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14일 (수)
(녹) 연중 제28주간 수요일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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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8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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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6-10-13 ㅣ No.192442

부주임 신부님, 수녀님들과 직원회의를 합니다. 본당의 일정을 함께 살펴보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입니다. 저는 먼저 수녀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어서 부주임 신부님의 의견을 듣습니다. 일정이 겹치지 않도록 조정하고, 필요한 것은 서로 양보합니다. 이번 회의에서는 특별히 부주임 신부님의 의견을 많이 반영했습니다. 본당의 날에도 영어권 교우들을 위해 영어 미사를 봉헌하고, 부활과 성탄 대축일에도 영어 미사를 마련하고, 의무 대축일에도 영어 미사를 드리기로 했습니다. 또 지난 사순에 교우들과 40일 동안 성경 통독을 했던 부주임 신부님은 이번 대림에도 성경 통독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신부님의 열정과 수녀님들의 영성이 함께하니 저는 참 행복한 본당 신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저는 『트렌드 2026』을 읽고 있습니다. 책에서는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를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는 인간이 인공지능에게 일을 지시하고 결과를 점검하는 ‘Human in the Loop’입니다. 둘째는 대부분의 일은 인공지능이 하고 인간은 중간중간 확인하고 방향을 잡아주는 ‘Human on the Loop’입니다. 셋째는 인간의 개입 없이 인공지능이 스스로 판단하고 일을 수행하는 ‘Human out of the Loop’입니다. 이 표현을 보면서 직원회의에서의 제 모습을 생각했습니다. 본당의 많은 일은 부주임 신부님과 수녀님들 그리고 직원들이 잘해 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직접 하려고 하기보다는 뒤에서 바라보고, 필요한 때에 방향을 잡아주고, 도와주려고 합니다. 말하자면 저도 어느 정도 ‘Human on the Loop’인 셈입니다.

 

그런데 이 표현을 신앙생활에도 적용해 보았습니다. 하느님과 나의 관계는 어떠한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시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선택하고, 판단하고, 책임질 수 있도록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말씀을 통해 길을 보여 주시고, 성령을 통해 마음을 움직여주시고, 때로는 사람과 사건을 통해 우리를 바른길로 이끌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어쩌면 ‘God on the Me’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내 삶을 대신 사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제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늘 함께하시고 바라보시는 것입니다. 문제는 때때로 우리가 하느님을 삶 밖으로 밀어내고 ‘God out of the Me’로 살아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을 꾸짖으십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는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은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꾸짖으신 것은 그들이 십일조를 냈기 때문이 아닙니다. 작은 규정은 철저하게 지키면서 정작 더 중요한 하느님의 뜻, 의로움, 사랑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또 율법 교사들에게는 “너희가 힘겨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워 놓고, 너희 자신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앙은 다른 사람에게 짐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짐을 함께 져주는 것입니다. 지도자는 모든 일을 자기 뜻대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 공동체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책임지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우유부단한 성격 자체가 불행의 씨앗은 아닙니다. 때로는 하느님의 뜻을 찾기 위해 충분히 기다리고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반대로 직접 결행하고 결단이 빠른 것도 잘못은 아닙니다. 하느님의 뜻이 분명하다면 신속하게 행동할 필요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빠른가 느린가가 아닙니다. 내가 무엇을 위해 결정하는가입니다. 나의 욕심과 자존심을 위해 결정한다면 아무리 신속해도 좋은 열매를 맺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선택한다면 때로는 기다림도 은총이 되고, 때로는 결단도 은총이 됩니다. 신앙인은 하느님을 삶 밖에 두는 사람이 아니라, 끊임없이 “주님, 제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십니까?”라고 묻는 사람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오늘 우리에게 분명한 기준을 알려 줍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 내가 한 선택이 하느님의 뜻에 가까운지 알고 싶다면 그 열매를 보면 됩니다. 나의 말과 행동 때문에 사랑이 커지고 있는가, 기쁨과 평화가 생기고 있는가, 서로에게 인내하고 친절해지고 있는가를 살펴보면 됩니다. 오늘 하루 우리 삶 속에서 하느님을 밀어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선택과 관계 안에 하느님께서 함께하시도록 자리를 내어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이므로 성령을 따라갑시다.” 그렇게 살아갈 때 언젠가 주님께서 나타나시는 날, 우리는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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