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13일 (목)
(녹) 연중 제19주간 목요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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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승수 신부님 [연중 제19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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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cornelia2] 쪽지 캡슐

2026-08-12 ㅣ No.191155

[연중 제19주간 수요일] 마태 18,15-20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함께 살아가는 이들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갈등상황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그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 주십니다. 먼저 ‘단 둘’이 따로 만나 그가 잘 알아듣도록 좋은 말로 타일러 보고, 그가 그렇게 말해도 듣지 않으면 ‘제3자’인 증인 한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서 그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기회를 주라고 하십니다. ‘욱’하는 주관적 감정에 휘둘릴 땐 상황을 냉정하게 보지 못하기에 잘못된 판단을 하지만, 제3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상황을 객관적으로 돌아보면 자신이 잘못한 부분이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할 지 그 길이 보이기 때문이지요. 이 정도 선에서 문제가 원만하게 잘 해결되면 좋겠지만 그게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교회 공동체에 공적인 중재를 요청하라고 하십니다. 아무리 다른 사람 말을 잘 안 듣는 고집 센 사람이라도 본당 사제가 진지하게 말하면 적어도 듣는 시늉이라도 할 테니까요.

 

자칫 이런 절차는 둘 사이에서 조용히 끝내고 말 것을 괜히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알려 일을 크게 만들고, 교회 공동체 안에서 공론화까지 시키면 그 사람과 나 사이에 파인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거리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굳이 이런 절차를 밟으라고 하시는 것은 그 사람과 나 두 사람이 한 분이신 하느님을 아버지로 믿고 섬기는 ‘형제’ 사이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잘 알지 못하는 ‘남남’이라면 그 사람하고의 관계가 어찌되든 아무 상관 없지만, 형제 사이에 생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그를 잃게 된다면 그것은 나에게도, 그리고 그 사람을 나만큼이나 아끼고 사랑하시는 하느님께도 너무나 슬픈 일이 되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순간적인 감정에 휩싸여 소중한 형제와의 관계를 그냥 놓아버리지 말고 어떻게든 그와 화해하여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라는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가 그정도로 노력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나’라는 사람이 뭐 하나 내세우거나 자랑할 거리 없는,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존재 같아도 내가 땅에서 풀어주고 탕감해주는 작은 행동 하나가 ‘하늘’에까지, 즉 어떤 사람이 하늘나라에 들어가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을지 없을지를 결정하는 ‘일생일대’의 문제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하니, ‘나’라는 존재가 내리는 결정 하나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지요. 예수님께서는 우리들 각자가 그토록 중요한 권한을 지니고 있으니만큼, 기왕이면 미움과 원망으로 상대방을 죄에 매어두는 결정을 하기보다, 용서와 화해로 상대방을 죄에서 풀어주는 결정을 하라고 하십니다. 내가 그런 결정을 많이 할수록 나와 마음을 모아 하느님 아버지께 같이 청해줄 ‘형제’들이 늘어날 것이고, 예수님께서도 그런 ‘우리’와 함께 하시며 힘을 실어주실테니까요. 구원의 문제에서는 적을 늘리는 것보다 ‘내 편’을 한 사람이라도 더 늘리는 게 엄청 유리하다는 거 잘 아시지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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