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21일 (화)
(녹) 연중 제16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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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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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6-07-20 ㅣ No.190710

이병우 신부님_"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구나! 그러나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마태12,39) 

 

'나의 시편!' 

 

오늘 복음(마태12,38-42)은 '요나의 표징'입니다.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전한 주님의 외침을 듣고, 니네베 사람들 모두가 주님께로 돌아섰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돌리시어 그들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그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요나의 표징'입니다. 

 

어제로 시편150편 모두를 필사했습니다. 이어서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의 잠언'을 필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시편은 '노래'입니다.

시편의 '시(詩)'입니다.

시편은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진솔한 대화'입니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가지고 하느님과 나눈 대화'입니다. 

 

시편 150편 전체는 그렇게 이루어진 '노래요. 시요 기도요 대화'입니다. '탄원과 탄식의 기도'이며, '자비의 기도'이며, '감사와 찬미의 기도'입니다. '다윗의 기도'가 많습니다. 

 

시편150편 중에서

가장 긴 시편은 119편인데, 73권 성경 전체 중에서 가장 긴 절인 176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시편 119편이 더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제가 고통을 겪은 것은 좋은 일이니

당신의 법령을 배우기 위함이었습니다."(시편119,71) 

 

"저에게는 당신 입에서 나온 가르침이 너무 좋습니다.

수천의 금과 은보다 좋습니다."(시편119,72) 

 

"당신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에 빛입니다."(시편119,105) 

 

"제 소송을 이끄시어 저를 구해 내소서.

당신의 말씀대로 저를 살리소서."(시편119,154) 

 

"길 잃은 양처럼 헤매니

당신의 종을 찾으소서."(시편119,176ㄱ) 

 

이제는 다윗의 시편이 아니라, '나의 시편'을 만들어 봅시다!

날마다 아니 매순간 하느님과의 만남 속에서 나오는 나의 시편을 만들어 봅시다!

고통 속에서 하느님께 울부짖는 '탄원과 탄식의 시편'을, 죄에서의 해방을 위해 하느님께 자비를 청하는 '자비의 시편'을,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와 찬양을 드리는 시편'을 만들어 봅시다! 

 

시간경 기도인 성무일도기도는 거의 시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날마다 나의 시편으로 성무일도기도를 바쳐봅시다! 

 

"할렐루야!

하느님을 찬양하여라, 그분의 성소에서.

숨쉬는 것 모두 주님을 찬양하여라.

할렐루야!"(시편150,1ㄱ.6) 

 

시편의 끝부분은 이렇게 '주님께 찬미와 찬양과 영광을 드리는 기도'로 이루어져 있고, 시편은 그렇게 끝맺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회개'이며,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天國)'이며,

이것이 바로 '보나벤투라(Bonaventura)'이며,

이것이 바로 '부활'입니다. 

 

"올바른 길을 걷는 이는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화답송 후렴. 시편50,23ㄴ) 

 

(~ 잠언1,7) 

 

조욱현 신부님_ 악하고 절개 없는 이 세대가 기적을 요구하지만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 “스승님, 스승님이 일으키시는 표징을 보고 싶습니다.”(38절)라고 시험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구나! 그러나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39절)라고 하시며, 표징을 요구하는 그들의 마음이 하느님을 진정으로 찾지 않는 마음임을 지적하신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란, 하느님을 유일한 신랑으로 알고, 그의 사랑을 받아 누리는 삶을 거부한 사람들이다. 율법과 말씀을 거부하고, 악과 거짓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다. 하느님 백성으로서 회개와 사랑을 선택할 책임을 회피한 자들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바리사이들이 표징을 요구한 것은 믿음 없는 마음의 특징이며, 그 마음은 진리를 보면서도 알아보지 못하는 어두움에 사로잡혀 있다.”(Homiliae in Matthaeum 37,2 요약)라고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요나의 표징을 언급하시며, 자신이 받을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을 예고하신다. 요나가 니네베에서 회개의 기회를 주었듯이,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인간에게 회개와 구원의 기회를 주신다. 십자가는 진리를 거부하는 자에게 걸림돌이 되지만, 믿는 자에게는 구원의 길이다. 교리서는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은 하느님의 사랑을 온전히 드러내며, 인류 구원의 결정적 사건이다.”(571, 604, 654항 참조)라고 한다. 예수님은 니네베 사람들과 솔로몬의 지혜를 언급하며, 하느님의 은총을 알아보고 받아들이는 중요성을 강조하신다. 니네베 사람들은 요나의 말을 듣고 회개했다. 솔로몬의 남방 여왕은 그의 지혜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먼 길을 갔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지혜를 하찮게 여겼고, 결국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하느님의 진리를 하찮게 여기는 마음은 스스로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Tractatus in Johannem 20 요약)이라고 한다. 

 

우리는 말씀을 알고, 선택하며, 실천해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도 진리와 정의, 사랑과 자비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필요하다. 니네베 사람들처럼, 자기 잘못과 부족함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겸손이 필요하다. 회개는 단순한 후회의 감정이 아니라, 삶의 방향 전환이다. 현대 사회는 다양한 지식과 정보로 가득하지만, 하느님의 말씀과 복음의 지혜를 먼저 살피고 존중해야 한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무시하거나 가볍게 여기면, 결국 마음이 어둠 속에 머물게 된다. 단순히 표징이나 기적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믿고, 선택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 우리도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며 십자가를 통해 구원에 참여해야 한다. 우리가 회개와 믿음으로 살아갈 때, 진정한 하느님의 자녀, 예수님의 형제와 자매가 될 수 있다.  

 

김건태 신부님_요나의 표징

예수님의 적대자들은 예수님에게 당신의 사명을 밝혀줄 명확한 증거를 확인하고 싶다는 뜻을 전합니다: “스승님, 스승님이 일으키시는 표징을 보고 싶습니다.” 예의를 갖추어 올리는 질문처럼 보이지만, 순수함과 진솔함을 찾아볼 수 없는 질문으로 보입니다. 정말 확인하고 싶어서, 확인하고 인정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예수님은 그러한 증거를 보여줄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고서, 궁지에 몰아넣기 위한 시도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표징이라는 표현을 통해,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의 초자연적 능력을 의심 없이 드러내 줄 이적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지상의 활동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영역에서, 곧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이적을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지상에서 보여 주신, 병자 치유와 악령 제거와 빵의 기적과 죽은 이를 소생시킨 일 등의 모든 기적을, 마술사가 펼치는 마법의 결과 정도로 치부하려는 속마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빵을 많게 하신 기적에서, 예수님이 지상에서 이루신 기적보다는 “하늘에서 내려온” 모세의 만나에 더 의미를 두고서 그런 기적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의 잘못은 예수님의 사명에 관한 증거 이전의 주제를 바탕으로 예수님을 반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처음부터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거부하던 사람들입니다. 결코, 이들은 예수님이 설파하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수용하지 않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종교에 대하여 우리와 전혀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로서, 이스라엘의 하느님께 대한 예배가 그들이 전념하는 일의 전부였으며, 이 예배는 오로지 자기들의 입장을 변호하는 역할을 해야만 했습니다. 아무도 그들의 허락이나 동의 없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활동을 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바리사이들에게 우선 필요한 것은 회개입니다. 믿음에 필요한 동기, 다시 말해서 표징을 받아들이기 위한 동기를 추구할 의지를 갖추는 일이 급선무입니다. 회개에 대한 의지 없이 이러한 표징을 요구한다는 것은 믿음이 없음을 드러내는 일이며, 따라서 이들은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분명하기에, “요나 예언자의 표징 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요나의 표징이란 요나가 “사흘 밤낮을 큰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것”을 말하며, 이 표징은 “사람의 아들이 사흘 밤낮을 땅속에 있을 것”을 예고하는 예언적 가치를 지닙니다. 그러나 요나의 설교로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 사람들이 회개하여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다면, 예수님은 당신의 가르침과 십자가상 희생을 통하여 특정 지역을 넘어 세상의 구원을 이루신 분이기에 “요나보다 더 크신 분”입니다. 나아가 세상을 회개로 이끌어 구원을 선사한 예수님의 바로 그 십자가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1코린 1,23)처럼 보인 그 십자가는 세상의 모든 지혜를 초월하고 있으니, 예수님은 “솔로몬보다 더 크신 분”이기도 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표징 요구를 통해 믿음이 없음을 드러내고 있는 바리사이들을 향해, 그들의 불순한 의도를 질타하시며 회개의 길로 들어설 것을 요구하십니다. 주님께 얼마든지 청하고 기대할 수 있으나,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회개를 통한 마음의 정화가 선행되어야 함을 배웁니다.

 

오늘 하루,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을 향하고 이웃에게 다가서는 가운데, “요나보다 더 크시고 솔로몬보다 더 크신 분”을 기리며 찬미하는, 거룩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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