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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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124위 순교자전: 정광수와 윤운혜, 윤점혜와 정순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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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4-06 ㅣ No.789

한국 교회 124위 순교자전 - 정광수와 윤운혜, 윤점혜와 정순매

 

 

시복운동 중인 124위 가운데 부부 순교자들이 몇 분 있습니다. 유중철 요한과 이순이 루갈다, 조숙 베드로와 권 데레사, 박경진 프란치스코와 오 마르가리타 등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신유박해 때 순교한 부부 정광수 바르나바와 윤운혜 루치아, 그리고 정광수의 동생인 정순매 바르바라와 윤운혜의 언니 윤점혜 아가타를 만나보겠습니다.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도곡리에서 태어난 정광수 바르나바(?-1801년)는 1791년 권일신에게서 교리를 배웠습니다. 신자가 아닌 부모는 신앙을 버리고 제사에 참여하도록 강요하였습니다. 이에 신앙을 따르고자 아내와 함께 1799년 서울 벽동(碧洞)으로 올라와서 최해두와 조섭과 함께 세 집이 담을 터놓고 지냈습니다. 공터에는 몇 칸 되는 방을 깨끗하게 지어서 주문모 신부가 강론할 장소를 마련하였습니다. 이곳에서 주 신부를 모시고 홍필주 · 최해두 · 조섭 · 홍익만 · 김계완 · 이용겸 · 강완숙 · 윤점혜 · 홍시호 등과 더불어 사흘 밤낮에 걸쳐 첨례와 강학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교회서적을 필사하여 신자들에게 배포하는 일을 맡았고, 아내와 함께 상본과 묵주를 제작하여 교우들에게 보급하기도 하였습니다. 1801년 박해가 일어나자, 그는 교회의 우두머리로 지목되었고, 2월에 집을 급습한 포졸들에게 아내가 먼저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이곳저곳으로 피해 다니다가 5월 초 포도청에 자수하였습니다. 포도청과 형조에 갇혔다가 고향 여주로 이송되어 그해 12월 27일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습니다.

 

정광수의 부인인 윤운혜 루치아(?-1801년)는 1795년에 순교한 윤유일 바오로의 서(庶) 사촌누이입니다. 모친 이 씨한테 교리를 배워 익혔고, 남편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제사문제 때문에 남편과 함께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1801년 박해가 일어나자 자신과 조섭, 최해두의 집에 있던 성화와 교회서적들을 임조이의 집 방구들 속에 옮겨두기도 하였습니다. 2월 초에 체포된 그녀는 포도청과 형조에서 배교를 강요당하며 신문을 받았으나 조금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밝혀진 사실 외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으며 배교도 거부하였습니다. 그녀는 4월 2일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습니다.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대석리에서 태어난 윤점혜 아가타(?-1801년) 는 윤운혜의 언니로서 하느님께 봉헌하기를 갈망하여 동정 서원을 했으며 남들의 이목을 피하고자 머리에 쪽을 찌어 과부라고 하였습니다. 서울에 올라온 그녀는 여회장 강완숙 골룸바의 집에서 10년 가까이 살면서 강 골룸바가 동정녀들을 가르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녀는 엄격한 생활과 잦은 단식, 엄한 고행에 끊임없는 기도와 묵상을 하였습니다. ‘나도 아가타 성녀처럼 순교자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하면서, 주보성녀에 대한 특별한 공경심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1801년 박해에 강완숙과 함께 체포되어 석 달 동안 갇혀 고문을 감내해야만 했습니다. 포도청에서 “비록 형벌을 받아 죽을 지경에 이르더라도 참으로 마음을 바꿀 뜻이 없습니다.”라며 신앙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녀와 정순매는 서울이 아닌 고향으로 이송되어 1801년 5월 24일 여주에서 순교하였습니다. 순교 뒤 사람들은 그녀의 순결함에 대한 증거인지 상처에서 피 대신에 젖처럼 하얀 액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난 정순매 바르바라(1777-1801년)는 정광수의 누이 동생입니다. 동정을 서원하면서 외교인들에게는 ‘허’씨와 결혼했다가 쫓겨났다고 하였습니다. 당시 사회가 동정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올케인 윤운혜에게 교리를 배웠고, 오빠를 따라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신심이 불러일으키는 모든 선행에 전념하였고, 여성임을 뛰어넘는 용기를 가지고 고통을 감내했습니다. 1801년 박해에 체포되어 포도청과 형조에서“다년간 공경하여 믿어온 사학을 어찌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겠습니까? …저는 사학을 매우 좋아하여, 포도청의 모진 형벌과 본 형조의 엄한 신문이 고통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나, 바꿀 마음이 참으로 없습니다.”라고 신앙을 고백하였습니다.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는 “이 세상에서 삼위일체적 삶을 살려면 요셉 성인을 공경하고 나자렛 성가정을 본받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성 요셉 성월에 성가정을 본받아 하느님께 대한 크나큰 신앙과 겸손으로 산 정광수 · 윤운혜 부부 순교자와 그들의 누이동생과 언니 순교자를 본받았으면 합니다. 특히 한국 교회의 요람인 ‘양근성지’(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오빈리 173-2)에서 순교자 윤운혜와 윤점혜의 삶과 신앙을 배울 수 있습니다.

 

[경향잡지, 2010년 3월호, 여진천 폰시아노 신부(원주교구 배론성지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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