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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베트남 북부지역 성지: 아시아 교회의 맏딸 베트남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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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1-07 ㅣ No.765

세계 교회 신앙유산 순례 - 베트남 북부지역 성지


아시아 교회의 맏딸 베트남 교회

 

 

“베트남은 현실 사회주의 국가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노이 한인 성당 주임신부로 발령받아 오신 부산교구 서정웅 신부님이 응오 꽝 끼엣 하노이 대교구장님께 인사를 드리는 자리에서 대교구장님이 하신 말씀이다. 곧 방인 사제들의 사목에도 많은 제약을 가하고 있는 국가이므로 외국인 사제로서 각별히 유의할 것을 당부하는 말씀이었다.

 

한편, 몇 달 전에는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지난 주일 아침 빙 교구의 우엔 딩 푸 바오로 신부가 다섯 명의 교구 소속 신부들과 함께 땀 또아 성당에 주일미사를 봉헌하려고 가는 길에 여성 신자 세 명이 일단의 정체불명의 남성들에게 둘러싸여 폭행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 이를 말리는 과정에서 그들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하여 중상을 입었다. 바로 곁에서는 30명이 넘는 정복 공안원들이 이를 지켜보고만 있었다고 한다. 빙 교구에서는 꽝빙 성 인민위원회에 항의 서한을 발송하는 한편, 교구 소속 우엔 테 빙 베드로 신부로 하여금 병원에 후송된 푸 신부를 문병토록 했는데, 병원 근처에 있던 가해자들이 이번에는 빙 신부를 집단 폭행하고 2층 건물에서 창문을 통하여 아래층으로 떨어뜨리는 만행을 저질러 빙 신부는 의식불명에 빠진 상태이다”(ZENIT 통신, 2009년 7월 29일자).

 

이처럼 사제들의 사목에 많은 제약이 있고 때로는 목숨까지도 위협받는 것이 오늘 베트남 가톨릭교회가 놓인 현실이다. 그런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줍고 해맑은 표정으로 한인 교우들을 보고 먼저 인사하시는 하노이 대교구 신부님들과 수도자들을 보면 자연스레 베트남 교회의 저력을 떠올리게 된다. 117위 순교성인과 15만 명으로 추산되는 순교자를 배출한 아시아 가톨릭교회의 맏딸은 아직도 눈에 보이지 않는 박해를 받고 있으나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굳은 믿음으로 어려움을 견디고 있는 것이리라.

 

 

팟 지엠 대성당과 서 키엔 대성당

 

한국에서 오는 성지순례단이 주로 들르는 곳은 하노이 대교구 주교좌 대성당과 하노이에서 남으로 110Km 정도 떨어져 있는 팟 지엠(Phat  Diem) 교구 주교좌 대성당 두 곳이다. 팟 지엠 교구 주교좌 대성당은 베트남 고유 건축양식으로 지어졌다는 점에서 순례객들의 발길을 끈다. 팟 지엠 교구는 베트남 북부 지역 10개 교구 중 하나로 1901년 당시 연해(沿海) 통킹 대목구로 설정되었으며, 대성당은 이보다 약간 이른 시기인 1875년부터 1891년까지 16년에 걸쳐 건립되어 묵주기도의 성모님께 봉헌되었다.

 

대성당 양 옆으로는 네 개의 소성당(성 요한, 성 베드로, 성심, 성 세례자 요한)이 나중에 건립되어 봉헌되었는데, 대성당은 예수님을, 네 개의 소성당은 복사단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지반이 대부분 모래층이어서 약 백만 개의 대나무를 30m 깊이로 박아넣고 그 위에 대성당을 건립하였다.

 

이 본당에서 베트남 순교성인 117위 중 여덟 분이 배출되었으니 베트남 북부는 물론 전체 베트남을 통틀어 단일 본당으로는 가장 많은 순교성인을 배출한 영광스러운 신앙 전통을 가지고 있다.

 

팟 지엠 주교좌 대성당이 우리나라 가톨릭 신자들에게 어느 정도 알려져 있고, 베트남인들에게도 상당히 알려져 있는 곳이라면, 서 키엔(So Kien) 대성당은 베트남 내에서도 사람들에게 그리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한 · 베트남 가톨릭 친선협회’를 결성하여 베트남 교회 후원사업을 열정적으로 펼치신 고 정명조 주교님(전임 부산교구장)과 함께 베트남 성경 보급 사업을 십 년 넘게 해오신 서울대교구 이문주 신부님이 2007년 봄 하노이 대교구 응오 꽝 끼엣 대주교의 초청으로 하노이를 방문하셨을 때에 대주교께서 친히 이 신부님 일행을 안내하여 처음 방문한 곳이 바로 서 키엔 대성당이었다. 필자는 이때 이분들과 동행하였는데, 이렇게 한 데는 커다란 뜻이 있었다고 들었다.

 

베트남 교회에 대한 자료를 인쇄물이나 인터넷에서 찾기 어려운 현실이기에 그 뒤 몇 차례 서 키엔 대성당에 들러 주임신부님과 신자들에게 확인한 바로는 서 키엔 대성당이 1934년 이전까지는 하노이 대교구 주교좌 역할을 했다고 한다. 17세기 초반 예수회, 그리고 파리 외방 전교회 선교사들이 박해를 피하여 선교하는 과정에서 초기 베트남 북부지역 가톨릭 공동체는 북부지역을 관통하는 홍강 줄기를 따라 형성되었는데, 서 키엔 대성당 역시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서 키엔 대성당 자리에는 오늘날 하노이 대교구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서(西) 통킹 대목구의 교구청과 베트남 북부 지역 최초의 신학교가 함께 있었다고 한다. 베트남전을 겪으면서 교회 건물은 가급적 포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견지했던 미 공군의 전략을 역이용하여 북 베트남 정규군이 성당 건물을 방패로 미 공군에 대공포격을 하는 과정에서 예전 대신학교 건물과 소성당이 파괴되어 지금은 건물 뼈대만 남은 상태이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하노이 대교구장께서 복원사업을 펼치고 있으며, 서울대교구에도 후원을 요청하였던 것이다.

 

 

순교지 복원을 위한 하노이 대교구의 노력

 

서 키엔 대성당 한 켠 경당에는 서 키엔 본당 출신 순교자들과 순교성인의 유해가 임시로 안치되어 있는데, 하노이 대교구에서는 이 경당을 보수하여 순교 사적지로 단장할 계획이라고 한다. 서 키엔 본당 출신 순교성인은 두 분이신데, 76세에 참수형으로 순교의 월계관을 받으신 쯔엉 반 티 베드로 신부(1839년 12월 21일 순교)와 교리교사 신분으로 30세의 나이로 순교하신 쯔엉 반 즈엉(1838년 12월 19일 하노이에서 순교)이며, 이 두 분은 숙질간이다. 작년에 가본 경당에는 두 분 순교성인상이 모셔져 있었으나, 다른 순교자들이 처형장에서 흘린 피가 밴 흙과 모래가 모셔진 곳은 여전히 단장되지 않은 상태였다.

 

경당에 전시되어 있는 고문 형구도, 그리고 배교를 강요하면서 당시 베트남 왕조의 형리들이 사용했던 방법도 - 십자고상을 밟거나 성화에 침을 뱉으면 풀어준다는 유혹 - 우리 신앙선조들이 겪으셨던 고통과 유사하며, 그러한 유혹을 뿌리치고 순교의 월계관을 쓰신 분들이 15만 명에 이르니 베트남 교회는 정녕 아시아 교회의 맏딸이라 불릴 만하다.

 

오는 11월 24일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 기념일’을 맞아 베트남 교회에서는 대리감목구 설정 350주년과 베트남 교계제도 확립 50주년 기념행사를 서 키엔 대성당에서 가질 예정이다. 2007년 이문주 신부님이 방문하였을 때 하노이 대교구장님으로부터 전달받은 후원 요청에 정진석 추기경님께서 적지 않은 후원금을 전달하셨으며, 이 후원금으로 최초의 신학교를 복원하고 순교성지를 조성하여 베트남 교회의 큰 행사를 이 대성당 경내에서 치르게 되었다고 하니 심부름꾼 역할을 했던 필자에게도 큰 영광이겠다.

 

서 키엔 출신 천상의 순교자들이 베트남 교회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실 것으로 굳게 믿으며 여전히 박해에 시달리고 있는 베트남 교회와 유대와 일치를 위하여 우리도 한국 교회 순교성인들께 전구를 청해야 할 것이다.

 

팟 지엠 주교좌 대성당, 서 키엔 대성당, 그리고 하노이 대교구 주교좌 성 요셉 대성당의 외벽은 아직 회색 얼굴로 세월의 더께가 그대로 남아있다. 주일미사에는 아직도 공안원들이 성당 주변에서 감시의 눈초리를 번뜩이고 있지만, 내가 본 가장 거룩한 미사 참례 모습에서 500년 가까이 베트남 민중들의 편에서 고통을 나누어온 베트남 교회의 참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9월 말 제9호 태풍 켓사나의 영향으로 베트남 중부지방에서 2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주교좌 대성당의 외벽의 이끼도 씻어낼 여유가 없는 하노이 대교구 형편이지만, 전 교구민에게 태풍 피해 복구를 위한 특별헌금을 촉구하시는 대주교님 사목서한을 하노이 한인 성당 주보에 옮기면서 이 글을 마무리한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태 9,22).

 

* 송인호 라우렌시오 - 베트남 하노이 한인 성당 사목회장. 기업체 해외법인 파견 근무중이다.

 

[경향잡지, 2009년 11월호, 송인호 라우렌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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