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성령강림 대축일-가해-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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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1999-05-22 ㅣ No.96

성신 강림 대축일 (가해)

          사도행전 2,1-11 1고린 12,3ㄴ-7.12-13     요한 20,19-23

       1999. 5. 23.  고양동

주제 : 하나 되는 삶

 

한 주간 평안히 지내셨습니까?

먼저, 연휴인데도 주일을 맞아 성당을 찾아주신 여러분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하든지 자신의 평안과 안녕을 위해서 먼저 움직이는 법인데, 그 가운데서도 하느님의 시간을 따로 떼어놓으신 여러분에게 하느님께서도 정당한 응답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오늘은 성령강림 대축일입니다.  성령강림은 하느님의 또 다른 힘,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하늘에서 내려오신 날입니다. 물론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알려주시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그렇게 오신 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삶을 통하여 그 뜻을 알아듣고, 그 뜻을 실천하며 산다면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신 하느님의 축복에 우리가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혼인식은 두 사람이 하나가 되어 살겠다고 많은 사람앞에서 선언하는 예식이고, 거기에서 사회를 구성하는 한사람, 한사람의 생명체가 태어납니다.  그리고 그 각각의 사람들이 모여서 또 하나의 사회와 국가를 이루는 것이고, 그렇게 국가와 사회가 모여 하나의 지구에 사는 사회공동체가 형성됩니다.

 

오늘 성령강림 대축일은, 서로 다른 곳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사람들이 하나의 힘으로 살 수 있도록 인류에게 내려오신 하느님의 힘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 하느님의 힘을 받아 달라진 삶의 모습이 오늘 성서 말씀에 나옵니다.  우리도 삶에서 그렇게 달라진 변화를 이루고자 한다면, 먼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겠다는 다짐이 있어야 합니다.  축복은 우리가 먼저 변화의 모습을 보일 때 그 안에서 새로운 싹과 기쁨으로 솟아나기 때문입니다.

 

오늘 사도들은 예수님의 부활이후, 두려워 떨던 삶에서 벗어나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를 힘입어 희망을 주고 용서를 선포하는 대열에 들어서게 됩니다.  교회에서는 그 용서의 힘을 성령의 작용이라고 가르칩니다. 하느님의 힘인 성령이 움직이시는 모습을 우리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삶의 희망을 주고 나에게 잘못한 사람의 잘못을 용서한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를 통하여 하느님의 힘이 작용하는 것입니다.

 

용서해주는 일의 참된 의미는 하나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두 개체 사이에 보일 듯 말듯하게 존재했던 갈라놓는 담이 일시에 사라지게 하는 것이 바로 용서입니다.  첫 번째 독서에서도 사도들은 두려움에 떨기도 했지만, 예루살렘의 한 곳에 모여서 예수님의 약속대로 성령을 기다리며 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잠시 후 그들은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서 숨어있던 곳을 박차고 나와 여러 사람이 한 가지 내용으로 기쁨의 소식을 전합니다.

 

연휴인데도 다른 곳에 가지 않고 이곳에 모인 우리 신자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성체를 모시고 이곳 성당을 떠날 때, 기쁨과 희망을 함께 갖고 나가는지 우리는 자신을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큰 소리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움직이는 삶은 어려움과 곤경에 처한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 성령을 받아 전혀 다른 삶의 모습을 보이신 사도들의 뒤를 따를 수 있는 행동입니다.  

 

사도들도 하느님의 성령을 받아 이렇게 바뀌기 위해서는 '한 자리'에 모여 기도할 줄 알았습니다. 과연 우리는 마음을 얼마나 한 자리에 모으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엊그제 동창신부를 만났습니다. 그 자리에서 제가 말을 꺼냈습니다. "한창 추울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요즘 날씨가 좋아지니, 성당에 나오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었어!" 그랬더니, "너희도 그러냐? 여기도 마찬가지야!"하는 소리였습니다.  어제는 '부처님이 오신 날'입니다. 그분이라고 해서 사람이 따르지 말아야 할 길을 알려주러 오신 것은 아닌데, 사람들은 그 의미를 생각하기 이전에 노는 날이니까, 우리 '나가자'해서 그저께부터 고속도로는 저속도로가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말씀드린 모습은 주일에 한번만이라도 하느님의 말씀에 가까이하기 위해서 모이신 여러분에게 드리는 말씀은 아닙니다.

 

우리가 삶에서 좋은 모습을 이루어가고, 삶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는 일은 아닙니다.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해서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의미를 우리가 어떻게 깨닫고 사는지 한 손이라도 가슴에 얹고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런데 교적은 여기에 두고 많은 사람들이 다르게 생각합니다.  마치도 우리가 살아가는 일이 하느님을 위해서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삶의 평화, 우리를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일치의 모습은 우리가 정성이 가득한 마음으로 준비할 때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삶에서 이루고자하시는 좋은 모습을 위하여 하나되는 마음으로 하느님의 성령께 간청합시다.  우리가 한마음 한 뜻으로 정성스럽게 살 수 있게 해주시기를 말입니다.  

 

잠시 우리의 마음을 하느님께로 모으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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