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30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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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님_“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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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6-09-29 ㅣ No.192183

* 오늘의 말씀(9/29) :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 독서 : 다니 7, 9-10. 13-14

* 복음 : 요한 1, 47-51

* <오늘의 강론>

오늘은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교회는 4차 라테란공의회(1215년)와 1차 바티칸공의회(1870년)를 통해, 천사의 존재를 신앙교리로 선언하였습니다.

<천사론>에서 믿어야 할 교리는 두 가지입니다. 곧 천사는 존재한다는 것과 천사는 우리의 감각을 초월하는 영적존재로서 하는 일이 ‘사자’(천사)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천사는 하느님의 사자들이요,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는 능력들이요, 하느님을 섬기는 영적인 존재들로서(히브 1,14), 자주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은 ‘만남의 신비’ 안으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십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요한 1,47)

여기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말은 그의 혈통이 이스라엘 사람이어서라기보다, 하느님 앞에서 위선과 속임수 없이 진실한 사람을 나타냅니다. 그가 완전무결하거나 죄가 없는 사람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과 인격에 “거짓(δόλος; 속임수·간계·위선)이 없음”을 말합니다. 곧 겉과 속이 다르지 않고 하느님과 사람 앞에서 충직하고 진실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나타나엘이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요한1,48)

‘무화과나무 아래’는 성경에서 단순한 위치 확인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곧 이스라엘의 평화와 번영을 상징(1열왕 5,5;미카 4,4;즈카 3,10)하며 이스라엘의 회복과 메시아 시대의 평화와 하느님 백성의 안식을 표상합니다. 또한 라삐전통에서 율법을 공부하거나 기도하고 묵상하는 장소를 나타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가 어디에 있었는가.’보다, 예수님이 ‘그를 보시고 알고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보았다”라고 하십니다.

이는 단순히 “보고 알았다”는 예지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내가 주목하고 있었다.’는 의지적인 측면을 말하고 있습니다. 곧 ‘사랑’을 나타냅니다.

그 ‘바라봄’에서 비로소 나타나엘은 신앙을 고백합니다.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요한 1,49)

이렇게 해서 대전환이 발생한 것입니다. 만남의 신비가 가져온 결과입니다.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요한 1,46)라고 빈정거리던 그에게 대역전이 발생한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이 그를 전복시켰던 것입니다.

이는 먼저 그가 예수님을 “스승”으로 고백하고 자신이 제자로 들어감을 밝힙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아버지와의 본질적인 관계를 지닌 신적 정체성과 하느님께서 세우신 메시아적 왕인 “이스라엘의 임금님”으로 고백함으로써 예수님의 인격과 사명을 동시에 선언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는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50)

그렇다면, “그보다 더 큰 일”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바로 다음 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51)

“하늘이 열린다.”는 표현은 <성경>에서, 물리적인 하늘의 문이 열린다는 뜻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과 영광을 드러내시고, 인간에게 은총을 베푸신다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그런데 “천사들이 사다리 위에서”(창세 28,12 참조)가 아니라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린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느님의 현존이 바로 예수님 안에 나타남을 말해줍니다. 예수님이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요, ‘새로운 베텔’(하느님의 집; 창세 28,17 참조)이 됩니다. 곧 “사람의 아들”이 구원의 통로, 곧 하느님의 뜻과 은총이 인간에게 내려오고, 인간이 하느님께 나아가는 통로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예수님 자신이 사다리 역할을 하시며, 당신 안에서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단절이 극복되고 하느님의 현존과 계시가 인간에게 열린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다니엘 7장에서, 종말론적 통치자로서 하늘의 권한을 받아 구원을 실현하는 분으로 신성과 인성이 분리되지 않는 분으로 암시됩니다.)

“보게 될 것이다”라는 약속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공생활 전체를 통해 하느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을 암시해줍니다. 곧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 전체를 통해 하느님의 계시가 드러나게 될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그보다 더 큰 일”은 예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계시와 표징이라 할 수 있으며,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가 새롭게 열리게 될 것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 “큰 일”을 이미 보았으며, 오늘 대천사들의 축일을 지내면서, ‘하늘의 사다리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오니, 주님! 오늘도 하늘의 문을 제 안에서 여소서.

제 안에 당신이 머무시는 하늘이오니, 당신을 드러내소서. 아멘.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51)

주님,

제 마음에 울려오는 하늘의 이야기를 듣게 하소서.

우리 안에 펼쳐놓은 당신의 사랑을 만나게 하소서.

우리의 만남에서 하늘이 열리게 하소서.

그리하여, 이 땅이 당신이 여시는 하늘이 되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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