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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ㅣ미사

[미사] 알기 쉬운 미사 전례22: 성변화와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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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4-06-04 ㅣ No.2466

[알기 쉬운 미사 전례] (22) 성변화와 종


성체 · 성혈 축성의 순간 알리는 중요한 의미

 

 

- 미사에서 종을 치는 순간은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거룩하게 변화하는 축성과 관련이 있다. 세 번 울려 퍼지는데, 성령 청원을 하며 사제가 손을 예물 위에 얹는 순간과 축성된 빵을 들어 올리는 순간, 축성된 피를 담은 잔을 들어 올리는 순간이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밀레의 그림 ‘만종’(晩鐘)의 뜻은 프랑스어 ‘L’Angelus’로 ‘삼종기도’입니다. 들판에서 일하다가 성당 종소리를 듣고 기도하는 농부 부부가 가운데 있고 한쪽에 성당의 종탑이 멀리 보이는 작품입니다. 이 그림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성당에서 울리는 종소리가 은은하게 들리는 듯합니다.

 

‘종’을 교회에서 사용하게 된 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이 자유를 얻은 313년 밀라노 칙령 이후로 추정됩니다. 라틴어로 ‘종’을 ‘campana’라고 부르는 이유는 당시 이탈리아 캄파나 지역에서 청동 산업이 발전했기에 그곳에서 종을 많이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사비니아노 교황(재위 604-606년)이 처음으로 기도와 미사 시간에 성당 종을 울리도록 규정했습니다.

 

현재 미사 중 복사가 작은 종을 사용하는 경우는 성변화와 관련됩니다. 곧 교회 공동체가 봉헌한 예물인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거룩하게 변화하는 축성의 순간들이지요. 빵과 포도주가 성체와 성혈로 변하는 축성 시점은 동방 전례와 서방 전례가 서로 다르게 해석했습니다. 동방은 축성을 기원하는 ‘성령 청원 기도’(epiclesis)를 성체·성혈 축성의 중요한 요소로 생각했지만, 서방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전까지 그리스도의 말씀인 ‘성찬 제정문’으로 축성이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서방 교회가 예수님 말씀에 중점을 두는 계기를 마련한 교부 중에 암브로시오 성인이 있습니다. 그는 저서 「성사론」에서 분명하게 말합니다. “축성 전에 빵은 그저 빵일 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말씀이 말해지는 즉시 빵은 그리스도의 몸이다. … 포도주와 물이 든 잔도 그리스도의 말씀 전에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말씀이 있는 즉시 그것은 백성을 구원할 피가 된다.”

 

약 1600년 동안 로마 교회의 유일한 감사 기도이고 현재의 ‘감사 기도 제1양식’인 ‘로마 전문’(Roman Canon)에는 성령이라는 단어가 마지막 영광송(Doxologia)을 제외하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비록 성령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예물에 대한 성령의 역할을 언급합니다. 성찬 제정문을 하기 전에 하는 “주 하느님, 이 예물을 너그러이 받아들이고 강복하시어 참되고 완전하며 합당한 제물 사랑하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소서”라는 부분이지요.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는 이브 콩가르를 비롯한 여러 신학자 연구에 힘입어 ‘예수님의 성찬 제정 말씀’과 함께 성령을 빵과 포도주를 성체·성혈로 변화시키는 축성의 주인공으로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로마 전문인 제1양식 이외 나머지 양식에는 ‘축성 기원 성령 청원 기도’가 포함되었으며, 이 순간에는 사제가 예물 위에 손을 펴 얹도록 했습니다.

 

그렇다면 미사에서 종을 치는 순간이 축성과 관련 있다는 차원에서 볼 때, 기본적으로 세 번의 순간을 말할 수 있습니다. 성령 청원을 하며 사제가 손을 예물 위에 얹는 순간과 빵에 대한 예수님 말씀을 하고 축성된 빵을 들어 올리는 순간, 또 잔에 대한 예수님 말씀을 하고 축성된 피를 담은 잔을 들어 올리는 순간입니다. 이에 더하여 성체와 성혈에 대해서 깊이 절을 하는 순간에 종을 칩니다. 이런 관점에 볼 때, 사제가 영성체하는 순간에 치는 종은 아무 필요가 없습니다.

 

‘성령 청원 기도’와 ‘예수님의 성찬 제정문’을 통하여 축성돼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된 성체와 성혈을 들어 올릴 때, 가만히 보기만 하지 않고 성 비오 10세께서 알려주신 것처럼 토마스 사도가 한 고백인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 20,28)을 속으로 하면 좋겠습니다.

 

[가톨릭신문, 2024년 6월 2일, 윤종식 티모테오 신부(가톨릭대학교 전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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