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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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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1982년에 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생각한 젊은이 104명이 함께 신학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7년의 학교생활과 3년의 군 생활을 지내면서 중도에 그만두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학업을 따라가기 어려웠던 친구도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친구도 있었습니다. 세상 안에서 다른 모습으로 하느님의 뜻을 전하겠다고 떠난 친구도 있었고, 학교의 교칙과 내규를 지키지 못한 친구도 있었습니다. 기숙사 생활을 견디지 못한 친구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991년에 사제 서품을 받은 친구는 절반가량이 되었습니다. 사제가 된 후에도 몇몇 친구는 사제직을 떠났습니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견디지 못한 친구도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새로운 길을 선택한 친구도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먼저 하느님의 품으로 떠난 친구도 있습니다. 어느덧 35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중간에 그만둔 것이 실패는 아닙니다. 지금까지 사제로 살아온 것이 곧 성공도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자리에 있는지만 보시지 않습니다. 그 자리에서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지, 하느님의 뜻을 찾았는지, 하느님의 의로움을 지켜내려 했는지를 보십니다. 어떤 자리일지라도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하느님의 자비를 붙잡고 살아간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으로 받아 주십니다.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하는 부부를 만났습니다. 두 분은 각자 전 배우자와 헤어진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사람을 만나 다시 삶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저는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지나온 시간이 상처만으로 남지 않기를, 새롭게 시작하는 삶이 하느님 안에서 평화와 책임의 길이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헤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격 차이 때문에, 사업 실패 때문에, 깊은 상처 때문에, 때로는 또 다른 만남 때문에 헤어지기도 합니다. 교회는 혼인을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거룩한 성사로 고백합니다. 혼인은 가볍게 맺고 가볍게 끊을 수 있는 약속이 아닙니다. 그러나 현실의 삶은 언제나 낭만적이지만은 않습니다. 헤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고, 헤어져야만 하는 아픔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교회는 혼인의 거룩함을 지키면서도, 상처 입은 이들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의 법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성실하게 해결해야 합니다. 동시에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이들이 하느님 안에서 다시 설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고 동행해야 합니다.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하는 분들이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비록 지난 삶에 아픔과 상처가 있었을지라도, 이제 다시 하느님의 뜻을 찾고, 하느님의 의로움을 지키며, 책임 있는 사랑으로 살아가려 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자비로운 사랑으로 그들을 품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질문합니다. “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그 질문은 진리를 찾기 위한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곤란하게 만들기 위한 질문이었습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질문을 받습니다. 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사제 생활, 할 만하십니까?” 저는 그 질문을 제목으로 서품 25주년 은경축 기념 책자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사제 생활, 할 만합니까?” 복음을 선포하고 있는지, 아픈 이들을 위로하고 있는지, 악의 유혹과 싸우고 있는지, 하느님의 자비를 전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혼인이 단순한 계약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맺는 거룩한 약속임을 말씀하십니다. 혼인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책임을 다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기쁠 때만이 아니라 힘들 때도, 건강할 때만이 아니라 병들 때도, 풍요로울 때만이 아니라 가난할 때도 함께하겠다는 약속입니다. 혼인의 약속은 하느님의 사랑을 세상 안에 드러내는 성사입니다. 그러므로 혼인은 단순히 두 사람이 행복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하느님의 뜻을 살아가는 길입니다. 그러나 오늘 독서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중요한 진리를 듣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셨습니다. 자비를 베푸셨고, 돌보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과 맺은 약속을 자주 잊었습니다. 다른 신을 섬기고, 하느님의 사랑을 배반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셨고, 용서하셨습니다. 오늘 독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저지른 모든 일을 내가 용서할 때, 네가 지난 일을 기억하고 부끄러워하며, 수치 때문에 입을 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하느님의 용서는 지난 잘못을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용서는 우리가 지난 삶을 기억하게 하고, 부끄러움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게 하며, 더 깊은 사랑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너는 지금 누구를 사랑하고 있느냐?” “너는 지난 상처를 붙잡고 있느냐, 아니면 하느님의 자비 안에서 다시 시작하고 있느냐?” 인생의 전반전이 뜻대로 되지 않았어도 괜찮습니다. 후반전이 남아 있습니다. 한 번 넘어졌어도 괜찮습니다.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길을 바꾸었어도 괜찮습니다. 그 길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으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실패하지 않는 삶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넘어졌을 때 하느님께 돌아오는 삶입니다. 중요한 것은 상처 없는 삶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상처를 통해 더 깊은 사랑을 배우는 삶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과거만 보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현재를 보시고, 우리가 다시 걸어갈 미래를 열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가정 안에서, 사제직 안에서, 수도 생활 안에서, 신앙의 길 안에서 다시 묻습니다. “나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있는가? 나는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고 있는가? 나는 하느님의 자비 안에서 다시 시작하고 있는가?” 그 질문에 정직하게 응답할 수 있다면, 우리의 인생 후반전도 은총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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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예수님은, 우리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시는 분입니다." (마태 18, 35 마음에 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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