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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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124위 순교자전: 정찬문 안토니오와 박대식 빅토리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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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1-07 ㅣ No.764

한국 교회 124위 순교자전 - 정찬문 안토니오와 박대식 빅토리노

 

 

위령성월입니다. 세상을 떠난 이들의 영혼을 특별히 기억하며 기도하는 달입니다. ‘모든 성인의 통공에 대한 교리’를 믿는 우리는 살아있는 이들이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하느님 나라에 이미 들어가 있는 성인들도 이 세상에서 순례를 계속해야 하는 살아 있는 이들을 위해 하느님께 간구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정찬문 안토니오(1822-1866년)는 1822년 10월 13일(음) 부친 정서곤과 모친 울산 김씨 사이에서 진주 동면 허유고개 중촌(현재 진주시 사봉면 무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대산 가등공소에서 시집 온 칠원 윤씨와 1841년 이전에 결혼한 그는 아들 중순을 두었습니다. 그는 1863년 부인의 권유로 입교하여 4년 동안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는 1866년 가을 진주 포졸에게 체포될 때, “배교하는 말만 하면 잡혀가지 않게 하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신앙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많은 재산은 적몰되었고, 옥에 갇힌 지 25일 동안 혹독한 형벌을 받았습니다.

 

그는 부인이 빌어오는 밥을 먹기도 하였는데, 1866년 12월 20일(음) 영문 안에 있는 마당에서 매를 많이 맞고 순교하였습니다. 그가 갇혔던 감옥은 진주 공설시장 인근 중앙시장과 옥봉동성당 사이에 있었는데, 여기서 정찬문과 윤봉문이 순교하였습니다. 사촌 3형제가 그의 시신을 찾으러 갔지만 머리는 가져올 수 없었습니다. 고복(考覆)에 연관된 시신이었기 때문입니다. 무촌리에 있는 그의 무두묘(無頭墓)는 이렇게 해서 시작된 것입니다. 이때 순교자의 조카들이 그의 시신을 염했는데, 몸이 굳지 않고 마치 산 사람 같았다고 합니다. 그 후 순교자의 묘는 오랜 세월 동안 방치된 끝에 잊혀갔습니다.

 

그런데 1946년 문산성당 서정도 베르나르도(1899-1964년) 신부는 굼실(隅谷, 사봉면 사곡리) 공소 회장에게서 무두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서 신부는 1948년 3월 30일 무촌리에 살고 있던 ‘텃골 마누라’라는 광산 김씨 할머니(당시 94세)에게서 제보를 받아 허유고개 길섶에 초라한 모습으로 있는 순교자의 묘를 찾았고, 5월 31일 그 앞에 기념비를 건립하였습니다. 1975년 10월 중순 그 인근에 새로 조성된 사봉공소의 순교자 묘역(사봉면 무촌리 중촌동)으로 이장하였고, 1978년 1월 28일 새로 단장하였으며, 그 옆에는 순교비를 건립하였습니다.

 

박대식 빅토리노(1812-1868년)는 김해시 진례면 시례리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아들 삼형제, 종립 · 종반 · 종철을 두었습니다. 1868년 7월 7일 대구 · 김해 포졸들에 의해 형 박대홍과 예비신자인 조카 박수연(47세)과 함께 체포되었습니다. 김해관아로 압송된 그는 송 마태오와 박 요셉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3일간 갇혀있으면서 서로 위로하며 믿음을 지켜나갔습니다. 대구로 압송된 그들은 감영에서도 혹형을 받아 뼈가 부러지고 몸은 뒤틀려있었습니다. 가족들이 면회를 왔을 때, 험한 꼴을 보이지 않으려고 옷으로 몸을 가렸다고 합니다. 조카와 송 마태오, 박 요셉과 함께 그해 8월 27일(음)에 대구 관덕정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습니다.

 

경상감사는 백성들에게 경각심을 준다는 명목으로 그들의 머리를 매달도록 하였습니다. 순교자의 가족들이 포졸들에게 돈을 주고 순교자의 시신을 모셔와 선영에 모시려 하였으나, 마을 사람들과 집안 외인들의 반대로 모시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들들과 친척들이 다동(김해시 진례면 청천리 챗골) 유씨 문중 산에 평장으로 매장하였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1956년 봄에 후손들이 무덤의 봉분을 크게 하고 순교자의 부인과 합장하였습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1966년 4월 15일 진영성당 유창호 토마스 신부의 주선으로 순교자의 무덤 앞에 비를 세웠습니다. 그의 묘는 이곳에 시신을 모신 이후로 한 번도 이장하지 않은 무덤입니다.

 

정찬문 순교자의 묘를 찾아가는 길은 이러합니다. 남해고속도로 진성IC에서 나와 마산방향 2번 국도로 7.5km를 지나 길 왼쪽에 있는 사봉주유소를 좌측으로 끼고 돌아서 길 따라 7-8분 정도 올라가면 됩니다.

 

그리고 박대식 순교자의 묘를 찾아가는 길은 이러합니다. 부산에서 남해고속도로로 진행하다 진례IC에서 나오자 좌회전하여 진례면사무소 쪽으로 가다 고속도로 밑을 지나자마자 금호가든 쪽으로 우회전(오척, 다곡방향)하여 약 1km 올라가면 한 쪽이 폐쇄된 진영터널이 나옵니다. 그곳에 표지가 있고 좌측 산길로 10분 정도 올라가면 됩니다. 길 안내는 성지와 사적지에 관해 오영환 · 박정자가 지은 “순교의 맥을 찾아서”(가톨릭출판사, 2009)에서 참조하였습니다.

 

위령성월에 순교자 정찬문 안토니오와 박대식 빅토리노의 신앙을 증언한 죽음을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경향잡지, 2009년 11월호, 여진천 폰시아노 신부(원주교구 배론성지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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