화와도 바꿀 수 없고 비교할 수도 없다(로마 8,31-39 참조). 참으로 성인만큼 사랑과 기쁨, 평화로운 삶을 산 사람은 세상에 없다. 성인처럼 인간의 가능성을 활짝 꽃피우고 복되고 보람찬 인생을 통해 그리스도 신자로서의 완덕의 갈망을 충족시킨 사람도 따로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께서는 우리의 성화를 갈망하시고 숭고한 성덕에로 부르신다.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이 불이 이미 타올랐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루가 12,49)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마태 5,48; 레위 19,2 참조).

 

[경향잡지, 1988년 9월호, 김보록 바오로(서울 구로3동본당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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