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22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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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1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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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04:42 ㅣ No.191353

한국에서는 사제가 서품받으면 전국 교구 사제 공통 권한을 받습니다. 한국의 어느 교구에 가더라도 따로 허락받지 않고 미사를 봉헌하고, 성사를 집전할 수 있는 권한입니다. 한국의 모든 교구가 함께 동의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사정이 조금 다릅니다. 제가 다른 교구에 가서 성사를 집전하려면 미리 해당 교구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을 영어로 ‘faculty’라고 하고, 한국 신부님들 사이에서는 흔히 파쿨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저도 알래스카에서 미사를 집전할 때 이런 절차가 필요했습니다. 사제라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라, 그 교구 안에서 성사를 집전할 수 있는 권한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런 절차를 보면서 한 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 권한은 마음대로 행사하는 힘이 아닙니다. 권한은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권한은 사제를 높이기 위한 특권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을 잘 섬기기 위한 책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특별한 권한을 맡겨 주십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맡겨 주신 권한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교회를 맡겨 주셨습니다. 베드로의 자리는 인간적인 능력으로 얻은 자리가 아닙니다. 인기가 많아서 얻은 자리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맡겨 주신 공적인 자리입니다. 그 자리는 명예를 위한 자리가 아니라, 하느님의 백성을 돌보는 자리입니다. 베드로의 자리는 오늘날 교황님을 통해 이어지고 있습니다. 교황의 권한도 세상 권력처럼 지배하는 힘이 아니라, 교회를 하나로 모으고 믿음을 굳게 하는 섬김의 책임입니다.

 

둘째는 하늘나라의 열쇠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도 열쇠에 관한 말씀이 나옵니다. “나는 다윗 집안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메어 주리니, 그가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그가 닫으면 열 사람이 없으리라.” 열쇠는 권한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책임을 상징합니다. 문을 열어야 할 때 열고, 닫아야 할 때 닫는 책임입니다. 교회를 신축하고 축성할 때 주교님께서 본당 신부에게 성당의 열쇠를 맡겨 주는 예식이 있습니다. 저도 본당을 신축한 뒤에 교구장님으로부터 본당의 열쇠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열쇠는 단순히 건물 문을 여는 열쇠가 아닙니다. 본당 공동체를 돌보고, 신자들이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책임의 상징입니다.

 

셋째는 맺고 푸는 권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이 말씀은 교회가 받은 용서와 화해의 권한을 보여 줍니다. 특별히 고해성사의 근거가 되는 말씀입니다. 사제가 고해성사에서 죄를 용서할 때, 자기 마음대로 용서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제가 개인의 능력으로 죄를 없애는 것도 아닙니다. 사제는 교회가 맡긴 권한 안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합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권한은 두려운 책임입니다. 권한을 받았다고 해서 높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낮아져야 합니다. 더 조심해야 합니다. 더 기도해야 합니다. 권한을 가진 사람은 자기 뜻을 앞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먼저 찾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얼마 전 후배 신부님과 함께 알래스카에서 빙하를 보고 왔습니다. 사진으로만 보던 빙하를 직접 보니 마음이 숙연해졌습니다. 빙하는 말없이 서 있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오랜 시간이 담겨 있었습니다.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눈이 내리고, 쌓이고, 눌리고, 다시 얼어붙는 시간이 수없이 반복되면서 거대한 빙하가 됩니다. 빙하를 보면서 신앙도 이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하루아침에 깊어지지 않습니다. 매일 드리는 기도, 매주 봉헌하는 미사, 작은 희생과 봉사, 용서하려는 마음, 다시 시작하려는 결심이 조금씩 쌓이면서 믿음의 깊이가 생깁니다. 눈 한 송이는 작습니다. 손에 닿으면 금세 녹아 없어집니다. 그러나 그 눈송이가 오랜 시간 쌓이고, 눌리고, 얼어붙으면 거대한 빙하가 됩니다. 우리의 작은 기도도 그렇습니다. 오늘 드리는 묵주기도 한 단, 오늘 바치는 짧은 화살기도, 오늘 참아 낸 말 한마디, 오늘 베푼 작은 친절은 보잘것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앞에서는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 영혼 안에 은총으로 쌓입니다.

 

빙하는 조용히 서 있지만, 그 안에 거대한 힘을 품고 있습니다. 신앙인의 삶도 그래야 합니다. 큰 소리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도, 세상의 박수를 받지 않아도, 하느님 앞에서 차곡차곡 쌓인 믿음은 큰 힘을 냅니다. 진짜 신앙은 요란하지 않습니다. 진짜 섬김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진짜 권한은 다른 사람을 누르는 힘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살리는 힘입니다. 그런 신앙인의 모범을 보여 주신 분이 성모님입니다. 성모님은 큰 소리를 내지 않으셨지만, 하느님의 구원 역사 안에서 누구보다 깊은 자리를 차지하셨습니다. 성모님은 앞에 나서지 않으셨지만,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 계셨습니다. 성모님은 세상의 박수를 받으려 하지 않으셨지만, 하늘의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성모님은 권한을 요구하지 않으셨지만,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우리 본당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섬기는 분들이 많습니다. 성전 문을 여닫는 분들, 제대를 준비하는 분들, 청소하는 분들, 주방에서 봉사하는 분들, 성가로 기도하는 분들, 아이들을 가르치는 분들, 아픈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의 작은 봉사가 쌓여 본당이라는 믿음의 빙하가 됩니다. 오늘 우리는 베드로 사도에게 주어진 권한을 묵상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각자에게 맡겨진 책임도 생각해야 합니다. 부모에게는 가정을 돌볼 책임이 있습니다. 봉사자에게는 공동체를 섬길 책임이 있습니다. 사제에게는 하느님 백성을 성사와 말씀으로 돌볼 책임이 있습니다. 신앙인 모두에게는 세상 안에서 복음을 증언할 책임이 있습니다. 권한은 특권이 아닙니다. 권한은 책임입니다. 권한은 지배가 아닙니다. 권한은 섬김입니다. 권한은 자신을 높이는 도구가 아닙니다. 권한은 다른 사람을 하느님께 가까이 이끌어 주는 길입니다.

 

빙하가 오랜 시간 눈을 품어 장엄한 모습이 되듯이, 우리도 매일의 기도와 희생과 사랑을 품어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제가 사제서품 받은 지 35년이 되는 날입니다.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오늘 점심은 제가 대접하도록 하겠습니다. 많이 드시고 가세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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