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ㅣ 봉헌생활
유럽 수도원 기행: 파도바의 산타 쥬스티나 수도원 |
---|
[유럽 수도원 기행] 파도바의 산타 쥬스티나 수도원 아름다운 대학도시, 유서깊은 성인들의 도시 파도바
파도바는 기원전에도 있었던 도시로 로마제국 시기의 원형 경기장 흔적도 남아 있는 유서깊은 도시이다. 1222년에 설립된 파도바 대학은 이탈리아의 볼로냐 대학에 이어 두 번째로 설립된 대학이다. 이곳에서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강의를 하기도 했다. 교회 내 인물로는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로베르토 벨라르미노, 대 알베르토 성인 등이 이곳에서 수학했다. 지금도 파도바 도심을 흐르는 강 주변과 도시 곳곳에 대학 건물들이 흩어져 있고, 젊은이들의 활기 넘치는 모습을 어디에서든 발견할 수 있다.
여기 루카 사도의 무덤이 있네요!
산타 쥬스티나(성녀 유스티나) 수도원이라고 하면 여자 수도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하지만 베네딕도회 수비아꼬 연합회에 속한 남자 수도원이다. 성당의 중앙 제대에 유스티나 성녀의 유해가 모셔져 있기 때문에 수도원의 이름도 그렇게 부른다. 수도원 성당 앞에는 프라토 델라 발레(Prato della valle)라는 멋진 광장이 펼쳐져 있다. 이 광장에서 큰 성당을 보고 들어오면 특별한 장식 없이 덩그러한 공간으로 되어 있는 성당 내부를 만나게 된다.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중앙 바닥에는 규모가 큰 대성당들의 크기를 베드로 대성전과 비교하여 표시해 놓았는데, 산타 쥬스티나 수도원 성당은 여섯 번째 큰 성당으로 표시되어 있다고 한다. 성당뿐만 아니라 수도원 건물도 무척 크다. 수도원 일부 건물들은 군부대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탈리아 북부지역을 통괄하는 군사령부라고 한다.
이런 위대한 성인들을 모신 성당이지만, 인근의 다른 두 성당 때문에 다소 인지도가 떨어지는 듯 보였다. 왜냐하면 파도바에는 그 유명한 안토니오 성인의 유해를 모신 성당이 있고, 카푸친 프란치스코 회원인 성 레오폴드를 모신 성당이 바로 지척에 있기 때문이다. 일단 이들 두 성당에 들어가 보면 장식도 아주 화려할 뿐만 아니라, 많은 신자들의 기도가 이루어졌음을 기념하는 장식물들이 빼곡히 자리 잡고 있다. 아마 이들 성인들이 신자들의 일상 안에 깊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간혹 아름다운 광장에 인접한 큰 성당을 안토니오 대성당이라고 오해하고 들어오는 분들이 계신다. 이들이 나타내는 일반적인 반응들은, “여기가 안토니오 성당이 아니었어요?”, “여기 루카 사도의 무덤이 있네요. 진짜 루카 사도예요?”, “아니, 마티아 사도, 유스티나 성녀!…….” 이런 성인들을 모시고 이곳 수도자들은 언제나 묵묵히 기도하고, 일하면서 살고 계신다.
정겨운 수도가족
로마에 있는 성 안셀모 대학이 교회 안에서 ‘전례학’의 중심지라면, 이곳 산타 쥬스티나 수도원 안에 있는 ‘전례 사목 연구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이탈리아 전례의 발전과 사목적 적용에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다. 몇몇 수도자들이 일하는 도서관은 공공 도서관으로 지정되어 매년 국가로부터 3억 원 정도의 보조금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수도원 성당은 본당의 역할도 하고 있어서 여러 사제들이 봉사하고 있다. 그 밖에도 이콘을 그리는 작업장, 작업량이 예전처럼 많지 않지만 양피지나 고서적을 복원하고 제본하는 작업장, 대학생들을 위한 기숙사, 손님들을 위한 집 운영 등을 하고 있었다.
등대처럼 빛나는 기도
우리 수도원이나, 우리 연합회의 독일 수도원에서 볼 수 있는, 몇 십 명의 수도자들이 성당의 가대에서 우렁차게 기도를 바치는 모습을 이곳 이탈리아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가 없다. 대신에 어디를 가도 작은 수도 공동체들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다. 주일을 준비하는 토요일 저녁, 향을 피우며 밤기도(Vigil)를 바친다. 그렇게 위로 올라가며 성당을 채우는 향 연기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온 세상에는 우리 베네딕도회 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수많은 남녀 수도공동체들, 그리고 신자들이 끊임없이 하느님께 찬미의 기도를 바치고 있겠구나! 나도 그 중의 한 명으로 이 시간 기도하고 있고, 6~70명의 공동체가 바치는 기도뿐만 아니라, 2~3명으로 이루어진 작은 공동체에서 바치는 기도도 하느님 안에서는 큰 기도의 끈으로 서로 연결되어, 지구 곳곳에서 반짝 반짝 빛나는 등대처럼 그렇게 빛나겠구나. 이 수도원의 가대(수도자 기도석)는 아름다운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고, 성서의 일화들이 조각되어 있기도 하다. 그리고 수많은 얼굴들이 의자에 조각되어 있는데 모두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다.
파도바는 물의 도시로 유명한 베네치아(베니스)에서 기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가까운 곳에 있다. 베네치아를 방문하는 분이라면 아름다운 대학 도시의 모습과 유서 깊은 성인들의 도시를 그냥 지나치지 않기를 권하고 싶다. 이탈리아 할아버지 수사들의 정이 느껴지는 곳, 언제나 방문해도 환영받을 것 같은 곳, 이탈리아 말에 아주 잘 들어맞는 멜로디로 이탈리아 전례의 아름다움을 맛보게 해 준 곳.
방학이 시작되어 로마를 떠날 때 마음이 그렇게 편치 않았는데, 한 달 반을 머물고 수도원을 떠날려니 정든 분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역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떠나기 전날 한분 한 분의 수사들과 깊은 포옹을 하고 그렇게 헤어졌다. 오늘도 성 루카 사도의 무덤 주변에 모여 아름다운 멜로디로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을 그 분들을 떠올리면 복잡한 많은 것들이 잊혀지며 그 단순한 찬미에 나도 합쳐지는 듯하다.
[분도, 2010년 가을호, 글 · 사진제공 박현동 블라시오 신부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홈페이지에서] 0 2,174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