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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나는 믿나이다5: 그리스도인의 삶 - 하느님의 구원, 법과 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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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7-27 ㅣ No.386

[나는 믿나이다] 그리스도인의 삶


하느님의 구원, 법과 은총

 

 

지난 호에서는 인간의 존엄함을 증진하고 인류 공동체를 발전시키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임을 성찰하였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함을 증진하고 인류 공동체를 건설하는 일은 사람의 능력과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죄 때문에 상처 입은 인간에게는 하느님의 구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도우심은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인도하는 법(도덕률)을 통하여, 그리고 인간을 지탱해 주는 은총을 통하여 주어진다”(교리서, 1949항). 이번 호에서는 하느님 구원의 통로인 ‘법(도덕률)과 은총’을 살펴보자.

 

 

1. 법(도덕률) - 구원에 필요한 하느님의 도우심

 

온 나라 국민의 관심을 끈 일이 있다. 한 나라의 최고 봉사자인 대통령을 뽑는 일과 행정부의 장관을 임명하는 일이 그것이다. 이때 사람들 사이에 논란이 되었던 내용은 그 자격 여부와 ‘법 준수’였다. 삼성이라는 한 기업군의 불법행위도 있다. 이를 위해 특별검사를 임명하여 조사하였고, 청문회를 통해 따졌다.

 

그런데 결과는 그들의 행위(범법행위)를 오히려 정당화시켜 주는 꼴이 되어버렸다. 경제를 말하고, 능력을 말하고, 공소시효를 말하고, 현실을 거론하였다. ‘도덕률’ 또는 ‘도덕성’이 밥을 먹여주지 않는다고 서슴없이 말하게 되었다. 그래도 되는 것인가? 교회의 가르침대로라면 우리는 교리를 어겼다. 다음의 내용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3편 제1부 제3장에서 ‘법’에 대해 가르치는 내용이다.

 

교회는 법(도덕률)을 “하느님의 지혜의 작품”으로서 “만민의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시고 살아계신 하느님의 섭리에 참여하는 것, 이성이 내리는 규정”이라고 정의한다. 이 법(도덕률)은 영원한 법, 자연법, 계시된 법, 국법, 교회법 따위로 다양하게 표현된다. ‘영원한 법’이란 하느님 안에 있으며 모든 법의 근원이 되는 법으로서 “피조물들 사이에, 그들의 선익을 위해 또 그들의 목적에 비추어, 창조주의 권능과 지혜와 선으로 세워진 합리적 질서”라 할 수 있다.

 

자연법은 보편적이고 불변한 것이며, 창조주께서 모든 사람의 마음에 새겨주신 법으로서 “인간의 선택을 이끄는 도덕규범의 체계를 세울 수 있는 튼튼한 기초가 되며, 인간 공동체들을 건설하는 데에 필요불가결한 도덕적 기초가 된다”(교리서, 1959항). 한때 사람을 사고팔 수 있는 물건 취급한 적이 있다. 부끄럽게도 인류는 그 사람 아닌 사람을 ‘노예’라고 불렀다. 그들에게는 ‘인격’이 없었다. 당연히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없었다. 인간으로서 기본권리(인권)라는 것이 있을 턱이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 자연법에 토대를 둔 이 인권의 개념은 구체적으로 사람답게 살 권리라는 정치권(참정권)과 경제권의 영역을 넘어 이른바 ‘행복하게 살 권리’라 하는 ‘복지권’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대부분 국가에서는 헌법으로 이를 보장하기에 이르렀다. 이 같은 인권 개념의 발전이 보여주는 것처럼 자연법은 “모든 사람이 똑같이 항상 분명하게 즉각적으로 지각하는 것이 아니”(“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편”, 417항)며, 설령 지각한다고 하더라도 자동으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개인과 공동체의 도덕적 기초가 되는 자연법의 지각과 실현은 끊임없는 노력을 요구한다. ‘성장’과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차별과 인권침해를 애써 외면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특히 더욱 그러하다.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성장이며 발전인지를 한순간도 놓쳐서는 안 된다. 성장과 발전은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다가, 궁극적으로는 참된 ‘인간화’와 참된 ‘사회화’에 그 목표를 두고 있으며, 이는 도덕적 기초 위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계시된 법(옛 법과 새 법 곧 복음의 법) 가운데 ‘옛 법(구약의 법)’은 하느님의 영원한 법을 사람들에게 드러낸 첫 단계이며, 그 윤리적 명령은 십계명에 요약되어 있다. 십계명은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에 어긋나는 것을 금하고, 사랑을 위한 기본 행실을 명하지만, 계명을 행하는 데 필요한 성령의 능력과 은총을 주지 못하므로 아직 완전한 것이라 할 수 없다. 옛 법, 곧 구약성경을 통해 보여주신 하느님의 영원한 법은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고발하고 드러내는 구실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복음(새 법, 복음의 법, 자유의 법)을 준비시킨다.

 

새 법, 곧 복음의 법은 자연법을 통해서 또는 계시된 법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법(옛 법)을 지상에서 완성한 것으로서, 우리는 이를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가르침에서 그리고 사도들의 윤리적 교리교육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새 법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으로 받은 성령의 은총으로서, 이 은총은 사랑을 통해 작용한다. 이 새 법은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으로 요약할 수 있다.

 

“새 법은 … 성령께서 불어넣어 주시는 사랑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사랑의 법’이라고 부른다. 신앙과 성사들로써 행동하도록 은총의 힘을 주기 때문에 ‘은총의 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새 법은 또한 ‘자유의 법’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새 법이 의식(儀式)적이고 법률 지상주의적인 율법 준수를 요구하던 옛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사랑의 자극을 받아 기꺼이 행동하도록 우리를 이끌어주기 때문이다”(교리서, 1972항).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의 법률 지상주의적인 율법 준수를 준엄하게 꾸짖으셨다. 그렇다고 해서 그 율법을 지키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이를 사랑의 계명으로 완성시키고자 하신 것이다. “법은 자격이 있는 권위가 공동선을 위해 공포한 행동 규칙이다”(교리서, 1951항). 그리스도인에게 경제, 능력, 현실 따위의 이유를 들어 공동선을 위한 법을 무시하거나 더 나아가 불법과 탈법을 정당화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첫째는 스스로를 죄의 권세에 맡기는 것이며, 둘째는 공동선을 해치는 것이고, 셋째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계명을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 은총 - 구원에 필요한 하느님의 도우심

 

사람의 힘만으로 인간 존엄함을 증진하고, 공동체를 건설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의 계명을 온전하게 따를 수는 없다. 사람의 힘으로 하느님의 뜻, 하느님의 이름, 하느님의 나라를 세울 수도 없다. 비록 그 본성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닮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구원되었다고 하더라도, 사람은 여전히 유한하며, 게다가 죄로 말미암아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한다.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하느님의 구원은, 앞에서 다룬 도덕률을 통해서 그리고 은총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진다.

 

엄밀히 따져 내 몫이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땅이 내 것인가? 하늘이 내 것인가? 세상 그 어느 것도 내 것이라 할 것은 사실 없다. 그 모든 것이 내게 주어진 것이다. 하다못해 생명까지도. 모든 것은 하느님한테서 온 것, 하느님께서 거저 주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은총이라 한다. 죄까지도 하느님의 은총일 수 있다. 나의 죄는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성령의 은총은 우리의 죄를 씻어주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리고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누리게 해준다. 이를 의화라고 한다. 성령의 은총이 작용하여 내는 첫 열매는 회개이다. 회개함으로써 하느님한테서 오는 용서와 의화를 받아들인다. 의화는 하느님의 사랑을 거스르는 죄에서 인간을 풀어줄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통해 하느님의 의로움을 받아들이게 한다. 곧 의화는 그리스도의 수난으로 얻어지고, 세례 때 주어지는 성령의 은총으로 생기는 것으로서, 그리스도를 믿으며 성령의 은총에 협력하는 삶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우리의 의화는 하느님의 은총에서 나온다. 은총은 하느님의 자녀 곧 양자가 되고, 신성과 영원한 생명을 나누어 받는 사람이 되라는 하느님의 부름에 응답하도록,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호의이며 거저주시는 도움이다. 은총은 그 자체로 하느님 생명에 대한 참여이며 초자연적인 하느님의 초대이다. 은총은 우리가 신앙을 통한, 의화와 사랑을 통한 성화에 계속 협력하도록 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시작하신 일을 완성하시며, 인간의 자유로운 응답을 요구하시기 때문이다. 이 은총에는 성화 은총, 도움 은총, 성사 은총, 특별한 은총 따위의 유형이 있다.

 

그리스도인은 세례로 신비체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은총을 받는데, 그리스도의 은총은 무상의 선물이며, 하느님께서 우리 영혼을 죄에서 치유하여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령을 통해서 우리 영혼 안에 불어넣어 주시는 하느님의 생명이다. 이 은총을 성화은총(聖化恩寵) 또는 신화 은총(神化恩寵)이라 한다. 사람이 하느님과 함께 살고, 하느님의 사랑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그 사랑을 완전하게 하는 이 성화 은총은, 지속적이며 초자연적인 성향을 갖기에 상존 은총(常存恩寵)이라고도 한다.

 

도움 은총[助力恩寵]은 회개의 시작이나 성화 활동의 과정에서 베푸시는 하느님의 호의며 거저 주시는 도움이다. 하느님의 호의를 받아들이도록 인간을 준비시키는 것과 인간의 하느님의 부르심에 자유롭게 응답하는 하는 것 역시 은총 곧 하느님의 도움이 작용한 결과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을 직접 감동시켜 주시고 직접 움직이시기 때문이다.

 

은총에는 우리를 다른 사람의 구원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성장에 이바지할 수 있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내려주시는 선물들도 포함되는데, 이에는 성사 은총과 특별한 은사(카리스마)가 있다. 성사 은총(聖事恩寵)은 성사의 고유한 은혜를 말한다. 카리스마는 성화의 은총을 위하여 있는 것으로서, 교회의 공동선을 목적으로 하는 특별한 은사를 말한다.

 

은총의 영역에서는 하느님께서 주도권을 행사하신다. 회개와 용서와 의화의 기원이 되는 최초의 은총을 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하느님께 최초의 은총을 받은 뒤 우리는, 성령과 사랑의 인도를 받아 우리 자신과 다른 이들을 위해, 우리의 성화를 위해, 은총과 사랑의 성장을 위해, 나아가 영원한 생명을 위해 필요한 은총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공로를 세울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거저 베푸시는 의로움의 결과로 우리에게 참된 공로를 베풀어주실 수도 있다.

 

 

3. 성찰하기

 

- 우리는 옛 법(십계명)에 머물러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교회의 법규는 신자들에게 기도 정신과 윤리적 책임, 그리고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성장에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선을 제시하려는 데에 그 목적이 있음에도, 우리는 그것을 충분조건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교회가 제시하는 교회의 법규는 다음과 같다. 주일과 의무축일에는 미사에 참여하고 육체노동을 삼갈 것, 최소한 일 년에 한 번은 자기 죄를 고백할 것, 적어도 한 번 부활시기에 성체를 받아 모실 것, 교회가 정한 날에 금식재와 금육재를 지킬 것, 교회의 필요를 지원할 것 등이다.

 

- 자연법에 토대를 둔, 그리고 국법의 최상위 법인 헌법에서 제시하는 인권(참정권, 경제권, 행복 추구권 따위)을 우리는 추상적인 관념이나 비현실적인 이념쯤으로 간주하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려는 노력에 소극적인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하겠다. 만일 이를 지켜야 할 의무라기보다는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필요에 따른 선택’ 정도로 여기는 것은 아닌가?

 

- 치유의 기적이나 이상한 언어의 은사와 같은 예외적인 은사(카리스마)를 앞세우면서, 그것이 성화 은총을 위한 것이며, 교회 공동선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며, 교회를 건설하는 사랑에 이바지하는 것임을 잊지 않았는지도 성찰해야 한다.

 

- 우리의 감정이나 업적을 근거로 우리가 의롭게 되고 구원받았다고 추론하거나 주장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은총은 초자연적인 것이고 신앙으로만 인식될 수 있으며, 구원은 하느님에게서 오며, 인간이 하느님 앞에 쌓는 공로 역시 하느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경향잡지, 2008년 5월호, 박동호 안드레아(서울대교구 신수동성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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