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5일 (토)
(녹) 연중 제10주간 토요일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강론자료

연중 07 주일-다해-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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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신부 [gold] 쪽지 캡슐

2001-02-17 ㅣ No.276

연중 7 주일 (다해)

 

        1사무 26,2,7-9.12-13.22-23     1고린 15,45-49    루가 6,27-38

    2001. 2. 18.

주제 :  하느님의 선택-인간의 응답

 

한 주간 잘 지내셨습니까?

눈이 지독하게 많이 와서 생활에 불편이 많았을 것입니다. 피해를 입으신 분들도 적잖을 터인데, 잘 마무리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성당에도 마찬가지로 엄청나게 많은 눈이 내렸는데, 몇몇 어르신들이 나오셔서 여러분들이 보시는 것과 같은 좋은 환경을 만들어놓았습니다.

 

사람이 굳이 자연의 힘을 거슬러야 할 일은 아니지만, 자연을 상대로 해서 싸운다는 것은 참으로 힘겨운 일입니다. 어떤 해는 겨울 가뭄이라고 해서 걱정하는 때가 있는가하면, 올해와 같은 경우에는 때 아니게 겨울홍수에 해당할 것입니다.  모두 '자연의 조화'라고 생각하면 편하고 그 해결방법을 찾는 것이 조금은 나을텐데, 세상을 힘겹게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가리켜 '자연의 심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렇게 되면 싸움은 시작해야 하는 것이고, 결론이야 사람이 이기겠지만 그 과정은 참으로 힘겨운 일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자연을 상대로 해서 움직이는 생활이 힘들수록 자칫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한 행동마저도 소홀히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생활 가운데 가장 힘든 것은 '사랑'입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사랑은 할 일없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우리가 인생살이를 통해서 사랑이라는 감정은 느껴 볼 기회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은 사람의 생활을 풍요롭게 합니다. 이 사랑의 생활은 내게는 하찮은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중요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나는 장난으로 던지는 돌멩이 한 개가 개구리에게는 사형선고와 같은 결과를 빚어낼 수도 있는 일이 '사랑이 포함돼 있는 행동이냐, 아니면 사랑이 갖춰져 있지 않은 행동'이냐의 구별이 됩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가장 완벽한 사랑의 본보기를 '예수님에게서 발견한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하지만, 그 사랑은 우리가 실천하기 매우 어려운 것 중의 하나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 다른 사람을 구하는 사람이 가끔씩 있기는 합니다만, 그 사랑 우리 모두 실천할 수 있는 쉬운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보다는 좀 더 현실적으로 사랑의 방법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는 사랑의 황금률이 나옵니다.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나 혼자 만족할 수 있는 일이라면 혼자 감당하면 그것으로 충분하지만, 다른 사람의 반응이 필요한 일이라면 내가 상대방을 내 맘대로 바꿀 수는 없으므로 내가 원하는 일을 남에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 '황금률'의 의미입니다.  하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이 황금률의 규정을 잘못해석하고 행동합니다. 내가 먼저 해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내게 그와 같은 반응을 보이면 나도 그때 하겠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이 마음을 고집하고 있는 한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흘러도 예수님의 가르침과 외침은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이 세상에서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당시의 많은 사람들, 특히 자신의 생각을 큰소리로 드러내고 말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실패한 인생'이라고 규정했습니다. 혹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도 이런 판단과 외침이 통하지 않는지, 그리고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나는 거기에서 얼마나 자유로운지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본보기를 알아듣고 실천하는 생활은 힘듭니다.  예수님이 남겨주신 삶의 자세가 가능하려면 많은 노력과 새로운 삶의 가치관이 필요하기에 그렇습니다. 세상의 삶이라는 것이 내 인생하나로 완성되는 것도 아니고 끝나는 것도 아니며, 내 후대의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연장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가능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것을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영향 때문에 그것이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신앙인들이 기다리는 하느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실현되기가 어려운 일입니다.

 

첫 번째 독서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다윗입니다. 이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군(聖君)으로 통합니다.  그렇게 부를 수 있고 공경 받는 한가지 일화가 오늘 독서의 내용입니다.  사울은 임금이기는 했지만, 다윗에게는 원수였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을 사사건건 좋지 않게 보며 끊임없이 목숨을 위협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입장에 처해있던 다윗에게 상존하는 위협을 제거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예상외의 행동을 합니다.  그가 가졌던 삶의 가치관이 달랐기에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특별한 분을 내가 맘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 다윗이 가졌던 가치관입니다. 우리는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이 말은 다른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사용하는 말이지,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우리가 긍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말입니다.  우리 자신의 생각이 가능하고, 하느님의 영역에 해당하는 것까지 우리가 좌우지하고 싶어하기 때문이고 하느님의 의지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는 일은 내 힘이 있을 때는 가능한 행동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언제나 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사람은 흙에서 출발한 존재이기에 세상의 생명이 다하면 다시 흙으로 돌아갑니다. 처음부터 사라지지 않는 존재로 태어난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약한 존재가 만물의 영장이 되고, 세상을 호령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하느님을 알고 그분의 뜻을 이 세상에 실현할 수 있는 존재이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오늘은 연중 7주일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을 선택하신 의도에 맞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인지 잠시 묵상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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