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22일 (화)
(녹) 연중 제25주간 화요일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 묵상

스크랩 인쇄

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15:12 ㅣ No.192052

김건태 신부님_참가족 

 

오늘 복음 말씀은, 읽고 묵상할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누구보다도 성모 마리아가 등장하며, 예수님이 마치 어머니를 부정(?)하는 것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프로테스탄에서는 일찍부터 성모 마리아 공경을 거부해 왔으며, 거부의 근거로 오늘 말씀을 자주 들먹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는, 무엇보다 먼저 본문의 내용 자체에 충실해야 합니다. 상상의 나래를 펼쳐, 없는 말을 덧붙여 가며 묵상하거나 해석하는 일은 정말 위험한 일이며, 소그룹 모임에서 각자의 묵상 내용을 나눌 때는 더욱 경계해야 합니다. 소설을 써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은 그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왔다.하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왜 왔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습니다. 이 말씀 앞의 본문과 뒤의 본문을 살펴보아도, 오게 된 동기에 대한 암묵적 언급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어떠한 연유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그냥 온 것입니다. 사실 오늘 예수님은 가족을 비판하기 위함이 아니라, 신앙인의 가족 또는 모임의 성격을 규명하기 위함에 초점을 맞추고 계십니다. 어제, 예수님이 등불의 비유를 통해 말씀이라는 빛을 따라 살아야 하는 신앙인의 삶을 강조하셨다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을 뵈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하고 알려드리자, 예수님은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하고 단언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 이 말씀에 담긴 하느님의 지고의 뜻은 세상과 인류의 구원에 있습니다. 성자께서는 성부의 뜻을 이루시고자,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고, 말씀과 행적으로 가르치시며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이끄셨으며, 끝내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구원을 완성하신 분입니다. 성자의 이 하느님의 말씀실현에 적극적으로 함께하신 분 가운데 으뜸은 성모 마리아입니다. 우선, 마리아의 품을 통하여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인간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하느님의 뜻이었지만,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는 순명의 말씀으로 구원의 새로운 역사를 활짝 여신 분입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성모님은 공경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한 분입니다. 마리아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으며, 우리 교회는 전통적으로 이 고통 가운데 일곱 가지를 뽑아 성모칠고(聖母七苦)라는 이름으로 기억하며, 지난 15일에 이를 기념했습니다. 특별히 십자가의 길에서의 예수님 만남,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돌아가심 목격, 성시를 품에 안으심, 무덤에 묻으심 등을 통한 고통의 깊이는 아마도 예수님 못지않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어머니를 제자들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 우리의 어머니로 세워주셨습니다. 주님 승천 후 제자들이 모여 기도할 때, 그 자리에 예수님의 어머니가 함께하셨다는 사도행전의 보도는(사도 1,14) 이 사실을 더욱 분명히 해줍니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입니다.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들이 모여 이루어진 신앙 공동체에는 성모 마리아께서 늘 함께하고 계십니다.

 

 

신앙인의 모범이신 성모님을 본받아, 순명으로 하느님의 뜻을 품고 살아가는 신앙인, 적극적으로 하느님의 뜻을 펼치는 신앙인, 성모님과 함께 영원한 행복 속에 머물리라는 희망을 간직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신앙인의 삶을 다져나가는, 기억에 남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21절) 예수님은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 관계보다 더 깊고 근본적인 새로운 가족의 기준을 드러내신다. 곧,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삶 안에서 실천하는 사람이야말로 예수님의 어머니, 형제, 자매가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어머니 마리아를 배제하거나 낮추려는 말씀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성모님의 신앙을 더욱 찬미하는 말씀이다. 성모님은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고 응답하심으로써 하느님의 뜻을 듣고 받아들인 분이셨다. 따라서 마리아야말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온전히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신 분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마리아는 그리스도를 잉태하심으로 행복하셨다기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믿음으로써 행복하셨다. 육체적으로는 어머니이셨으나, 먼저 신앙으로 어머니가 되셨다.”(Sermones 요약) 즉, 마리아의 진정한 위대함은 단순히 예수님을 육신으로 낳으셨다는 사실보다, 말씀을 믿음과 순명으로 받아들이신 그분의 신앙에 있다. 

 

오리게네스도 말한다.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누구든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마음에 잉태하고, 삶 속에서 낳아 이웃에게 보여 주기 때문이다.”(Homiliae in Lucam 요약) 이것은 모든 신앙인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실천함으로써 우리는 세상에 그리스도를 ‘낳는’ 이들이 된다.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해 이웃은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날 수 있다. 

 

교리서도 이 말씀을 이렇게 풀이한다. “마리아는 믿음을 통하여 육신으로뿐 아니라 신앙으로도 하느님의 아드님의 어머니가 되셨다.”(494항 요약) 또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교회의 모든 지체는 서로 형제이며, 그리스도와 깊은 친교로 묶여 있다.”(795항 요약)라고 한다. 즉, 우리가 말씀을 따를 때, 우리는 예수님의 형제자매가 될 뿐 아니라, 성모님처럼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를 낳아 주는 영적 어머니가 된다. 

 

오늘날 각박하고 이기주의적인 사회 속에서 신앙인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삶으로 부름을 받고 있다. 말씀을 따르는 삶은 곧 사랑과 자비, 나눔의 삶으로 이어진다. 그럴 때 우리는 세상 속에서 주님의 가족으로 살아가며, 이웃에게도 그리스도를 ‘낳아주는’ 마리아의 모습을 닮아가게 된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실천할 때, 우리는 예수님의 형제가 되고, 마리아처럼 세상 속에 그리스도를 낳아 주는 어머니가 된다. 이 복음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다시 점검하며, 참으로 주님의 가족으로 살아가기를 다짐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9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