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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일본 188위 순교자 시복 1주년: 나가사키 성지 순례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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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11-24 ㅣ No.746

일본 188위 순교자 시복 1주년 - 나가사키 성지 순례 (상)


땀 · 눈물로 일군 복음화 흔적 곳곳에

 

 

타비라 천주당 인근에 있는 야이자 사적공원. 1614년 금교령으로 추방된 카미로 신부를 기리는 곳이다. 그는 1621년 다시 일본에 진입해 활동하다 체포돼 이곳에서 화형으로 순교했다.

 

 

지난해 11월 24일, 일본 나가사키에서는 ‘베드로 키베 신부와 187위 시복식’이 열렸다. 이미 42위 성인과 205위 복자를 가진 일본이지만, 188위 시복은 일본 주교회의가 주관해 일본에서 열린 첫 시복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가톨릭신문은 일본 188위 시복 1주년을 기념, 이웃나라 일본교회에 대해 알아보고 나가사키 및 인근 지역을 순례했다. 하느님의 종 124위와 최양업 신부의 시복시성을 준비하는 우리에게 일본교회의 메시지는 크다.

 

 

히라도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 약 2시간을 달려 ‘히라도’에 도착한 기자는 일본에 그리스도교를 전파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첫 발을 디딘 곳 역시 ‘히라도’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일본 전교의 시작점’이라고 부르는 히라도는 섬으로, 육지와 오갈 수 있도록 다리가 놓여져 있다.

 

먼저 타비라 교회당. 히라도 섬으로 들어가기 직전 시카마치에 위치해있다. 이곳은 ‘나가사키 순례를 해보았다는 사람’이라면 흔히 들러본 곳일 것이다.

 

한때 키리스탄의 촌락이었다는 시카마치에는 1888년 가건물이었다가 1918년 완공된 성당, 타비라 교회당이 있다.

 

히라도섬의 호오키 교회당. 세계문화유산 후보지로 검토되고 있다.

 

 

이 성당에는 눈물겨운 이야기가 담겨있다. 성당을 설립하기 위해 실질적으로 자금을 지원한 것은 프랑스 독지가지만, 많은 일본 신자들이 작은 힘이라도 보태기 위해 히라도 해협의 조개껍질을 주웠다고 한다. 조개껍질을 모아 구운 후 석회를 만들어 성당을 짓는데 썼다.

 

교우들의 눈물겨운 노력 때문일까. 이곳은 세계문화유산 잠정명단에 ‘나가사키의 교회군 및 그리스도교 관련 유산’과 함께 구성 자산으로 검토되고 있단다. 조개껍질을 굽던 자리도 남아있어 성당 설립을 위한 교우들의 노력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음을 알 수 있게 한다.

 

타비라 교회당 인근에는 야이자 사적공원이 있다.

 

1605년 일본에 왔다가 1614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내린 금교령으로 추방된 카미로 신부를 기리는 곳이다. 그는 추방돼 마카오에 머물다가 1621년 일본에 다시 잠입해 활동하다 체포돼 이곳에서 화형으로 순교했다.

 

‘화형’이라는 두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205복자의 한 사람인 카미로 신부를 추모하며 순교비 너머 보이는 하비에르 기념성당과 히라도섬을 바라봤다.

 

일본에 처음 그리스도교를 전파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이 첫발을 디딘 ‘히라도섬’의 타비라 교회당. 많은 신자들이 건립기금 마련을 위해 조개껍질을 모아 석회를 만들었다고 전해지며, 지금도 성당에 그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다리를 건너 히라도섬으로 들어가면 호오키 교회당과 히라도 하비에르 기념성당을 볼 수 있다. 호오키 교회당은 세계문화유산 후보지로 검토되는 곳이다.

 

히라도 하비에르 기념성당은 ‘히라도의 상징’이다. 일본에 가톨릭을 알린 하비에르 성인을 기념하며 세운 이 성당 앞에는 그의 기념동상이 우뚝 서 있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이키츠키

 

히라도섬에서 이키츠키 대교를 넘어가면, 이키츠키섬이 보인다. 이곳에서 잠을 자기로 한 기자는 밤이 다 돼서야 이키츠키에 도착했다.

 

이 섬의 신자들은 금교령이 내린 후에도 철저하게 지하로 숨어있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가톨릭의식에 맞는 미사를 올리면 신자로 폭로가 되므로 불교신자 등으로 가장해 신앙을 이어갔던 것이다. 이들을 가쿠레 키리스탄, 즉 숨어있는 ‘잠복 키리스탄’이라고 한다.

 

이키츠키를 이야기하자면 일본의 16성인 중 하나인 ‘토마스 니시’와 아버지 ‘니시 겐카’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듯하다. 이곳에는 니시 겐카의 돌무덤과 이키츠키에서 순교한 이들을 기리는 기념 십자가 순교비가 있다.

 

가쿠레 키리스탄의 기도모임 모습. 1614년 금교령 후 철저히 숨어지내며 신앙을 지켜갔던 가쿠레 키리스탄은 현재에도 꾸준히 신앙을 이어가고 있다.

 

[가톨릭신문, 2009년 11월 22일, 나가사키(일본) 오혜민 기자]

 

 

카레마스 신사에서 가톨릭 - 잠복 키리스탄 - 불교 신자 합동 미사


‘잠복 키리스탄’으로 살면서 400년 동안 신앙 굳게 지켜

 

 

11월 3일 오후 2시. 이키츠키 카레마스 신사에서는 뜻 깊은 자리가 마련됐다. 나가사키대교구장 다카미 미츠아키 대주교와 잠복 키리스탄, 불교 신자들의 합동미사가 봉헌된 것이다.

 

이날 미사에는 가톨릭 신자들과 잠복 키리스탄, 불교 신자 등 약 100여 명이 참여했으며 미사 후 치토시 노시타 신부(나가사키대교구)의 종교 간 대화에 대한 강연이 이어졌다.

 

‘잠복 키리스탄’이란 일본교회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유일한 특징으로, 숨은 그리스도인을 뜻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1614년 금교령을 내린 후, 심한 박해가 계속되자 일본 신자들은 250년간 숨어 지내며 ‘잠복기간’을 거쳤다. 이후 1865년 3월 17일, 나가사키 오우라성당에서 우라카미 신자들과 푸티잔 신부의 만남이 이뤄질 때까지 이들은 비밀교회를 만들어 신앙을 유지해왔던 것이다.

 

실제로 이키츠키에서는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잠복 키리스탄을 자처한 이들은 죽기 전 대세를 받고 가톨릭으로 개종하기도 했으며, 불교 신자의 집에서 400년 된 마리아상이 나오기도 했다.

 

11월 3일 이키츠키섬의 카레마스 신사에서는 나가사키대교구장 다카미 미츠아키 대주교 주례로 가톨릭 신자와 잠복 키리스탄, 불교 신자들의 미사가 봉헌됐다.


 

일본교회는 놀라기 시작했다. 이 사실은 불교 신자인 사람들의 조상도 오래 전 그리스도 공동체였으며, 잠복 키리스탄으로 신앙을 이어왔다는 사실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부분 60세 이상이며 불교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법명과 세례명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이키츠키에는 가톨릭 신자, 잠복 키리스탄, 불교신자이면서도 세례명을 가진 이들이 모여 매년 미사를 봉헌하고 식사를 함께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많은 잠복 키리스탄들이 미사를 봉헌한 후 그 자리에서 가톨릭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가톨릭 신자들과 잠복 키리스탄들은 미사에서 꽃다발, 봉헌금과 함께 잠복 키리스탄의 전통에 따라 일본 술과 위패도 봉헌했다. 당시 잠복 키리스탄들은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숨기기 위해 위패를 놓고 참배하는 것처럼 미사를 봉헌했다고 한다.

 

미사 후 잠복 키리스탄의 기도(오라쇼)가 이어졌다. 묵주를 들고 카레마스 신사 앞에서 약 10분간 행한 기도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본시오 빌라도, 아베 마리아, 산타 마리아 등 익숙한 단어들이 포함돼 있으며 기도의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강연을 맡았던 노시타 신부는 “카레마스 신사는 오래 전 잠복 키리스탄들이 미사를 바치던 곳이라 돌문을 닫으면 십자가로 변한다”며 “잠복 키리스탄들과의 꾸준한 대화를 위해 크리스마스와 같은 때 그들을 찾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가톨릭신문, 2009년 11월 22일, 나가사키(일본) 오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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