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21일 (금)
(백) 성 비오 10세 교황 기념일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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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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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6-08-20 ㅣ No.191318

이병우 신부님_<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8.20)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 비길 수 있다."(마태22,2)

 

'부르심에 응답하는 빛의 자녀들이 되자!'

 

오늘 복음(마태22,1-14)은 '혼인 잔치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 혼인 잔치 비유를 들어 하느님의 나라를 설명해 주십니다. 혼인 잔치는 축제요 기쁨입니다. 그것도 모두가 함께 기뻐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혼인 잔치를 준비하는 사람은 그런 마음으로 잔치를 준비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 축제의 자리에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그런 축제의 자리에 사람이 없다는 것은 큰 낭패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도 이와 같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는 모두가 함께 들어가야 하는 나라입니다. 주님께서는 특별한 사람만을 구원의 잔치에로 초대하시지 않고, 모두를 차별없이 초대하십니다. 그렇게 구원의 문은 모두에게 열려져 있습니다.

 

모두에게 열려져 있는 구원의 문을 향해 나아갑시다!

매순간 나를 구원으로 이끄시는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의 모습으로 응답합시다!

 

혼인 잔치에 초대 받은 사람들이 이 초대에 응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임금이 보낸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입니다. 그러자 혼인 잔치를 준비한 임금은 진노하여 그 살인자들을 모두 없애고 종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하지가 않구나. 그러니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 오너라."(마태22,8-9)

 

임금은 손님들 중에서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보고 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마태22,12)

그리고 하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자의 손과 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마태22,13-14)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라는 예수님 말씀에 더 마음이 머뭅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주님 부르심에 합당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성찰하게 합니다.

 

"하느님, 복된 베르나르도 아빠스가 하느님의 집을 향한 열정으로 타올라, 교회에 빛을 비추게 하셨으니, 그의 전구를 들으시고, 저희도 불타는 열정으로 언제나 빛의 자녀답게 살게 하소서."(본기도)

 

하느님의 자녀답게, 빛의 자녀답게, 날마다 나의 생각과 말과 행위가 주님께로 향해 있도록 합시다!

 

(~ 예레15,21)

 

이병우 신부님_혼인 잔치의 비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혼인 잔치에 비유하신다. 혼인 잔치는 구원의 기쁨을 드러내는 가장 풍성한 이미지이다. 그러나 초대받은 이들은 밭일과 장사에 몰두하여 초대를 거절한다. 이는 세상일과 탐욕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거절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초대는 단순한 권유가 아니라, 생명과 구원에 대한 하느님 은총의 초대이다. 이를 거절하는 것은 곧 심판을 자초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당신 잔칫상을 비워 두지 않으신다. 임금은 종들에게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9절)라고 하신다. 이로써 잔치는 선인과 악인 모두로 가득 찬다. 이것은 현세 교회의 모습을 반영한다. 교회는 거룩한 이들과 죄인들 모두를 포용하는 공간이지만, 마지막에는 정결한 이들만이 하느님 잔치에 들어가게 된다. 
 
이 비유에서 혼인 예복은 단순한 외적 장식이 아니라, 믿음 안에서 실천되는 사랑과 의로움의 상징이다. 믿음만으로는 부족하며,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사랑이 필요하다. 예복을 입지 않은 자는 손과 발이 묶여 바깥 어둠으로 내던져진다.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14절)라는 말씀은 구원의 보편성과 동시에 심판의 진지함을 일깨워 준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혼인 예복이란 믿음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 위에 더해진 삶의 거룩함, 즉 사랑의 실천을 의미한다. 단순히 잔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합당한 행실로써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In Matthaeum Homiliae, Hom. 69 요약)라고 하였다. 오리게네스는 “혼인 예복을 입지 않았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이름은 지니고 있으나, 그 삶에서 그리스도의 덕을 드러내지 않는 자들을 말한다. 하느님 나라는 은총으로 시작되지만, 의로운 삶으로 완성된다.”(Commentarium in Matthaeum, 22 요약)라고 하였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사랑이 없는 믿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설령 교회 안에 있어도, 혼인 예복인 사랑을 입지 않았다면 그는 바깥 어둠으로 던져질 것이다. 참된 선택은 믿음을 통한 사랑에서 이루어진다.”(Sermo 90 요약)라고 하였다. 성 그레고리오는 “부르심은 은총으로 주어지지만, 선택은 삶의 방식에 달려 있다. 혼인 예복은 성덕의 삶을 상징하며, 이를 입지 않은 자는 그 자리에 있어도 합당하지 않다.”(Homiliae in Evangelia, Hom. 38 요약)라고 한다. 
 

하느님의 부르심은 모두에게 열려 있으나, 응답은 우리의 자유와 삶의 방식에 달려 있다. 혼인 예복은 단순히 외적 형식이 아니라, 믿음 안에서 실천되는 사랑을 뜻한다. 교회는 지금은 선인과 악인이 함께 있지만, 마지막 심판에서는 사랑 안에 살아간 이들이 선택될 것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단순히 ‘참석’이 아니라, 합당한 삶으로 준비된 참여이어야 할 것이다.

 

김건태 신부님_하느님의  선물 앞에서

 

어제까지의 말씀을 통해서, 구원은 우리의 노력으로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느님의 선물이며, 이 선물 앞에서 우리는 마땅히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감사의 마음을 드러내야 함을 익히고 마음에 새겼습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정성껏 봉사하며 사랑 실천에 최선을 다하는 우리의 신앙 행위 안에 무엇보다도 먼저 감사의 마음이 바탕을 이루고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이 담겨 있는, 새로운 단락인 마태 21-22장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종교적 지도자들과 백성의 원로들과 논쟁을 벌이시는 장면을 소개합니다. 오늘 말씀은 혼인 잔치의 비유말씀이나, 내용으로 볼 때는 혼인 잔치 초대라는 구원의 선물 앞에서 초대된 사람들이 어떤 모습을 갖추어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있다는 점에서, 어제의 말씀 주제와 연관 지어 묵상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비유 말씀을 여는 문구,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에서 임금은 하느님 아버지를 말하고, ‘자기 아들은 성자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하느님은 당신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구원과 일치 관계를 분명히 하고자 혼인 잔치를 베푸십니다. 분위기는 행복과 기쁨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실은 당신 아드님의 희생, 곧 수난과 죽음을 통한 구원을 말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인간을 위해 직접 마련하신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은 참석을 거부하며, 초대를 위해 파견된 이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혼인 잔치의 주인공인 당신 아드님의 가르침과 행적에 대해 반대와 거부를 일삼았던 구약의 사람들, 곧 유다인들의 행태를 폭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 스스로 초대를 마다했으므로, 이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그들의 몫입니다. 진노한 임금이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없애고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 버렸다.하는 표현은, 추정컨대 70년경 로마제국에 의해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불타버린 역사적 상황을, 마태오 복음 저자가 속한 공동체가 이를 하느님의 징벌로 판단하고서 적시한 것으로 보입니다. 잔인한 결과처럼 보이지만, 분명한 하나의 역사적 사실입니다.

 

이제 임금의 제안으로 초대 대상이 확대됩니다: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종들이 거리로 나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려와 잔치방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고 합니다. 문맥으로 본다면, 이들은 본디 초대 대상에서 제외되었던 사람들, 초대되었던 유다인들이 볼 때 구원과 거리가 멀었던 사람들, 곧 이방인들입니다. ‘임금이 마련한 혼인 잔치 초대 대상의 확대는 바로 그분 아들의 십자가상 희생을 통한 구원 대상의 확대를 말합니다. 그러나 기존에 초대받았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새로 초대받은 사람들도 혼인 예복은 갖추어야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조건 없이 거저 초대되었다 하더라도, 합당한 예의는 갖추어야, 회개를 통한 마음의 준비는 선행해야 한다는 메시지입니다.

 

 

 

하느님은 당신 아드님의 희생을 통하여 우리를 모두 하늘 잔치에 초대하셨습니다. 이 선물을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하루, 더 열심히 기도하고 조금 더 희생하며, 사랑 실천이라면 누구보다도 앞장서는, 활기찬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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