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일 (월)
(홍)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소작인들은 주인의 사랑하는 아들을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신앙] 순수한 믿음 안에 파고드는 가계치유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10-09 ㅣ No.243

순수한 믿음 안에 파고드는 가계치유

 

 

근래 한국 천주교회에 ‘가계치유’라는 이설이 은연중에 퍼져나 가고 있다. 어느 특정 교구에 한해서가 아니라 이미 전국적으로 퍼져나가 있는 실정이다. 특히 신학적 비판이 부족한 신자들은 이 내용의 문제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가계치유의 부정적인 결과들이 나타나고 있고, 신자들은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과 그 가르침을 훼손하는 혼합된 이설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는 이 이설의 확산을 방지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따라서 지난해 7월에 있었던 전국 사목국장회의에서 가계치유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였고, 추계 주교회의에 공식 안건으로 올렸다. 주교회의에서는 가계치유에 대해 “가톨릭교회의 정통 가르침에 어긋나는 이설로 신자들의 건전한 신앙생활을 해치고 있다.”고 판단하고 교구별로 대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러한 빠른 결정은 한국교회 안에서 문제시되었던 건전한 신앙생활을 해치는 운동과 흐름(우려되는 성모 신심, 뉴 에이지, 정신세계 운동 등)에 대한 우려와 그 맥을 같이 한다.

 

수원교구는 2006년부터 이를 인지하고 본당 사제들과 신자들한테서 정보를 수집하였다. 그리고 예상보다 많은 신자들 사이에 ‘가계치유’가 교구를 막론하고 이를 주창하는 사람들에 의해 널리 퍼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몇몇 사례들과 그 내용을 수집하여 교의, 영성 신학자들에게 검토를 의뢰하였고, 교의적으로 우려할 만한 요소가 많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이 이설은 성격상 교회가 죽은 이들을 위해 특별히 기도하는 11월 위령성월에 더욱 급속히 퍼져나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수원교구장 주교는 추계 주교회의에서 ‘가계치유’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것에 발맞추어 따라 지난해 11월 2일 위령의 날에 ‘가계치유’에 관한 사목적 권고를 발표하였고, 다른 몇몇 교구도 비슷한 권고를 발표하였다. 이사목적 권고를 중심으로 가계치유의 실상과 문제점을 간략히 알아본다.

 

 

‘가계치유’에 관한 개략

 

이 이설이 어디에서 발생하였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미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짐작한다. 개신교 내에서는 이미 90년대 말에 ‘가계치유’ 문제로 논란이 되었고, 기성 교회를 중심으로 ‘이단’이라는 판단이 내려졌다. 천주교회에서는 2000년 초에 이를 주창하는 미국의 몇몇 사제들의 서적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왔고, 아무런 신학적 비판없이 전국의 몇몇 기도 모임을 통하여 전파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가계치유’는 그 내용이 일관적이지는 않지만, 핵심은 “조상들의 죄의 경향이 후손에게 유전되고 그 죄의 영향으로 현재의 우리 가정이 순탄하지 못하다.”는 주장이다. 특히 “조상들의 죄는 그 후손에게도 나쁜 영향을 끼쳐 육체적 정신적으로 대물림을 하기 때문에 가계에 내려오는 이 원뿌리를 제거하지 않으면 가정의 고질적인 근본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또한 “자신의 가계 안에 어떤 조상이 무엇인가 한이 풀리지 않은 상태에 있으면 좋지 않은 영향이 현재에 미치기 때문에” 이것을 치유하는 것을 ‘가계치유’ 또는 ‘가계정화’라고 하는데, 이 치유를 위해서는 ‘가계치유 기도’를 꾸준히 바치고 성체성사를 통해 가정을 속박하는 사슬을 끊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강조되는 것이 예물과 함께 조상들을 위한 미사를 수적으로 많이 바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내의 성직자들은 이미 ‘가계치유’ 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들의 확산에 대처하려고 하였으나, 정확한 교의적 문제점을 모르는 신자들은 이 ‘가계치유’에 감성적으로 빠져들었고, 그들 중에는 다른 이들에게 기도회 모임 또는 강의를 통해 이러한 이설을 전하면서, 갖가지 회비와 미사예물을 걷어 내용을 모르는 사제들에게 미사를 부탁하기도 하였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가계치유’를 강조하는 몇몇 신자들이 일반 신자들에게 접근하여 ‘가계치유’를 위한 미사를 강조하고 상당한 미사예물을 거둬들인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피해를 입은 한 신자가 전화를 해왔다. 어떤 기도모임에서 알게 된 지방의 신자 한 명이 자기 가정에 접근하여 “남편이 아프고 아이들에게 잔병이 많은 것은 조상들이 죄를 많이 지어서 그것이 대물림하기 때문이므로 조상들의 죄의 유전을 치유하지 않으면 앞으로 더욱 화가 미칠 것이다.” 하고는 봉투 두 개를 내주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이 봉투를 태우고, 자기가 아는 신부님께 부탁하여 가계를 치유하도록 미사를 드려줄 터이니 100만 원 이상이 소요될 것이다.” 했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들은 이 신자는 100만 원이 넘는 돈을 주었고, 아무래도 이상하여 교구에 전화를 한 것이었다.

 

 

‘가계치유’의 문제점

 

첫째, 이 우려스런 ‘가계치유’의 이설 안에는 전통적 가톨릭의 영혼관과 동양적 내세관이 혼합되어 있다. 더욱이 조상의 죄가 후손들에게 전가된다는 것은 가톨릭 신앙이 아니다. 그들의 논리는 구약의 몇몇 성경을 취하고 있지만, 구약을 완성하신 ‘그리스도의 신비와 구원사업’, ‘파스카 신비’가 결여되어 있다.

 

또한 인간을 사랑하시어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고,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를 이루신 ‘하느님의 자비하심’과 대가 없는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간과하고, 오히려 사람들에게 조상의 영향을 강조하여 불안감을 조성하고 병적인 신앙의 길로 인도하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하느님의 구원경륜에 관한 전체적인 이해가 없고 성경에 대한 사전 지식이 충분하지 못한 데서 오는 자구적 성경 해석과 개인의 체험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인간의 죄는 가계 혈통에 따라서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개별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조상들의 죄의 경향이 후손에게 유전”하기 때문에 “조상의 죄악이 삼 대, 사 대의 후손에게까지 영향을 끼친다.”는 주장은 교회가 가르치는 세례성사의 은총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이설이다.

 

세례는 물로써 그리고 말씀으로 다시 태어나는 성사이다. 그래서 교회는, “신자들이 세례를 통해 죄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며,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교회 안에서 한 몸을 이루어 그 사명에 참여하게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또한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성령을 통하여 깨끗하게 되었으며, 거룩하고 의롭게 되었다. 더욱이 그리스도 신자들은 세례를 통하여 모든 죄, 곧 원죄와 본죄, 그리고 모든 죄벌까지도 용서받기에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가로막을 아무런 죄도 남아있지 않다. 그리스도인들은 성화의 은총을 받아 하느님의 자녀, 그리스도의 지체, 성령의 성전이 되어 새롭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셋째, 정성스럽게 미사예물을 준비하여 자주 미사성제를 바치는 것은 교회의 아름다운 전통이다. 그러나 교회의 역사는, 이러한 아름다운 전통을 무너뜨리며 신자들에게 많은 미사예물과 미사의 숫자에 관심을 갖게 하여, 거룩한 예물을 속된 마음으로 교묘하게 변질시키는 부정적인 결과들을 보여준다. 구원은 미사의 숫자와 예물의 양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정성스러운 마음자세와 태도에 있다. 어떠한 경우라도 규정 외에 다른 목적으로 미사예물을 받을 수 없고, 또한 이 미사예물을 교구장의 허락 없이 다른 목적으로 사용할 수도 없다. 더욱이 신자가 다른 신자들한테서 미사예물을 걷는 것은 비록 그것이 좋은 의도일지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부활신앙이다. 교회가 죽은 이들, 특히 연옥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아름다운 전통이다.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 죽었으나 완전히 정화되지 않은 사람들은 영원한 구원이 보장되기는 하지만, 하늘의 기쁨으로 들어가고자 필요한 거룩함을 얻으려면 죽은 다음에 정화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 연옥에 관한 교회의 기본 가르침이다. 연옥은 단죄받은 이들이 받는 벌과는 달리 ‘선택된 이들이 거치는 정화’이다. 그래서 교회는 그들이 정화되어 지복직관을 누릴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미사성제를 드리고 있다. 현재를 살고 있는 후손들이 조상의 죄로 속박을 받는다는 ‘가계치유’의 이설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경향잡지, 2008년 1월호, 문희종 세례자 요한(수원교구 복음화국장 신부)]



1,217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