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4일 (금)
(녹)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그들도 신랑을 빼앗기면 단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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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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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10:44 ㅣ No.191673

<연중 제22주간 금요일>(9.4) -창조시기 4일째-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루카5,35)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단식과 기도!'

 

오늘 복음(루카5,33-39)은 '단식 논쟁과 새것과 헌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율법을 잘 지키고 있다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었던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말합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단식하며 기도를 하고 바리사이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하는군요."(루카5,3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을 할 수야 없지 않느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루카5,34-35)

 

그리고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새것과 헌것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아무도 새 옷에서 조각을 찢어 내어 헌 옷에 꿰매지 않는다.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루카5,36ㄱ.37ㄱ.38)

 

성경에 드러난 '단식과 기도의 의미'는 '주님을 만나기 위한 영적 행위'입니다.

복음에 '혼인 잔치의 비유'가 나오는데, 이 비유에서 신랑은 주님이시고, 신부는 교회와 교회 구성원들인 우리들입니다. 신랑이신 주님과 함께 있는데, 어떻게 단식할 수 있으며, 무슨 기도가 더 필요하겠습니까?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게 되면, 그때에는 예수님의 제자들도 단식하고 기도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믿는 이들의 신앙 여정은 '지금 여기에서 그리고 죽음 저 너머인 영원한 세상에서 주님을 만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여정'입니다. 이 영적 행위가 바로 '단식과 기도'입니다.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단식과 기도'에 대해 묵상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구체적인 삶'입니다. '삶으로 단식하고, 삶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참된 단식'(이사58,1-12)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 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이사58,6-7)

 

그러니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단식과 기도는 '끊임없는 쇄신이요 회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쇄신과 회개(메타노이아 : 연마된 연장)'는 '행실을 새롭게 하는 것, 행실을 고쳐먹고 주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함께 노력합시다!

 

"우리가 무딘 마음으로 살면 굉장히 힘이 들고 영혼이 피곤합니다. 마음을 방치하고 가다듬지 않았기에 힘든 것입니다. 세상을 대하는 우리의 연장이 무뎌진 탓입니다."('바이올린과 순례자', 18쪽)

 

"안전하게 마실 수 있는 물에 대한 접근권은 기본적이며 보편적인 인권입니다."('찬미 받으소서', 30항)

 

(~ 에제20,44)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단식의 정신 

 

오늘 복음은 단식에 관한 논쟁으로 시작한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단식하며 기도하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먹고 마신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단식의 본질과 참된 신앙의 태도를 새롭게 밝혀 주신다. 단식은 단순히 음식을 절제하는 행위가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기쁨과 희망을 누리는 신앙의 표현이라는 것을 가르치신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신랑으로 비유하시며, 당신과 함께 있는 동안은 혼인 잔치의 시간이라고 말씀하신다.(34절) 즉, 주님께서 현존하실 때 제자들은 슬픔이 아니라, 기쁨 속에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35절)이라 하셨으니, 이는 십자가의 죽음과 이어지는 주님의 부재 순간을 가리킨다. 그때 제자들은 단식할 것이다. 이어지는 새 옷과 헌 옷, 새 포도주와 헌 가죽 부대의 비유(36-37절)는 복음이 가져오는 새로움을 강조한다. 복음은 옛 율법적 틀 안에 억지로 꿰매어 붙일 수 없으며, 성령의 은총으로 새롭게 변화된 마음, 곧 ‘새 부대’ 안에서만 받아들여질 수 있다. 

 

교부들은 이 말씀을 단식과 신앙생활의 본질을 해석하는 중요한 열쇠로 삼았다. 성 이레네오는 단식을 “죄의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의 행위”라고 말한다. “참된 단식은 외적 형식이 아니라, 내적 회개와 사랑을 통해서만 의미를 갖는다.”라고 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단식을 이렇게 설명한다. “단식의 열매는 단순히 음식을 끊는 데 있지 않고, 가난한 이를 기억하고, 마음을 겸손케 하며, 자비의 행위를 자라게 하는 데 있다.”(Homilia in Matthaeum 요약) 오리게네스는 “헌 부대는 옛사람, 곧 죄와 습관에 얽매인 인간”이라고 하며, “성령 안에서 새로 태어나지 않으면 복음을 담을 수 없다.”(Commentarium in Lucam 요약)라고 해석한다. 교회의 전통도 이를 이어받아, 사순 시기의 단식을 단순히 금식으로 이해하지 않고, 기도·자선과 함께하는 “회개와 사랑의 행위”(교리서 1434항)로 가르친다. 

 

우리는 단식을 통해 하느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고, 동시에 이웃 사랑의 구체적 표현으로 완성해야 한다. 내가 덜 먹음으로써 절약한 것을 가난한 이와 나누는 것이야말로 단식의 참된 열매이다. 또한, 주님의 비유처럼, 우리는 ‘새 부대’가 되어야 한다. 낡은 습관, 옛 죄악, 고정관념을 버리고, 성령 안에서 새롭게 변화된 마음으로 복음을 담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단식을 단순한 종교적 의무가 아니라, 당신과의 관계, 그리고 이웃과의 사랑 안에서 새롭게 해석하신다. 우리가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할 때는 기쁨이요, 그분이 부재하실 때는 회개와 갈망의 단식이다. 또한, 새 부대가 되어야만 새 포도주인 복음을 온전히 담을 수 있다. 우리도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넘어 참사랑과 새로움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도록 초대받고 있다.  

 

김건태 신부님_새가죽부대

경직된 옛 율법과 전통을 담고 있는 헌 가죽 부대를 대표하는 사람들과, 예수님의 새로운 가르침을 담을 새 가죽 부대로 상징되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은 예나 지금이나 그칠 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철저한 율법주의에 얽매여 있던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이제 막 태어난 그리스도교는 전통과 율법을 무시하거나 파괴하는 사람들의 모임 정도로 비쳤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논쟁 주제인 단식은 사실 모든 종교에서 중요하게 취급되는 종교 행위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단식을 하느님 앞에서 인간의 비천함과 희망과 사랑을 드러내는 하나의 신앙 행위로 가르칩니다. 단식의 기회와 동기는 실로 다양할 수 있으나, 하느님의 업적을 받아들이고 그분에게 모든 것을 맡기려는 겸손한 마음으로 신앙인의 자세를 확립하려는 마음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참된 단식은 따라서 이웃 사랑과 연결되어야 하며, 기도와 자선에서 분리될 수 없는 것입니다. 기도와 자선처럼 단식도 남에게 드러내 보이기 위한 행위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마태 6,5-18). 단식은 하나의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던지는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단식하며 바리사이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하는군요하는 힐문에서,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버린 단식, 보여주기 위한 단식이 엿보입니다. 이러한 질문 앞에서, 예수님은 신랑과 함께 있는 지금은 단식이 아니라 축제의 시기임을 분명히 밝히시면서도, 형식적이며 위선적인 단식 행위를 단죄하십니다. 하나의 전통 또는 규정으로서가 아니라, 또는 남들이 하니까 그냥 따라 하는 단식이 아니라, “신랑을 빼앗길 날과 같은 때, 곧 내 마음이 헛된 것으로 가득 차 주님을 모실 공간이 사라져 버린 결정적일 때, 몸과 마음을 비우고 바꾸는 회개의 몸짓, 오로지 하느님과 이웃을 향하는 사랑의 몸짓으로 단식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주님이 들려주시는 가르침과 보여주시는 행적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 모든 가르침과 행적이 사랑이라는 두 글자 안에 집약된다는 결론에 이르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새 포도주를 마음에 담고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는, ‘새 가죽 부대가 꼭 필요합니다.

 

 

오늘 하루, 옛것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다짐과 용기를 앞세워, 가족이나 이웃과의 관계 형성이 오로지 사랑을 중심으로 펼쳐질 수 있도록 힘쓰는 가운데, 기분 좋은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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