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6일 (일)
(녹) 연중 제11주일 어떤 씨앗보다도 작으나 어떤 풀보다도 커진다.

강론자료

연중 18 주일-가해-2002

스크랩 인쇄

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2-08-04 ㅣ No.362

연중 제 18 주일 (가해)

 

               이사야 55,1-3       로마 8,35.37-39         마태 14,13-21

        2002. 8. 4.

주제 : 먹고 사는 일

 

무더운 여름입니다. 한여름답게 하늘의 날씨도 오락가락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휴가여행보다 하느님의 집에 오신 여러분들에게 하느님의 축복을 빕니다. 한 주간 안녕하셨습니까?

 

오늘 하느님의 말씀은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겪어야 할 먹고사는 일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누구나 아는 것입니다만, 사람에게는 세 가지 기본욕구가 있다고 합니다. 잠자는 일과 내 후손을 퍼트리는 일 그리고 먹는 일이 그것입니다. 이 세 가지 욕구 모두 중요합니다만 중요한 이 욕구를 어떤 방법으로 채우느냐에 따라 옳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구별하는 것이 세상의 모습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오늘 하느님의 말씀은 이 먹는 문제는 단순히 육체의 힘을 보존하고 유지하는 것만으로 해석하면 전체의미를 모르는 것이라는 내용을 전합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잠자는 일과 자손을 퍼트리는 일은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먹는 문제는 예수님의 기적과 가르침에 몇 차례 등장합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 성서학자들은 하느님의 생명을 우리가 받아들이는 방법인 성체성사에 관련된 의미가 거기에 담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서 그런 심오한 내용을 알아듣고자 한다면, 좀 더 정성이 담긴 자세로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주된 관심은 사람들이 하느님 나라의 의미를 알아듣고 거기에 참여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육체의 병을 고치고 현실 삶에서 도움을 얻는 것을 먼저 생각하기에 약간의 괴리가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먹는 문제는 그다지 어려운 문제도 아니었고 양식이 없다고 고민할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먹는 문제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랬기에 한참의 갈등과 걱정 끝에 먹는 일에 관한 문제를 꺼낸 제자들에게 별 고민도 없이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명합니다. 예수님의 고민거리는 먹는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는 했습니다만, 제자들이 현실적으로 부딪힌 문제에 대해서도 ‘나 몰라라’하지 않고 제자들의 호소를 바탕으로 5,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도 빵이 남는 기적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런 모습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다면 세상에 사는 우리가 행동할 모습도 내가 진정으로 참여하기만 한다면 예수님의 기적을 실현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 삶을 힘들게 하는 커다란 문제는 육체의 배고픔이 주는 것보다는 정신의 배고픔이 더 큰 문제이고, 삶의 기준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하는 소리는 이사야예언자도 말씀하십니다.  애써 벌어들인 돈을 사용하되 제대로 된 양식을 사는 데 사용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현실에서 휴가시간을 갖고 하느님의 말씀을 내 삶에 받아들이면서 산다고 말하면서도 정말로 올바른 자세로 그렇게 하는지 돌아보게 하는 말씀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말은 있습니다만, 무심코 하는 여러 가지 행동들이 모두 내 삶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먹더라도 올바른 것을 고를 줄 알아야 하고 먹더라도 좋은 것을 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살기 위해서는 세상을 바르게 볼 수 있는 지혜와 하느님의 도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배가 부르다고 해서 세상살이에서 만나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하느님의 창조, 사람들이 갖는 마음의 여유, 하느님께 시간을 내어드리는 일의 의미를 무조건 축소하고 무시하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생기는 모든 문제를 과학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무시하고 소홀히 함으로써 생기는 삶의 공허함과 병폐는 생각보다 더 갈등을 만들어내곤 합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겸손한 마음으로 들을 것을 요청하십니다. 그 말의 의미를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를 하느님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입니다. 바오로 사도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우리는 내 삶이 구속받기 싫다는 이상한 논리를 앞세워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의 눈길에서 도망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아무리 분명해 보이는 세상에도 우리의 지능과 지혜로 해석할 수 없는 일들이 분명히 있는데도 말입니다.   

 

이사야 예언자의 간절한 선언이나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올바로 알아듣고 내 삶에서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양식,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오시고자 하는 힘, 성체에 대한 합당한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무더운 여름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자 시간을 내신 여러분들에게 하느님의 축복을 빕니다. 그리고 그 축복이 올바른 열매를 맺어 내 삶에 도움이 되게 하려면 내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살피는 시간도 필요한 일입니다.



450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