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7일 (월)
(녹)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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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욱현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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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09:17 ㅣ No.191733

조욱현 신부님_: 손이 오그라든 병자의 치유.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주신 사건을 전해 준다. 이 사건은 단순히 병을 치유하는 이야기라기보다, 율법의 정신과 사랑의 우선성을 가르쳐 주시는 표징이다. 예수님께서는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회당 한가운데 세우시고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게 물으신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9절) 

 

이는 안식일을 ‘형식적 규율의 날’로 여긴 이들을 향한 도전이자, 안식일의 참된 목적을 드러내는 말씀이다. 주님께서 명하신 “손을 뻗어라.”(10절)라는 말씀은 단순히 육체적 치유의 순간을 넘어, 죄와 탐욕으로 움츠러든 인간이 다시금 선과 사랑을 향해 손을 펴야 한다는 초대이다. 

 

오리게네스는 “그대의 손이 죄와 탐욕으로 말라버렸다면, 그 손을 펼쳐라. 그것은 이제 더 이상 훔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누고 사랑하기 위해 쓰여야 한다.”라고 해석한다. 성 암브로시오는 “아담이 금단의 열매를 따기 위해 내밀었던 그 손은 죄로 인해 병들었으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다시금 선행의 손으로 회복되었다.”라고 설명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그리스도께서는 안식일에 치유하심으로써 율법을 파괴하신 것이 아니라, 율법의 본래 목적, 곧 인간을 살리고 구원하는 목적을 드러내셨다.”라고 강조한다. 교리서는 이 구절을 인용하며,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밝혀 주셨음을 가르친다. “율법을 준수하는 것이 사람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자비와 생명을 향한 것임”(2173항 참조)을 밝히는 사건이라는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도 “오그라든 손”이 있다. 이웃을 돕기를 주저하는 손, 자비보다는 자기 이익을 움켜쥐려는 손, 기도와 선행을 미루는 손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손을 뻗어라.”(10절) 이제 그 손을 펴서 이웃을 향해 자비를 베풀고, 하느님께 기도를 올려야 한다. 또한, 우리는 신앙 안에서 ‘율법주의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규칙과 전통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사랑과 자비를 가로막을 때, 우리는 바리사이와 다를 바 없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사람을 고치심으로써 율법의 참된 정신이 사랑과 생명임을 보여 주셨다. 우리가 움츠러든 손을 펴서, 하느님께 향하고, 이웃을 향해 나누며, 선행으로 봉사할 때, 우리도 참으로 치유된 제자가 될 것이다. 그러니 오늘, 이 미사에서 이렇게 기도하자. “주님, 제 손이 오그라들었으니, 당신 말씀에 힘입어 펴게 하소서. 제 손이 이제는 사랑의 손, 자비의 손, 봉사의 손이 되게 하소서.” 아멘!

 

김건태 신부님_안식일은 생명의 날 

 

오늘은 예수님이 휴식의 날인 안식일에 행하신 치유가 문제로 제기됩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안식일법은 십계명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탈출 20,8; 신명 5,12).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십계명은 5세기 교부 아우구스티노 성인께서 간결하게 정리해 놓으신 것입니다. 프로테스탄트나 동방교회의 십계명과 비교해 보면, 계명이 열 가지라는 사실은 동일하나, 분류 자체에는 약간의 차이가 보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2계명을 프로테스탄트나 동방교회는 둘로 나누어 놓았고(2-3계명), 9-10계명을 하나로(10계명) 묶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차이는 십계명 본문 자체가(탈출 20,2-17: 신명 5,6-21) 각 계명 앞에 첫째, 둘째, 셋째 등 서수를 붙이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서 비롯됩니다. 그러함에도 이를 십계명으로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기초로(탈출 34,28; 신명 4,13; 10,4), 1세기 유다교 학자 필론과 5세기의 아우구스티노가, 본문의 내용을 전체적으로 아우르면서도, 다소 다르게 분류를 시도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물론 필론이 속한 유다교도 이 십계명을 가장 중요한 법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유다교 제1계명이 나는 너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의 하느님이다.라는 점입니다(탈출 20,2: 신명 5,7). 십계명을 인간의 자유를 짓누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옛날 이집트에서처럼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해서, 종살이라는 죽음에서 해방이라는 생명으로 이끌기 위해 주어진 법임을 강조하려는 차원으로 이해한다면, 필론의 분류법에 상당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십계명 가운데 안식일법만큼은 그 제정 배경이 분명하게 제시되고 있습니다(탈출 20,8-11; 신명 5,12-15). 하느님께서 엿새 동안 일하시고 이렛날에 쉬셨으니, 그분 모습대로 창조된 인간도 마땅히 쉬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물로 남종과 여종들, 이방인들, 하물며 집짐승까지도 쉬도록 명하고 있습니다. 엿새 동안 생업을 위해 고생했으니, 하루 휴식을 취하고, 다시 엿새 동안 생업에 종사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휴식은 따라서 생명을 위한 것이며, 그러니 안식일은 생명의 날인 셈입니다. 신명기가 이집트에서의 종살이 생활을 상기시키는 다소 다른 근거를 제시하고 있으나, 생명 수호라는 주제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오늘 주님은 치유 사건을 통하여 안식일 본래의 의미를 되살리고자 하십니다. 생명의 하느님께 바쳐야 할 날, 하느님께서 사랑을 나누시고자 당신의 모습대로 창조하신 사람을 위한 날, 그 사람이 죽음의 상태에 있다면 당연히 (치유를 통해) 생명을 되돌려주어야 할 날임을 강조하십니다. 문제는 마음이 완고해 생명이 아니라 죽음의 문화를 즐기는 자들, 곧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식입니다. 육체적인 장애보다 그들의 영적인 장애 곧 오그라든 마음이 더욱 큰 문제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향해 던지신 뻗어라!”라는 지시는 누구보다도 마음이 오그라든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향한 말씀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골이 잔뜩 나서 예수님을 어떻게 할까 서로 의논하였던것입니다.

 

오늘 주님은, 바리사이들을 향해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이웃의 생명과 행복에 대한 우리의 닫힌 마음을 꾸짖으시는 것 같습니다. 해결 방법은 오그라들고 닫힌 우리의 마음을 펴고 뻗으면됩니다! 펴고 뻗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웃을 더불어 살아야 할 존재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오늘 하루,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이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고마우신 분들이라는 마음으로, 그분들과 더불어 생명의 하느님을 찬미하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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