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
이병우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 묵상 |
|---|
|
이병우 신부님_<연중 제16주일> -농민 주일-
오늘 복음(마태13,24-43)은 다섯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단락의 제목은 이렇습니다. '가라지의 비유'와 '겨자씨의 비유'와 '누룩의 비유'와 '비유를 들어 가르치시다'와 '가라지의 비유를 설명하시다'입니다.
연중 제16주일인 오늘은 '농민주일'입니다. 오늘 복음묵상글은 '마산교구보에 실린 저의 농민주일 강론'입니다.
"하늘 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길 수 있다."(마태13,24)
'우리농은 흙 사랑, 땅 사랑, 물 사랑, 생명운동입니다.'
오늘은 서른한 번째 맞이하는 농민주일입니다. 농민주일은 흙을 살리고, 땅을 살리고, 물을 살리는 생명운동에 헌신하고 있는 그런 농민들을 기억하고, 그런 농민들이 흘린 땀과 수고에 함께 동참하자는 데에 그 깊은 취지를 담고 있습니다. 생명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모든 농민들에게 힘찬 격려의 박수를 보내드립시다!
2015년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생태계의 주보 성인이신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언급하시면서 죽어가는 지구, 우리 공동의 집인 지구를 살리자는 회칙인 '찬미 받으소서'(Laudato Si)를 반포하셨습니다. 이 회칙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이 함께 살게 하자'는 호소를 담고 있으며, 인간의 '생태적 회계'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무농약이나 저농약, 그리고 유기농과 같은 생명농법으로 흙과 땅과 물을 살리는 일에 애쓰고 있는 농민들, 특히 가톨릭농민회 회원들을 기억합시다! 그들은 정말 땀을 많이 흘립니다. 많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땅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에게 좋은 먹거리를 주기 위해서 계속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풀과의 전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벌레와 같은 피조물을 죽이기 위해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손수 벌레를 잡아내는 수고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농민들의 수고와 땀은, '생명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지구를 살리기 위함'입니다. '하느님의 창조질서보전 행위'입니다.
생명농법으로 농사짓는 농민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너무 힘이 듭니다. 점점 더 고령화되어 가고 있어서 더 힘이 듭니다. 힘들어 하고 있는 농민들에게 힘을 실어줍시다! 그래서 생명농민들이 많아지게 합시다! 그렇게 하려면 그들이 하느님의 절대적 도움을 받아 만들어 낸 생명물품들이나, 그들의 1차 생산품들을 가지고 다시 만들어 낸 생명가공품들을 우리들이 잘 소비시켜 주어야 합니다. 가톨릭우리농은 바로 그런 일을 하는 곳입니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생명물품들을 잘 홍보하고 소비시키고 유동시키는 일을 하는 곳입니다. 사고팔고하는 행위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장사행위로 비추어지지만, 우리농은 장사하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농의 본질은 장사가 아니라 운동입니다. 그래서 "우리농은 흙 사랑, 땅 사랑, 물 사랑 생명운동입니다." 흙이 죽고 땅이 죽고 물이 죽으면 우리도 죽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요한15,1) 하느님의 완전한 계시(드러남)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아버지를 농부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마태13,24-43)처럼 하느님의 나라를 여러 비유를 들어 설명하셨는데, 그 소재는 농부들의 친구인 땅과 씨와 관련된 것들이 많습니다. "하늘 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길 수 있다."(마태13,24)
점점 더 빠르게 변하는 기후변화와 그에 따른 기후위기가 우리에게 다가왔고,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로 인한 자연재해도 계속 발생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생태적 회개'입니다. 생각과 말이 아닌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아가는 '회개'입니다. 조금만 생각을 바꿉시다! 그래서 흙을 살리고 땅을 살리고 물을 살리는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합시다! '회개는 말이나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입니다. 나의 작은 행동이 세상을 바꾸고 지구를 살리는 일에 큰 밑거름이 됩니다.
농민주일을 맞이하여, 다시 한번 이 땅에 있는 많은 생명농민들을 기억하고, 생명을 살리기 위한 그들의 수고와 땀에 몸과 마음으로 함께 합시다! 그들이 만들어 낸 생명물품들을 잘 애용합시다! 그래서 나도 살아나고, 너도 살아나고, 지구도 살아나게 합시다!
(~ 시편135,21)
조욱현 신부님_하느님 나라의 비유: 밀과 가라지
1. 선과 악의 신비로운 공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밀과 가라지”의 비유는 교회의 역사 안에서 끊임없이 묵상 된 주제다. 주님께서 좋은 씨앗을 뿌리셨지만, 원수는 밤중에 가라지를 뿌린다. 이로써 하느님 나라가 현존하는 세상에서는 언제나 선과 악이 함께 자라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지금은 가라지가 밭에 남겨져 있다. 추수 때가 되면, 가라지가 드러나 불타버릴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밀로 바뀔 수도 있다. 교회 안에서도 가라지였던 자가 회개하여 밀로 변화되는 경우가 많다.”(Enarrationes in Psalmos, 25,2 요약) 즉, 우리가 쉽게 판단하고 잘라내고 싶어 하는 그 ‘가라지’조차도 하느님 앞에서는 언제든 회개와 변화를 통해 새로운 생명을 맺을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2. 하느님의 오래 참으심과 자비 이 비유의 핵심은 단순히 선과 악의 공존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와 오래 참으심이다. 지혜서는 이렇게 고백한다. “주님께서는 힘의 주인이시므로 너그럽게 심판하시고 저희를 아주 관대하게 통솔하십니다.”(지혜 12,18-19)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도 이 구절을 해설하며, 하느님의 참으심은 단순한 지연이 아니라, 구원을 위한 적극적 기다림이라고 말한다. “하느님께서 즉시 벌하지 않으시는 것은 무관심이 아니라, 자비의 표징이다. 그분은 죄인이 회개하여 구원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In Matthaeum homiliae, 46,1 요약)
3. 교회 안에서의 적용: 가시와 밀의 공동체 교회는 하느님 나라의 씨앗이자 표징이다.(교회 5항 참조) 그러나 동시에 교회 안에서도 선과 악이 공존한다는 것은 초대 교회부터 자각된 사실이었다. 성 치프리아노는 이렇게 강조한다. “교회는 지금 세상에 순교자와 배교자, 의인과 죄인, 밀과 가라지가 함께 섞여 있다. 그러나 마지막 날에는 주님의 손길에 의해 구별될 것이다.”(Epistula 69,2 요약) 이 가르침은 우리로 하여금 교회 안의 ‘불완전함’을 비관적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자비와 희망의 관점으로 바라보도록 초대한다.
4. 종말론적 희망: 해처럼 빛나는 의인 예수님의 설명은 마지막에 종말론적 약속으로 끝난다.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43절) 이는 다니엘서의 예언을 떠올리게 한다. “현명한 이들은 창공의 광채처럼, 많은 사람을 정의로 이끈 이들은 별처럼 영원무궁히 빛나리라.”(다니엘 12,3) 성 아우구스티노는 여기서 교회의 궁극적 소명을 본다. “지금은 가라지와 함께 자라는 고통의 시기이지만, 끝 날에는 밀만이 남아 하느님의 나라에서 빛날 것이다. 이는 교회의 영광이며, 하느님의 은총의 완성이다.”(De civitate Dei, 20,9 의역)
5. 영성적 적용 우리 눈에는 가라지처럼 보이는 이도, 하느님 눈에는 밀로 변화될 가능성을 지닌 존재이다. 하느님께서 나를 기다려주셨듯이, 나도 이웃을 기다려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 선과 악은 내 마음 안에도 공존한다. 성령의 은총 안에서만 악을 선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로마 8,26 참조) 지금 불완전함 속에서도 우리는 마지막 날 하느님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소명을 받았다.
6. 결론 밀과 가라지의 비유는 인간의 약함과 죄의 현실을 드러내는 동시에, 하느님의 자비와 구원 의지를 선포하는 말씀이다. 지금은 선과 악이 공존하는 시간이며, 이는 구원의 기회이자 하느님의 기다림의 시간이다. 따라서 신앙인은 세상을 조급히 심판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자비와 회개의 길 위에서 인내하며, 마지막 날 해처럼 빛날 희망을 간직해야 할 것이다.
김건태 신부님_좋은 열매를 기다리시는 하느님
[말씀]
■ 제1독서(지혜 12,13.16-19)
구약성경 초기 작품에서는 하느님께서 세상의 악한 사람들을 벌하실 때, 그 일차적 대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이방 민족들을 삼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기원전 1세기경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살고 있던 유다인 지혜서 저자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대하시는 모습을 다시금 살펴보는 가운데,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결론에 이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해 그러하셨던 것처럼, 이방 민족들의 회개를 간절히 원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 말씀은 바로 그 내용을 간추려 전하고 있습니다.
■ 제2독서(로마 8,26-27)
인간은 자신의 지혜와 힘만으로는 하느님을 향하기에 역부족입니다. 그러기에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영으로 인간에게 필요한 능력을 은총으로 주시며 일으켜 세우십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영을 통해서 우리가 그분의 사랑에 눈뜨고 응답하며 달려 나갈 수 있도록 이끄십니다.
■ 복음(마태 13,24-43)
하느님의 나라를 설명하실 때, 예수님은 자주 ‘성장’에 관한 비유를 사용하십니다. 주님의 날이 다가오기를 성급하게 기다리고 있는 청중들에게 주님은 시간의 의미를 일깨우십니다. 영적인 현실은 거칠게 강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나긴 역사를 통하여 서서히 완성되어 나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역사가 종점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이러저러한 사건들의 궁극적인 의미가 밝혀질 것이며, 그때 가서 지금까지 튼실하게 보이지 않던 작물도 좋은 낟알을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을 터득하게 될 것입니다.
[새김]
이 세상에서 신앙인으로 살아가면서도 세상을 향해 격분하거나 실망을 토로할 때가 자주 있습니다. 사회 불의와 사람들 사이의 갈등, 증오, 투쟁 등을 볼 때 더욱 그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하느님이라면 의롭고 완벽한 사회 구현을 방해하는 사악한 요소들을 없애버리고, 우리가 꿈꾸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표현할 때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께 다가설 수 없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힘으로 강요될 수 있는 나라가 결코 아닙니다. 이 나라는 죄스러운 인간의 마음속에서 사랑의 힘으로 서서히 태어나고 완성되어 가는 나라입니다.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서 지저분하게 보이는 퇴비를 치워버려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퇴비가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데 일조할 수 있도록 신뢰하고 기다리며 함께 일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보시기에 그저 아름답기만 한 우리 각자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가 모여 이루는 공동체를 위해서 성령을 통해 바로 그렇게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비유 말씀을 통해 하늘 나라 건설에 대한 확신과 희망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이 나라 건설에 초대된 우리는, 그리고 우리가 몸담고 있는 교회는 어떠한 역경과 몰이해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열과 성을 다해야 하는 사명 앞에 섭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의 말과 행동이 진실을 좇고 정의를 추구하며 일치를 도모하는 한 주간, 아니면 적어도 거짓을 피하고 불의를 고발하며 분열을 마다하는, 곧 참 신앙인의 모습을 펼쳐나가는 한 주간 되기를 기도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
| 2958 |
<묵상 에세이 2부> 주님께 드리는 가장 아름다운 예물은 우리의 마음과 삶입니다 |
09:44 | 박소영 |
| 190697 |
이영근 신부님_“밀밭의 가라지”(마태 13,36) |
09:34 | 최원석 |
| 190696 |
이병우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김건태 신부님 묵상 |
09:34 | 최원석 |
| 190695 |
전삼용 신부님_모든 고통을 성장통으로 만들 수 있다면 |
09:28 | 최원석 |
| 190694 |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두어라. |
09:28 | 최원석 |




게시판 운영원칙
Help Des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