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미술ㅣ교회건축
본당순례: 시대를 꿰뚫은 혜안, 섬김으로 답하다 망경동성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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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순례] 시대를 꿰뚫은 혜안, 섬김으로 답하다 망경동성당
성전에 들어서자 햇빛을 받은 스테인드글라스의 성화가 장궤틀과 바닥에 반사해 그 실루엣이 마치 오로라를 보는 것 같다. 성전을 지을 때 긴축재정으로 유리창에 선팅지를 붙였는데 20년이 지나자 시트지가 쩍쩍 갈라졌다. 그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아 신자들이 건의했으나 신자들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우진 요한 주임 신부는 선뜻 응답할 수가 없었다. 일은 엉뚱한 데서 풀렸다. 본당을 거쳐 간 정흥식 신부의 소개로 천사가 나타나, 예상 비용의 절반도 못 미치는 금액으로 시공을 해 주겠다는 소식에 신자들은 내년도 교무금을 앞당겨 내거나 익명의 기부자도 늘어났다. 사랑이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빗물에 잠겨 무용지물이었던 지하 강당 바닥도 전부 교체하고 성당 건물 외벽과 내부 페인트도 새로 칠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성전 로비 천정이 내려앉아 이것도 말끔하게 보수했다.
무른 듯 단단하고 수더분하지만 영리한
건립 25년밖에 안 되었는데도 곳곳에서 균열이 생기고 부서진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망경동은 칠암동성당에서 분리되어 나왔다. 분리되기 2년 전인 1991년 칠암동성당은 화재가 발생해 감실과 제의실을 제외하고는 모두 전소되었다. 이를 재건하기 위해 손수 벽돌을 쌓으며 온 힘을 쏟은 결과 3년 만에 칠암동성당은 굵은 골격을 갖추어 장엄하게 부활했다. 기쁨도 잠시 망경동성당으로 분리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다시 새 성전 건립기금을 마련해야 하는 신자들로서는 좋은 재료로 꼼꼼하게 지을 수가 없었다. 패널로 지을 구상도 하였다고 하니 당시 사정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짐작할 수 있다.
겨우 몸을 일으키려는데 2010년 가좌동본당이 생기면서 신자들 절반이 훅 나갔다. 형제자매들과의 이별도 아쉬운 마당에 큰집의 의무도 저버릴 수가 없었다. 이 일 끝나면 저 일이, 저 일 끝나면 또 다른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러나 목표는 단 하나, 하느님을 향해 하느님과 함께하는 것이다. 망경동 신자들은 그것을 알아차려 온몸으로 껴안고 호흡했다.
보아라, 너는 내 안에 나는 네 안에 있다
올해 설립 25주년을 기념해 엠마오로 해외성지순례를 다녀왔다. 전 신자와 함께할 수 없다는 아쉬움에 떠나는 신자들은 남은 신자들을 저마다의 가슴에 품고 동행했다. 처음에는 본당 신자들로만 가는 것으로 계획하였으나 인근 성당 신자들도 합류하는 바람에 무려 42명이 출발했다. 일정 중에 대표적인 곳이 스페인 북부에 있는 예수회의 창설자 이냐시오 로욜라 성인의 생가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이었다. 이냐시오 로욜라 성인의 생가를 선택한 이유는 고비 때마다 헤쳐 나가는 성인의 영성과 기개가 망경동 신자들과 닮았기 때문이다. 가두선교를 불사한 지난날을 연상하면 전교를 위해 수천 리 길을 떠난 산티아고 성인과도 닮았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에서는 이우진 신부가 유럽의 여러 사제와 함께 제대 위에 올랐다. 그동안의 시간이 축복으로 다가왔으며, 미사를 마치고 거대한 향로가 공중을 힘차게 저으며 뽀얀 연기를 뿜어냈을 때 울컥함이 올라왔다.
본당주보성인 정하상 바오로
성전에서 제대를 향해 왼편에는 본당주보 성 정하상 바오로상이 있다. 본당이 설립된 그해 9월 순교자 성월에 성상을 모시고 축복식을 가졌다. 기해박해에 순교하여 1984년에 한국성인 103위로 시성된 정하상 바오로 성인의 신심을 본받고자 했다. 부친 정약종을 비롯하여 모친 유소사와 누이 정정혜 등도 모두 순교성인이다.
이렇게 순교정신이 깃든 망경동성당은 2016년 7월에 성당 입구 울타리 앞에 ‘형구돌’을 설치하고 전 신자들과 함께 제막식을 가졌다. 형구돌이란 소리 없이 교수형을 집행할 수 있도록 고안된 돌이다. 박해로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참혹한 죽음을 맞이했다. 이곳 형구돌은 가로 70㎝ 세로 47㎝ 두께 30㎝이며 중앙에 약 20㎝ 뒤쪽에는 5㎝ 정도의 원추형 구멍이 하나 뚫려 있다. 앞에 앉아 있는 죄수의 목에 밧줄을 걸고 바위 뒤편에서 당기면서 고문과 죽음의 형벌을 집행했다고 한다. 설치 당시 주임 신부는 순교자 성월을 맞아 밧줄로 형구돌에 목을 매다는 퍼포먼스를 벌이며, 죽음으로 신앙을 지켜낸 순교자들을 기리도록 했다.
[2023년 5월 28일(가해) 성령 강림 대축일(청소년 주일) 가톨릭마산 4-5면, 조정자 이사벨라] 0 46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