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8일 (화)
(녹)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영성심리: 욕구를 품다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4-05-28 ㅣ No.2029

[영성심리 칼럼] 욕구를 품다

 

 

심리학만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욕구’의 개념이 있습니다. ‘욕구’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마음이 드시나요? 반가우신가요? 아니면, 내 안에 욕구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드실까요?

 

우리말 사전에는 욕구를 ‘무엇을 얻거나 무슨 일을 하고자 바라는 일’이라고 풀이합니다만, 영어에서는 욕구를 ‘Need(s)’라는 단어로 표현합니다. 말뜻 그대로, ‘무언가를 필요로 하는 것’, ‘필요성’입니다. 우리 몸이든 마음이든, 살아가기 위해 무언가를 찾게 만드는 것이 바로 욕구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반대로, 무언가를 찾게 하는 욕구가 없다면 살아갈 수 없다는 말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가장 쉽게, 생리적 욕구 중 하나인 식욕을 예로 들어볼까요? 하루 종일 굶었는데도 배가 고프지 않습니다. 식욕이 안 생기는 거죠. 이틀, 사흘을 굶어도 식욕이 안 생겨서 계속 밥을 안 먹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생명에 큰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심리적 욕구인 성취욕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성취욕 때문에 어려움이 생기기도 하지만, 성취 욕구 자체가 전혀 없다면 무언가를 하고픈 마음도 안 생기지 않을까요? 의욕이 없는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우울증으로 발전할 수도 있겠죠.

 

사실, ‘욕구’라는 것이 썩 반갑지는 않은 대상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식욕뿐만 아니라 성욕, 수면욕, 과시욕, 인정 욕구, 지배 욕구, 의존 욕구 등. 이러한 욕구가 많아서 편하고 즐겁기보다 불편하고 고민스럽고 때로는 죄책감까지 든다는 것을 자주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욕구라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혹은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한 무언가를 바라는 움직임이라면, 욕구를 마냥 불편해하기보다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금욕’이라는 가치가 중시되면서 욕구를 영성 생활과 반대되는 것, 내 안에서 최대한 억제하고 없애야 할 대상으로 인식해 온 것도 사실이지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참된 영성 생활은 인간의 ‘육체성’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삶을 지향하더라도 모든 인간은 육신을 지닌 존재이며, 따라서 육신의 조건과 한계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우선, 불편함과 거부감이라는 자동적인 선입견을 내려놓고 욕구를 가만히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좋다.’ ‘나쁘다.’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아, 내 안에 이런 욕구가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거죠. 내 안에 없으면 좋을 대상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품고 살아가야 할 대상으로 욕구를 바라보는 겁니다. 거기에서부터 욕구의 정화와 성숙이 시작됩니다.

 

“정화와 성숙은 에로스를 거부하거나 ‘독살’하기보다는 에로스를 치유하고 그 진정한 위대함을 회복시켜 줍니다.”(베네딕토 16세,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5항)

 

[2024년 5월 26일(나해)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청소년 주일) 서울주보 7면, 민범식 안토니오 신부(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홍보국장)] 



40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