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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신앙과 심리: 아내의 부재로 혼자되니 외롭고 우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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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4-20 ㅣ No.249

[신앙과 심리] 아내의 부재로 혼자되니 외롭고 우울합니다

 

 

“아내가 잠시 있다가 집에 돌아오리라 믿고 아내를 요양원에 보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아내의 건강이 악화되어 너무 괴롭습니다. 점차 사람을 못 알아보고 기능이 망가지고 있어 불쌍하고 안타깝다가도 나를 두고 먼저 가려는 것이 괘씸하고 화가 납니다.” 

 

80세가 훌쩍 넘은 어르신은 작년 5월 대소변을 못 가리는 아내를 요양원 보낸 후 혼자 살기 시작했다. 아내는 치매 판정을 받고 2년간 약을 복용하며 그런대로 생활했으나 더 이상 힘에 부쳐서 요양원으로 보냈다. 그때만 해도 이렇게 빨리 증상이 악화되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남편도 알아보지 못하고 몸을 가누는 것조차 어려워하는 아내가 낯설고 점차 멀리가고 있는 것같이 느껴졌다. 

 

어르신이 상담실의 문을 두드린 것은 대학병원 의사의 권유를 받고나서이다. 아내의 뇌질환 약을 처방받으러 갔다가 어르신의 사정을 알고 있는 의사가 어르신의 아내보다 어르신이 더 걱정이 된다며 우울증과 불면증 약을 처방했다. 어르신은 50여 년 간 아내가 곁에서 묵묵히 모든 소소한 일상들을 힘겹게 해내온 아내에게 감사나 위로를 표현하지 않고 살아온 것에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꼈다. 두려움에 저녁이면 숨이 막히는 가슴 통증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내와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자녀들은 엄마의 치매와 입소에만 몰두하며 아버지인 어르신의 고통과 두려움 그리고 외로움을 자세히 살피지 못했다. 

 

이렇듯 사랑하는 대상을 죽음이나 이별로 떠나보냈을 때 배우자는 상처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고통을 받는다. 스위스의 정신 의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죽음을 눈앞에 둔 환자들의 정신 상태를 연구하였다. 죽음과 상실을 맞이하는 이들은 누구나 비슷한 마음의 변화를 겪는다고 한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5단계로 구분했는데, 가족의 상실을 경험한 남은 가족도 대부분 이 과정을 겪는다. 

 

1단계의 반응은 ‘부인’이다. 어르신은 ‘이건 무엇인가 잘못된 거야. 아내가 치매로 죽어가다니, 그럴 수는 없어!’ 하며 ‘언젠가 집으로 다시 올 거야!’라고 사실을 부정하려 했다. 필사적으로 부인해도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알면 2단계인 ‘분노’를 느끼게 된다. ‘왜 나만이 이런 가혹한 운명을 감당해야 하는가?’ 하는 분노이다. 3단계는 ‘타협’으로 대개의 경우 인간을 초월한 절대자와 타협한다. 어르신은 “아내가 더 이상 악화되지 않으면 성당에 열심히 나가겠습니다”라며 하느님과 거래를 했다. 4단계는 ‘우울’로 타협이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고 슬픔과 낙심에 빠진다. 이때에는 어떤 위로의 말도 들리지 않는다. 어르신은 운명이 가혹하다며 화가 나는 마음, 억울하고 괘씸한 마음, 그리고 슬픔과 신체적 고통을 표현하였다. 상담자의 지지, 공감을 받으며 어르신은 자신의 외로움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서서히 신체적 고통에서 벗어났다. 마지막 5단계는 ‘수용’으로 이 단계에서는 억울함이나 분노가 사라지고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인다. 

 

올해 우리나라 65세 이상 치매 인구는 61만 명으로 추정한다. 65세 이상 노인의 8~9%에 달하며, 해마다 늘고 있어 10년 뒤엔 100만 명, 25년 뒤엔 2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 이들 가운데 장기요양보험 대상자로 정부 지원을 받는 사람은 17만4천 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가족들이 간병 부담을 모두 떠안는다. 치매는 다른 육체적 질병과 달리 정신이 무너지기 때문에 가장 슬프고 고통스럽고 본인뿐 아니라 가족들도 충격과 피해가 매우 크다. 정신적 고통 역시 가족들의 몫이다. 치매로 인한 심리적 경제적 고통을 분담하는 배우자와 가족을 모두 합친다면 인구의 삼분의 일이 넘지 않겠는가? 

 

한편, 우리 신자들이 극복해야 할 병이 있다. 그것은 영적 치매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작년 성탄을 맞아 교황청 쇄신을 위하여 사목자는 자기 자신에만 몰두하는 ‘영적 치매’를 경계해야 한다고 충고한 바 있다. “영적으로 공허한 이들은 위선적으로 행동하며 자기를 과시하려 한다”며 낮은 자세로 일할 것을 주문했다. “또 자기중심주의에 사로잡힌 이들은 신자들에게 봉사하기보다 권력을 휘두르게 된다”고 지적했다. 성직자뿐 아니라 일반 신자들도 깊이 새겨야 하는 금과옥조이다. 사회 곳곳에서 드러나는 ‘갑질’이라는 병폐도 ‘영적 치매’에서 오며 우리 모두 자유로울 수가 없다. 영적 치매는 전염속도도 빠르고 단기간에 치료하기가 어렵다. 희망을 갉아먹고 사는 이 병은 불신을 전염시키고 끝내는 집단적인 절망에 이르게 한다. 우리가 영적 치매를 경계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다. 

 

“그러므로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1코린 13.13).” 

 

* 유정인(리디아)씨는 한국 가톨릭 상담심리사 및 한국 상담심리학회 상담심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재 상담심리사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외침, 2015년 4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글 유정인(유리심리상담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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