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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교회의 가르침: 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신앙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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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3-24 ㅣ No.645

[현대교회의 가르침] (54) 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신앙의 빛」 (상)


신앙은…하느님 부르심에 대한 응답 / 그리스도 삶에 일치하는 것

 

 

1. 회칙에 대한 안내 

 

「신앙의 빛」(Lumen Fidei)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첫 회칙으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개막 50주년에 선포된 ‘신앙의 해’를 맞아 신앙의 의미를 밝혀주기 위해 선포되었습니다. 이 회칙은 전임 교황이신 베네딕토 16세께서 그 이전에 쓰신 사랑에 관한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Deus caritas est)와 희망에 관한 회칙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Spes Salvi)와 함께 신망애의 향주삼덕에 대한 회칙입니다. 이 회칙의 7항이 밝히고 있듯이 베네딕토 16세께서 거의 완성하신 회칙의 초안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조금 더 다듬고 내용을 덧붙이셨으므로, 회칙 「신앙의 빛」은 두 분의 교황님에 의해 완성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회칙은 전체가 60항으로, 서론과 네 개의 장으로 된 본론, 그리고 결론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 회칙의 서론 (1~7항) 

 

서론(1~7항)은 회칙의 목적과 배경을 설명하기 위하여 왜 빛이 중요한가, 신앙도 빛인가, 왜 신앙의 빛이 중요한가, 왜 신앙의 빛을 강조해야 하는가, 그리고 왜 신앙의 빛을 되찾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다룹니다. 

 

먼저, 빛이 중요한 이유는 빛이 있어야만 우리가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빛이 중요한 것만큼 어떤 빛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도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합니다. 빛의 종류와 밝기가 다를 때 사물이 달라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이 빛이 되는 이유는 태양의 가시광선 덕분에 사물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신앙도 우리를 비추어 인생과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앙은 태양 광선이 비추어 주지 못하는 인간의 내면과 죽음, 모든 초자연적 현실을 비추어준다는 의미에서 태양 광선보다 훨씬 더 뛰어난 빛입니다. 신앙은 인간 실존의 전 현실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참 빛이며, 오직 신앙만이 삶을 ‘영원의 관점에서’ 볼 수 있게 해줍니다. 이 회칙이 신앙의 빛을 강조하는 이유는 근대주의의 영향을 받은 현대사회가 신앙의 빛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여겨왔기 때문입니다. 인간 존재의 근원을 사고하는 인간의 이성에 두는 근대주의는 이성을 지배하거나 제한하는 어떤 권위도 배제하고자 합니다. 이런 근대주의의 영향으로 우리 삶의 많은 영역들이 신앙과 분리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하여 신앙은 인간의 이성과는 거리가 먼 영역, 곧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인류는 양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인간 이성이 비추는 빛의 한계를 깊이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의 빛을 거부했던 인류는 이제 빛을 상실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인류의 회복을 위해서 신앙의 빛을 되찾는 일이 시급해졌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신앙의 빛을 되찾을 수 있는가 하는 중요한 물음이 남게 됩니다. 이 물음은 회칙의 본론에서 다루어지게 됩니다. 

 

회칙의 서론은 일단 문제 제기를 한 후 신앙의 빛의 특성에 대해 요약 정리해주고 있습니다. 신앙의 빛은 인간 실존의 모든 측면을 비출 수 있는 유일한 빛이며, 인간에게서 나오는 빛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나오는 빛입니다. 신앙은 또한 우리 삶의 여정을 밝히고 안내하는 빛이며, 예수님께 대한 기억에서 나오므로 과거에서 오는 빛이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죽음 너머로 이끄시므로 미래에서 오는 빛이기도 합니다. 신앙의 빛은 우리의 지평을 열어주고, 고립된 자아를 넘어 드넓은 친교로 나아가도록 초대하는 빛입니다.

 

 

3. 회칙의 본론 

 

회칙의 본론에서는 서론에서 제기된 신앙의 빛을 어떻게 되찾을 수 있는가 라는 물음을 다룹니다. 이를 위하여 본론의 1장(8~22항)은 신앙이 무엇인가, 2장(23~36항)은 신앙이 어떻게 진리 인식을 하게 하는가, 3장(37~49항)은 신앙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는가, 4장(50~57항)은 신앙이 인간 실존의 구체적 영역에 어떻게 빛을 비추는가 하는 주제를 다루게 됩니다. 회칙 「신앙의 빛」에 대한 설명이 두 차례에 걸쳐서 연재될 것이기 때문에 본고에서는 본론 1장을 설명하겠습니다. 

 

3.1. 본론 제1장(8~22항) 

 

신앙의 빛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신앙이 무엇인지가 정확히 규명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본론 1장은 신앙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합니다. 

 

먼저, 신앙이 개인의 주관적인 신념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기 위하여 아브라함과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 여정을 살펴보고 그들의 여정에서 드러나는 신앙의 특성을 제시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 여정이 보여주듯이 신앙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신앙에 이르게 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부르심이 있고, 그것에 응답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신앙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는 땅과 후손에 대한 약속,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겠다는 약속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약속에 충실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신앙 여정과 이스라엘 백성의 여정이 보여주는 것처럼 하느님의 약속은 번번이 위기에 처하는 듯이 보였지만 그들은 당신의 약속에 충실하신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의 약속을 굳건히 신뢰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아들인 이사악을 바치라는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할 만큼 하느님을 굳건하게 신뢰하였습니다. 

 

이처럼 신앙은 현재의 실존뿐만 아니라 오지 않은 미래까지도 신앙의 빛으로 바라보게 해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이 체험한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다음 세대들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어제의 구원 역사는 거듭 기억되었고, 이 기억은 다시 현재와 미래에 빛을 던져주어 그것을 구원 역사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우상숭배와 신앙이 다른 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상숭배는 즉각적이고 손에 잡히는 결과를 기대하는 자기중심적인 행위이며, 자기 자신을 현실의 중심에 두는 것입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신앙은 하느님을 우리 삶과 시간의 중심으로 삼기 위하여 모든 우상을 끊어버리는 것입니다. 신앙은 “언제나 우리를 받아 주시고 용서하시며,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이끌어 주시면서 비뚤어진 우리 역사의 굴곡을 바로잡아 주실 수 있는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에 우리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13항). 

 

신앙이 개인적인 신념이 아니라는 점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중개자였던 모세의 존재를 통해서도 드러납니다. 아무도 직접 하느님을 뵙지는 못하기에 신앙은 중개자를 필요로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신앙 행위는 공동체 안에 자리잡아야 하고, 공동체는 신앙 안에서 서로 일치합니다(14항 참조). 

 

구약의 백성을 통하여 드러났던 하느님의 사랑과 그 사랑에 담긴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결정적이고 완전한 계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참여하는 것, 그분의 눈으로 보고 그분의 귀로 들으며 그분의 삶에 일치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과 다른 형제, 자매들을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바라보며, 자아라는 울타리를 뛰어넘어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의 여정에 참여합니다(22항 참조).

 

* 김영선 수녀는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 소속으로 미국 보스톤 칼리지에서 구약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가톨릭대학교 강사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5년 3월 22일, 김영선 수녀]

 


[현대교회의 가르침] (55) 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신앙의 빛」 (하)


고통 속에 존재하는 주님 보며 절망에서 희망 찾을 수 있어야

 

 

3.2. 본론 제2장 (23~36항) 

 

2장은 신앙이 어떻게 빛이 될 수 있는가, 신앙이 어떻게 진리를 인식하게 하는가 하는 점을 다룹니다. 신앙은 하느님의 현존과 활동에 대한 앎에 바탕을 둔 것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진리와 결합되어 있습니다. 신앙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우리가 받아들인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를 변모시켜 실재를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줍니다. 그리하여 신앙인은 신앙을 통하여 진리를 볼 수 있는 새로운 눈을 얻게 됩니다.(26항 참조) 

 

이처럼 신앙이 본연적으로 진리와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회칙은, 제작 가능하고 측량 가능한 것만을 진리로 여기는 현대의 과학주의의 협소한 진리관과 보편적인 진리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는 상대주의적 경향 앞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이 진리를 이해하는 바른 길을 제시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 신앙은 역사 자체의 의미가 무엇인지, 인류의 삶과 역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 둘째, 신앙의 인식 수단은 들음과 봄으로써,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바라봄으로써 신앙의 진리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지식은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의 삶을 관상하며, 그분의 현존을 인식함으로 점차로 깊어집니다.(30항 참조) 셋째, 그리스도교 신앙은 하느님의 완전한 사랑에 대한 진리를 선포하며, 그 사랑의 힘을 우리에게 열어주기 때문에 인간 체험의 근원까지 파고듭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빛이 가닿지 못하는 인간의 체험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신앙은 인간적인 사랑의 궁극적인 의미를 밝혀줍니다. 신앙의 빛으로 인간적인 사랑을 바라보게 되면 인간적인 관계가 그리스도의 사랑과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지속될 수 있습니다. 신앙은 또한 세상 만물 안에서 하느님의 선성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줍니다. 신앙은 보이지 않는 세계뿐만 아니라 물질세계까지 두루 비추기 때문에 이성의 지평을 넓혀줌으로써 과학의 탐구에 올바른 방향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34항 참조) 또한 신앙의 빛은 그리스도교가 종교간의 대화에 고유한 몫을 하게 합니다. 신앙의 빛은 참된 신앙고백을 할 수 있게 하며, 진리를 추구하는 비신자들의 마음을 하느님께로 인도합니다. 

 

신앙은 인간의 이성을 비추어 하느님께 대한 더 깊은 이해에 이르게 하고 신학이 성장하게 합니다. 그리스도교 신학은 신앙의 빛의 인도를 받는 것이기에 신앙을 위해 봉사해야하며, 교도권과의 일치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3.3. 본론 제3장(37~49항) 

 

신앙의 빛이 인간 실존의 전 영역을 비추어 그 참된 의미가 드러나게 한다면 이 빛이 모든 시대를 통하여 전해져야 한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신앙은 삼위일체 하느님의 친교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근원적으로 공동체적이며, 교회적인 친교를 지향하는 것이므로 모든 세대를 통하여 나누어져야 하는 선물입니다. 그렇다면 이 선물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요? 신앙은 교회의 가르침과 생활과 예배를 통하여 전달됩니다. 

 

먼저, 교회는 신앙을 전달하는 탁월한 수단으로 성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회칙은 신앙 전수에 있어서 특히 세례성사와 견진성사, 그리고 성체성사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자세히 설명합니다. 그리고 성사 거행의 중요한 요소인 신앙 고백과 관련하여 다음 사실을 강조합니다. 

 

“신앙을 고백하는 이들은 자신이 고백하는 진리에 참여합니다. 우리가 변화되지 않는다면, 우리를 감싸 안고 우리 존재를 확장시키는 사랑의 역사의 일부가 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신경을 암송하는 궁극적인 주체인 교회라는 더 큰 친교에 속하지 않는다면, 진실하게 신경의 말마디를 암송할 수 없습니다.”(45항) 

 

회칙은 교회의 기억을 전달하는 중요한 요소인 주님의 기도와 십계명에 대해서도 설명합니다. 

 

“십계명은 일련의 금지 명령들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를 입고, 그 자비를 전해 주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이기적이고 자기 폐쇄적인 ‘나’의 사막에서 벗어나 하느님과의 대화 안으로 들어가는 데 필요한 구체적인 지침들입니다.”(46항) 신앙의 이런 공동체성은 자아라는 폐쇄된 공간에 매몰되어 인류 공동체의 운명이나 미래에는 관심을 가질 줄 모르는 맹목적 이기주의의 결과물인 현대의 많은 문제들을 극복하게 하는 빛이 될 수 있습니다. 

 

신앙의 전달에 있어서 강조되어야 할 점은 신앙의 일치성입니다. 교회의 사도적 계승과 교도권은 신앙의 일치성을 보존하고 신앙이 올바르게 전달될 수 있도록 봉사합니다. 

 

3.4. 본론 제4장 (50~57항) 

 

4장은 신앙이 인간 실존의 구체적인 영역에 어떻게 빛을 비추어 주는지에 대해 고찰합니다. 신앙의 빛은 정의와 법과 평화에 구체적으로 봉사합니다. 인간관계의 부요함을 증진시키고, 사람들 간의 일치가 가능하게 함으로써 신앙은 인간관계가 공동선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이끕니다. 

 

신앙의 빛은 교회 내부만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건설하는 데 이바지하게 함으로써 인류가 희망을 가지고 미래를 향하여 나아갈 수 있게 합니다.(51항) 혼인과 자녀출산, 진정한 형제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이해, 자연에 대한 존중과 보존 의지, 공정한 통치 형태를 찾아가는 일, 그리고 인간간의 참된 용서가 가능해지는 것, 이 모든 것은 신앙 안에서만 그 참된 근거와 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약화는 단지 교회의 약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사회의 모든 근간의 약화를 의미하며, 그렇게 될 경우 인류의 삶은 위태롭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약함과 고통, 죽음이라는 사건은 신앙 없이는 그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고통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고통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고통이 결코 우리를 저버리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손에 자신을 맡겨 드리는 사랑의 행위가 될 수 있으며, 그리하여 고통이 신앙과 사랑 안에서 성장하는 순간이 될 수 있음을 압니다.”(56항) 

 

고통은 여전히 우리에게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 남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고통 가운데서, 그리고 세상의 고통을 바라보면서 고통 가운데 현존하시는 하느님, 한 줄기 빛이 되어 고통이라는 어둠을 밝히고자 그 어둠 속으로 뛰어드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고백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곳곳에 절망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는 오늘날 신앙은 희망을 증거합니다.

 

 

4. 결론 (58~60항) 

 

보고 들은 것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되새기심으로써 말씀이 삶 안에 결실을 맺게 하셨던 마리아를 신앙의 표상으로 제시하며, 우리를 위하여 같은 은총을 구해주시도록 마리아께 전구의 기도를 바치는 것으로 회칙은 끝납니다. 

 

이 회칙은 “신앙 따로, 삶 따로”가 얼마나 모순된 것인지를 인식하게 해줍니다. 신앙이 우리의 인식을 비추는 빛이라면, 존재하는 모든 것을 신앙의 빛으로 인식한다면, 삶은 신앙을 통하여 규정되고, 신앙을 통해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가톨릭신문, 2015년 3월 29일, 김영선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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