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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24일 (목)
(녹)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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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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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15:48 ㅣ No.192091

어려서 부터 이빨이 허약했습니다. 그래서 보철을 빨리 했습니다. 나이가 들고 몸이 더 허약해 지니 이빨이 성한 곳이 없어서 치과를 갔더니 500만원을 준비하라는것입니다. 그런데  치과 치료가 하나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고 연쇄적으로 작업을 해야 했고 재정적으로 불안한 저로서는 정상적인 치과 치료를 받을 수 없었고 그래서 선택한 것이 아버지께서 다니시는 기공소입니다. 기공소를 가서 필요한 이빨을 할 수 있지만 역시나 의사와 같은 가요? 가난이 결국은 이빨로 인해 계속 기공소로 향하게 만들고 만족함은 없지만 계속입니다. 정해진 프로토콜대로 가면 간단히 끝날 것을 그렇지 않고 의사가 아닌 사람들에게 제 이빨을 맡기니 계속 연속입니다. 오늘도 기공소에서 작업한 것이 문제가 되어서 새로 한 것이 문제가 되어서 3개월에 한번은 개보수 작업을 합니다. 가난하면 오래 못산다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아파하면서 병 들어서 죽어 가는 인생이 가난한 사람들의 인생이라는 것을 50 중반에 깨닫게 됩니다. 정상적인 의술 과정이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서에서 말씀하신 준비된 기름 ..돈이 풍족했다면 이런 불편한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사는 것이 기구합니다. 이런 현실이 과연 천국인가? 내 인생에 천국이란 ? 모든 것이 재미가 없고 돈으로 뭐하나 재대로 할 수 없는 현실에 ..우리 고모와 같이 죽음을 맞아하는 순간에 돈이 없어서 치료를 받을 수 없고 불쌍히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그런 비극적인 인생도 있습니다. 여기서 비극? 정식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죽음을 맞이 한 것이 아니라 돈이 없어서 요양원에서 자신의 병을 응급땜빵으로 지속하다가 죽어가는 것이 불쌍한 우리 고모의 인생 단면입니다. 너무 불쌍히 죽은 고모입니다. 이런 고모가 천국을? 오늘 독서와 복음의 내용이 영혼의 자각 없이 육체가 병들어서 죽어가는 삶의 단면과 같습니다. 고모도 과연 죽음을 맞아하는 순간에 나는 비극적인 인물이야 하면서 임종하셨을까? 독서와 복음의 인물들을 보면 하나 같이 영혼이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영적이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사막의 교부라는 책을 읽어 보면서 그 안에 있는 내용도 어찌 보면 일반 사람들이 보아서는 전혀 삶의 재미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단어 입니다. 영적인 삶, 하늘을 향한 삶을 살아가는 삶을 보면 비영적인 사람들이 보면 비극입니다. 하루만이라도 그와 같이 살라고 하면 비명을 지르고 나갈 것입니다.  덕이라는 것이 인내에서 나오는 것이고 성덕이라는 것이 인내가 쌓여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삶의 단면이 상기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세상 사람 관점에서 보면 비극입니다. 

 

성당 사람들에게 성인들의 실재 삶을 살아가라고 하면 모두 두손을 들고 도망갈 것입니다. 그럼 성전에 있는 사람들의 바라는 바는 현세 구복적인 길을 원하고 그쪽으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출세하고 나름 사회적인 부를 축적하고 여기에 걸맞추어서 성전에서도 나름대로 한자리 차지 하여서 한목소리 내고 나름 가진 재화를 이용하여서 목소리 내고 사람 줄 세우기 할 수 있는 것을 나름의 신앙의 복 받았다고 할 것입니다. 사회에서도 나름대로 나와 같은 또래에 뒷쳐지지 않고 나의 자식들은 좋은 학교 나와서 좋은 직장 다니고 잘살아가는 모습을 천국으로 바라볼 것이고 실재로 천국의 삶이라고 착각하고 그쪽을 향해서 전진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니 일반 신자뿐만 아니라 성직자들도 그쪽 방향으로 열심히 전진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일명, 교회의 세속화입니다. 이것이 허무입니다. 어디를 둘러 보아도 성화의 여정을 걷는 이가 없고 모두 성전에 와 앉아 있는데 하나같이 머리에는 각기 다른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전부 대부분인 곳.. 세속화 교회이고 오늘 제 1독서에서 나오는 허무라는 말이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질머지고 가는 삶..나를 버리고 .. 주변에서 악마같은 사람이 악마같은 짓을 하면 그것을 대적하지 않고 온전히 선으로 대하면서 인내하고 기도로 상대를 바라보고 거리를 두고 걸어가는 삶.. 시간이 흘러 흘러서 덕이 쌓여서 성덕이 되고 성덕이 싸이고 싸여서 결국은 내 안에 내것이 없이 하느님이 사시는 삶..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내 안에 나는 죽었고 오직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움직이신다는 말이 진정한 하느님과 합일의 삶입니다. 우리가 동경해야 하는 삶은 이와 같은 삶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적어도 이와 같은 길이 있다는 것 만이라도 알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도 인내의 삶을 걸어갑니다. 마지막 성화의 여정 안에서 하느님을 뵈옵고 천국의 삶을 이 세상에 구현하면서 걸어갑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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