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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 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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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주님은 우리 삶의 목표 [말씀] ■ 제1독서(1열왕 19,9ㄱ.11-13ㄱ) 기원전 9세기 이스라엘 백성이 계약의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거의 잃어갈 즈음, 예언자 엘리야는 이에 대한 견딜 수 없는 좌절감으로 죽음까지 생각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순례의 길을 떠나며, ‘호렙’(‘시나이’의 다른 이름) 산에서, 모세가 그러했던 것처럼, 하느님을 마주합니다: “나와서 산 위, 주님 앞에 서라.”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는 믿음으로 엘리야는 임금의 갖은 억압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명을 수행해나갑니다. ■ 제2독서(로마 9,1-5) 몸으로뿐만 아니라 마음으로 철저하게 유다인이었던 사도 바오로는 동족들이 예수님을 저버리고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박해함으로써 점점 더 구렁에 빠지는 현실을 목격하고 심한 충격을 받습니다. 마음의 고통이 얼마나 컸으면, “내 혈족인 동포들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기라도 했으면 하는 심정”이라고 밝혔겠습니까? 그러나 그의 믿음은 의심을 뛰어넘어 더욱 견고히 다져집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젠가 계약의 백성이었던 이스라엘 백성을 빛으로 밝혀주시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 복음(마태 14,22-33) 복음서가 기록된 기원후 1세기에 이미 상당수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주님이 약속하신 하느님 나라에 대하여 의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과연 그 나라가 도래할 것인가? 마태오 복음저자는 주님께서 물 위를 걸으신 사건을 상기시키고 그 이야기를 전하면서, 인간의 조건을 변화시킬 능력을 갖추고 계신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세계가 탄생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줍니다. 특히 그는 믿음으로 변화된 진정한 제자는 죽음의 구렁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사실을 힘주어 전합니다. 베드로 역시 의심을 하였으나 주님께 돌아섬으로써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새김] 신앙인을 포함한 누구에게나 사람에게는 정말 힘들고 고통스러운 날들, 극복하기 불가능할 것 같고 영영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날들이 있습니다. 헤쳐 나올 수 있는 길들은 다 막혀 있는 것 같고 사방이 온통 칠흑으로 닫혀 있는 것 같은 그런 날들 말입니다. 이때 사람들은 쉽게 체념하고 포기하게 되며, 끝이 없는 구렁텅이에 빠져 더는 희망이 없다는 좌절감에 짓눌리곤 합니다. 그러다가 한순간, 예기치도 못한 때에 예상치도 못한 일들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암흑에 가려 보이지 않던 길들이 하나씩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하며 사방이 훤히 보이기 시작합니다. 한순간에 모든 체념을 털어내고 용기를 내어 나아갈 수 있도록 희망의 빛이 우리 주위를 비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숨을 쉴 수 있게 되며 다시 고개를 들 수 있게 됩니다. 신앙 속에 사는 신앙인들의 모습이 바로 그런 모습입니다. 주님을 만나고 체험하는 순간, 지금까지 겪은 모든 어려움이 그분께로 이끄는 디딤돌이었음을 비로소 깨닫고 감사의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베드로만이 아니라 모든 사도 역시 아무리 교회의 기초가 되고 교회를 관리하는 위대한 사명 앞에 서 있다 하더라도, 주님을 의심하면 “물에 빠져들” 수밖에 없으며, 그분께 다시 매달리면 “곧 손을 내밀어 붙잡아 주신다”라는 큰 가르침 앞에 섭니다. 이와 같은 구원 체험을 통하여 사도들은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이라는 고백을 더욱 다져나갔으며, 우리 또한 그 고백에 초대받고 있습니다. 이번 한 주간, 주님이 함께하심을 믿기만 하면 두려울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신념으로 신앙인으로서의 성숙을 다져나가는, 기억에 남는 한 주간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풍랑에 시달리는 배 1. 하느님의 현존은 “살랑거리는 바람” 안에 오늘 제1독서(1열왕 19,9.11-13)에서 엘리야는 호렙 산에서 하느님을 기다린다. 그분은 “크고 강한 바람에도, 지진에도, 불에도 계시지 않고,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 속에”(1열왕 19,12참조) 나타나신다. 엘리야는 그 소리를 알아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린다(13절) 이는 하느님의 현존 앞에서 경외의 표시이다. 이 대목은 하느님이 “권능의 폭풍”이 아니라, “사랑의 친밀함”으로 자신을 드러내신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하느님은 인간의 삶 속에서, 큰 사건보다 작은 충실함 안에 현존하신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하느님은 외적인 굉음 속에서가 아니라, 영혼의 고요함 속에서 말씀하신다.”(Hom. in 1 Regum 19 의역)라고 하였다. 따라서 기도와 침묵의 내적 공간을 마련하지 않으면 그분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없다. 하느님은 오직 사랑으로 자신을 드러내시며, 그 현시는 구원을 위한 자비의 행위이다. 2. 예수님: 풍랑 위에 서 계신 하느님의 아들 복음(마태 14,22-33)은 그 하느님의 현존이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되었음을 보여 준다.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시는 장면은 단순한 기적의 시범이 아니라, 하느님께만 속한 주권의 표징이다. 시편 77,20은 이렇게 노래한다. “당신의 길이 바다를, 당신의 행로가 큰 물을 가로질렀지만 당신의 발자국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신다는 것은 바로 야훼의 현존(theophania)을 드러내는 행위이다. 즉, 그분은 단지 인간의 스승이 아니라, “자기 백성과 함께 바다를 건너시는 하느님”(탈출 14,21-22)의 완전한 현현이시다.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바다의 격랑 위를 걸으심으로써, 피조물 위에 주권을 가지신 분임을 드러내셨다. 그분은 ‘나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하느님의 이름을 드러내신다.”(In Matthaeum 14,27 의역) 예수님의 “나다.”(ἐγώ εἰμι)는 단순한 자기 확인이 아니라, 탈출 3,14의 “나는 있는 나다.”(Ἐγώ εἰμι ὁ ὤν)의 하느님의 자기 계시를 다시 울려주는 말씀이다. 3. 풍랑에 시달리는 배: 교회의 상징 제자들이 탄 배는 격랑에 휩싸여 있다. 교부들은 이 배를 교회의 상징으로 해석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바다는 세상이고, 배는 교회이며, 바람은 박해와 유혹이다. 그러나 주님이 함께 계시니 배는 결코 침몰하지 않는다.”(Sermo 75,4 요약)라고 한다. 교회는 역사를 항해하며 세상의 조류를 거슬러 나아간다. 때로 주님이 “멀리 계신 듯” 느껴질 때가 있지만, 그분은 언제나 “풍랑 위를 걸으시며” 교회를 향해 오신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27절) 이 말씀은 하느님 백성의 역사를 통틀어 반복되는 구원의 언어이다. 이사야서에서도 “나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이사 41,10)라고 하셨다. 하느님의 현존은 언제나 두려움을 평화로 바꾸는 사랑의 힘이다. 4. 베드로의 믿음과 의심: 교회의 초상 베드로는 용기 있게 “주님,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28절)라고 청하지만, 거센 바람을 보고 곧 의심에 빠진다. 이것이 믿음과 두려움 사이에 선 인간의 모습, 곧 교회의 현실적 초상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설명한다. “바람을 보고 두려워한 베드로는 자신을 보았고, 믿음에서 눈을 돌렸다. 그러나 손을 내밀어 붙잡으신 주님은, 곧 교회의 구원자이시다.”(In Ioannem Tractatus 2,5 의역) 교회의 위기, 세상의 풍랑, 신앙인의 불안 속에서도 그리스도는 손을 내밀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31절)라고 구원하신다. 이는 꾸짖음이 아니라 사랑의 초대이다. 다시 주님께 시선을 고정하라는 초대이다. 5. 교부적·교의신학적 조명 성 그레고리오는 이 장면을 교회의 역사적 여정으로 해석하며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산에서 기도하시고 제자들이 바다에 있는 것은, 하늘의 주님과 땅 위에 있는 교회의 관계를 보여 준다.”(Homiliae in Evangelia 16,5 의역) 교리서는 이렇게 가르친다. “예수님의 기도는 아버지와의 친교로부터 흘러나오며, 그분은 기도 속에서 우리를 위한 중개자로 계신다.”(2609항 요약) 즉, 주님은 “산에서 기도하시며 바다의 제자들을 지켜보시는 분”으로, 오늘의 교회와 신자들을 위해 계속 중개하고 계신다.(히브 7,25) 6. 결론: 믿음으로 걷는 삶 오늘 복음은 말한다. “그들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32절) 그리스도께서 교회와 함께 계시는 한, 어떤 풍랑도 결코 침몰시킬 수 없다. 믿음이란 풍랑이 없는 바다를 걷는 것이 아니라, 풍랑 속에서도 주님을 바라보며 걷는 것이다. 성 베르나르도는 “믿음은 발이 닿지 않는 곳에서 걷게 하는 손길이다.”(Sermo in Nativitate Domini 3,2 의역)라고 하였다. 우리는 두려움 속에서도 “나다.” 하시는 주님을 알아보고, 그분께 손을 내밀어 붙잡아야 한다. 그때 비로소 우리도 “진실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33절) 하고 고백하게 된다. 이병우 신부님_<연중 제19주일>(8.9)
"예수님께서는 새벽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마태14,25)
'날마다 피정을 하자!!'
오늘 복음(마태14,22-33)은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새벽에 파도가 이는 호수 위를 걸으시어 파도에 시달리고 있는 제자들이 탄 배를 향해 걸어가십니다. 제자들이 그 모습을 보고 겁에 질려 "유령이다!" 하며 두려워 소리를 질러댑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태14,27)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그칩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을 통해 만난 '두 개의 묵상'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하나'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이신 주님에 대한 묵상입니다. 우리네 삶 전체에 함께 하시는 살아계시는 주님, 우리가 겪는 고통 가운데에서도 함께 계시는 주님, 이런 주님께 대한 나의 믿음에 대한 묵상입니다.
'또 하나'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 살아계신 주님을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에 대한 묵상입니다. 오늘 제1독서(1열왕19,9ㄱ.11-13ㄱ)는 구약의 위대한 예언자인 엘리야가 하느님의 산 호렙에서 주님을 만나는 내용입니다. "나와서 산 위, 주님 앞에 서라."(1열왕19,11) 엘리야가 만난 주님은 바람 가운데에서도, 지진 가운데에서도, 불 속에도 계시지 않았고, 고요 가운데에 계셨습니다. 바람과 지진과 불이 지나간 뒤에 주님께서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피정의 의미!' 피정은 피세정념(避世靜念), 곧 '세상을 피해 고요함 속에 머문다.'는 뜻의 줄임말입니다. 피정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잠시 내려놓고(break) 고요함 속에서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미사도 피정이요, 기도도 피정이고,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도 피정입니다. 피정집을 찾아가서 좋은 강의를 듣고, 소리높여 주님을 찬미찬양하는 것만 피정이 아니라, 고요함 속에서 주님을 만나는 모든 행위가 피정입니다.
피정을 통해 주님을 만납시다! 지금 여기에서 주님을 만나고, 임마누엘이신 주님과 함께 해야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고, 고통을 뛰어 넘을 수 있고, 그래야 부활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고통을 마주하게 된 것은 피정을 잘하지 못한 결과라는 성찰도 해보게 됩니다.
날마다 피정을 합시다!
(~ 이사19,25)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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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신부님_노력하라 가르치면 자녀 인생 망친다 |
2026-08-09 | 최원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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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신부님_주님께서 내 인생의 조각배 위로 올라오시면! |
2026-08-09 | 최원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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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 묵 |
2026-08-09 | 최원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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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따로 기도하시려고 산에 오르셨다. |
2026-08-09 | 최원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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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님_“주님,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마태 14,28) |
2026-08-09 | 최원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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