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지] 신앙의 섬, 일본 고토를 가다 (상) 간절했던 신앙의 역사 간직한 섬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2-22 ㅣ No.774

신앙의 섬, 고토를 가다 (상) 간절했던 신앙의 역사 간직한 섬


1797년 박해 피해 온 키리시탄 정착...가난 굶주림 속에도 성당 건립에 헌신

 

 

오소 성당(예수성심성당). 나가사키현이 지정한 유형문화재다. 18세기 고토에 이주한 키리시탄은 척박한 땅에서 굶으면서도 많은 성당들을 설립했다.

 

 

고토는 이미 한국 신자들에게 잘 알려진 나가사키, 운젠 등과는 달리 잘 알려지지 않은 신앙의 역사를 간직한 섬이다. 신앙의 간절함이 흐려져 가는 현대사회에서 박해와 증거라는 신앙선조들의 역사는 언제, 어디서든 참으로 값지다.

 

 

고토의 고도를 가리키며

 

“이때 밟아도 좋다고 목판 속의 그분은 신부를 향해 말했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은 바로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고토를 향하며 내내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은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 가운데 한 구절이었다. ‘밟아도 좋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이곳은 일본. ‘그리스도의 모습이 새겨진 목판을 밟을 수 있는가’에 따라 신자를 가려내 처형했던 나라. 한국보다 먼저 천주교가 전파되고, 신자들에게 더욱 잔인한 고문과 처벌을 자행했던 나라다.

 

사세보항에서 출발한 쾌속선이 고토에 도착하고 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끝에 사세보항에서 출발한 쾌속선은 고토의 끝자락에 가 닿았다. 겨울이어서 아직 어슴푸레한 하늘 너머로 해가 고개를 내밀었다. 일본에 도착한 첫날은 폭설로 고속도로가 폐쇄됐었는데 오늘은 다행히 눈은 오지 않는다. 안전모를 쓴 일본인들이 바쁘게 일터로 출근했다.

 

 

키리시탄이 고토까지 오게 된 이유

 

‘고토’라는 두 음절을 처음 들어본 것은 2007년. 그러니까 가톨릭신문의 ‘아시아 교회를 가다’ 일본편에서였다. 다섯 개의 섬, 즉 오도(五島)라는 뜻의 일본어 발음인 고토는 신앙의 섬으로도 유명하다.

 

1797년, 당시 오무라령 소토메(현 나가사키시)에서 개척을 위한 이주민들에 이어 3000여 명의 키리시탄(그리스도인을 뜻하는 포르투갈어)들이 고토에 들어온다. 박해의 엄한 서슬을 피해 이곳을 찾은 그들에게 주어진 땅은 산골의 외진 곳이나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척박한 땅. 어려운 생활을 견딜 수 없었던 그들 가운데는 다시 소토메로 돌아간 이들도 있으나 대부분 몰래 신앙을 지키며 힘들게 살아간다.

 

아오가사우라 성당의 주보성인인 성 미카엘 상.

 

 

고토는 다섯 개의 섬으로 이뤄져있지만 크게 위에 위치한 고토라는 뜻의 가미고토(上五島), 아래에 위치한 고토라는 뜻의 시모고토(下五島)로 나뉜다. 지금 이곳은 가미고토다.

 

박해의 역사를 운운하기 전에 우선 남아있는 성당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오소 성당(예수성심성당)을 가보기로 한다. 벽돌로 지어진 성당으로 나가사키현이 지정한 유형문화재다. 고토에 이주한 천주교인들은 척박한 땅에서 굶어가면서도 많은 성당들을 설립했다. 이 오소 성당 또한 이 지역에 살고 있는 30여 가구의 신자들이 1879년 힘을 합쳐 만든 것이다.

 

실제로 고토의 신자 분포를 보면 성당이 지어진 지역에는 아직도 가톨릭 신자들이 많고, 성당이 없는 지역에 불교 신자들이 거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선조들의 신앙을 그대로 간직하려는 일본인의 특징이다.

 

국가지정 중요문화재와 함께 세계유산후보 잠정목록에 올라 있는 아오가사우라 성당을 찾기 위해 버스를 탔다. 터널을 지나자 한국의 옛날 드라마에서나 등장할 법한 검은 교복을 입은 남학생들이 가방을 들고 장난치며 뛰어간다. 아이들은 언제, 어디에서나 해맑다.

 

 

다섯 개의 섬으로 이뤄진 고토 - ‘고토 붕괴’ 박해로 40여 명 순교

 

 

국가지정 중요문화재와 함께 세계유산후보 잠정목록에 올라 있는 아오가사우라 성당.

 

 

다섯 개의 섬으로 이뤄진 고토는 크게 가미고토(上五島)와 시모고토(下五島)로 나뉜다. 나가사키현 안에 있는 130여 개 성당 중 50개의 성당이 이곳 고토에 있으며, 특히 가미고토의 인구 중 25%는 가톨릭 신자일 만큼 신앙의 명맥이 잘 이어지고 있다.

 

박해를 피해 소토메에서 고토 지역으로 이주해온 3000여 명의 키리시탄들이 고토 섬 안 ‘신앙의 시작’이다. 막부의 엄한 키리시탄 탄압 아래에서도 신앙을 지켜오던 이곳 신자들은 1865년 ‘신도 발견’이 일어나자 자신들도 신앙을 밝히게 된다.

 

그러나 1868년 고토의 히사카지마 섬에서 키리시탄들이 붙잡혀 ‘고토 붕괴’라고 불리는 박해가 일어났으며, 잡힌 23명의 키리시탄들은 섬 내 신도 200여 명과 함께 20㎡가량 되는 감옥에 가둬지기도 했다.

 

감옥의 위생 상태는 열악했으며, 하루에 고구마 한 조각밖에 주어지지 않아 굶주림과 압박 등으로 목숨을 잃었고 42명의 키리시탄이 순교했다. 또 4명의 사무라이가 키리시탄 집에 난입해 임산부를 포함한 6명을 살해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금교령이 해제된 후 1873년 12월 24일, 고토의 도자키 해변에서는 최초의 크리스마스 행사가 행해졌으며 이 섬에서의 신앙은 잇달아 부활하기 시작했다.

 

그 옛날, 성당에 종이 없었던 고토 신자들은 소라를 불어 미사시간을 알렸다. 미사 시작 30분 전과 미사 시간에 분다.

 

[가톨릭신문, 2010년 1월 31일, 고토(일본) 오혜민 기자]



1,148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