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부활 3 주일-가해-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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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1999-04-17 ㅣ No.80

부 활 제 3 주 일 ( 가 해 )

              사도행전 2,14. 22b-33  1베드로 1,17-21   루가 24,13-35

         1999. 4. 18.

주제 : 올바로 받아들인 사람들의 삶의 변화

 

오늘은 부활 3번째 주일입니다.

한 주간 잘 지내셨습니까?  부활시기는 우리가 지내는 기쁨의 시기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자세가 기쁘지 않다면, 새로운 다짐과 전기가 필요합니다.  예로부터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으니, 부활에 대한 자세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사람의 생활은 마음먹기 나름입니다.  이렇게 받아들이나 저렇게 받아들이거나 이루어지는 사실들에는 변함이 없지만, 일들의 영향을 평가하는 것은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엠마오로 물러갔던 두 명의 제자들에게 일어난 사건이 오늘의 복음 내용입니다.  이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왜 사흘도 머물지 못하고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왔는지 우리가 짐작할 수는 있습니다. 그들이 가졌던 기대가 컸던 만큼 그들이 받은 실망도 컸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성격에 나타나는 공통적인 문제점들을 오늘의 말씀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급한 마음으로 행동하게 되면 일의 본질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닥친 일의 참모습을 깨닫지 못했으면서도, 글레오파라는 사람은 그 사실을 물어보는 나그네가 딱하다는 심정으로 대응합니다.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던 사람으로서 요새 며칠 동안에 거기에서 일어난 일을 모르다니, 그런 사람이 당신 말고 어디 또 있겠습니까?"  같은 세상, 같은 길이의 삶을 지내면서도 우리는 서로 다른 결실을 맺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렇게 차이나는 원인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처음 출발할 때 구비된 조건에 차이가 날 수도 있겠습니다만, 더 큰 것은 일의 진행과정에 우리가 갖는 마음의 차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난 몇 개월전부터 저는 가정방문을 하고 있습니다.  그 가정방문도 이번 주간으로 마치게 됩니다. 가정방문을 하면서 갖게 된 생각이긴 합니다만, 우리 신자들의 삶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같은 아파트라고 해도 높은 층에 살거나, 유사한 조건이라도 신앙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슬플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 그럴까?  신앙이 그렇게 부담스러운 것일까?  그렇게 느끼시는 분들에게 신앙의 원리에 맞는 타당한 말을 하고 뒤돌아서 나오기는 했지만 그 때의 느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들을 수 있는 소리로 대답을 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신앙이 여러분들이 누릴 수 있는 삶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세상일은 우리가 받아들이기 나름입니다. 지난주간에 95세 되신 할아버지 한분이 대세 받으셨습니다.  그 결과는 본인의 노력보다는 함께 살던 다른 가족의 간절한 바램이 이루어진 결과였습니다.  그분은 인생의 뒤늦게 무슨 뜻이 있어 거기에 참여하신 것일까요?

 

엠마오 동네로 갔던 두 명의 제자가 가졌던 마음 자세도 거기에서 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몇 년 혹은 몇 개월동안 예수님을 따라 다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분이 어이없이 ’관헌’의 손에 잡혀 죽자, 모든 것을 내 던지고 고향 앞으로 갑니다. 그러나 그들을 잃지 않기 위해서 예수님은 그들을 만나러 갑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애씁니다.  물론 예수님이시기에 가능하고, 현실생활의 우리는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가정 방문을 하면서 몇몇 집에 들어갔다가 실망하고 나온 적이 있습니다.  제가 예수님의 마음을 갖지 못했거나 , 방문받는 가족의 마음이 너무 굳게 닫혀있거나 한 가지 일 것입니다.

 

{학생미사 때 추가: 학생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자리에 앉아 있습니까?  고양동 본당의 수용능력을 감안하면, 더 많은 학생이 와도 곤란하지만,  매 주일 성당에 오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느낀다면, 그렇게 느끼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사정을 대고 이곳에 오지 않은 사람들이 갖는 마음과도 비슷할 것입니다.  성당에 나오는 시간이 많아지면, 그만큼 여러분들이 하는 공부에도 차질을 빚습니까?  그렇다고 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우리 마음자세에 따라 달라집니다.  한 가지 일에 열심히 할 줄 아는 사람들은 다른 일에도 소홀하지 않습니다.  성당에 나오는 일 때문에 여러분들이 거두어야 할 결실이 줄어든다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지금 갖는 마음자세를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의 잔치에 참여했던 두 사람은 기쁨에 넘쳐 자기들의 고향을 떠나 밤길을 달려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갑니다. 그리고 훗날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대열에 참여했을 것입니다. 그 체험을 한 사람들이 전하는 모습이 오늘 첫 번째 독서의 내용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다윗이 읊었던 시편을 인용하여 부활을 체험한 사람의 감동을 노래합니다.  ’주께서 내 오른편에 계시오니 나는 항상 주님을 가까이 뵈오며 내 마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당신은 내 영혼을 죽음의 세계에 버려 두지 않으시고 당신의 거룩한 종을 썩지 않게 지켜 주실 것입니다. 당신은 나에게 생명의 길을 보여 주셨으니 나는 당신을 모시고 언제나 기쁨에 넘칠 것입니다’

 

다윗이 읊은 대로 사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다윗 임금이 하느님을 이렇게 찬양하기 위해서 수많은 세월을 오락가락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끊임없이 돌아와야 할 곳을 알고 있었기에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부활시기는 우리도 예수님의 그 삶에 일치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시기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준비하신 선물은 조금만 노력하면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노력에 비해서 더 많은 결실을 얻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한 노력과 결실이 일치하지 않을 때 실망하고 포기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엠마오로 갔던 두 제자의 모습을 통해서 그렇게 하지 말 것을 권고하십니다.

 

사람은 자신이 처한 환경을 올바로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바꿀 것이 무엇인지, 지금보다 나아질 것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베드로 사도는 자신의 편지에서 우리의 구원과 해방은 고귀하신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어진 것이니, 올바로 깨닫고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같은 세상의 길이를 살면서 우리가 기뻐하고 슬퍼하는 것은 우리 마음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리고 올바른 길을 찾는 것도 그에 따라 달라집니다.  우리 삶의 중심은 슬픔과 고민에 빠져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과 부활의 하느님이십니다.

 

여러분들은 이번 한 주간 동안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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