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12일 (금)
(백)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사제 성화의 날)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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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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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09:49 ㅣ No.190080

이병우 신부님_<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6.12) -사제 성화의 날-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마태11,29) 

 

'사랑이 되자!' 

 

오늘 복음(마태11,25-35)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났다는 말씀'과 '예수님의 멍에를 메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예수성심대축일'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제들을 기억하는 '사제 성화의 날'입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인 예수 성심을 다시금 기억하고 이를 본받고자 다짐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직무대리자'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제들을 기억하면서 그들을 축하하고, 사제의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이 되게 해 달라고, 예수님의 마음을 닮은 착한 목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겸손과 온유'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인내'입니다.

... ... ...

예수님의 마음은 '완전한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마음은 늘 낮은 곳을 향해 있었습니다.(오늘 제1독서 신명7,6-11 참조) 

 

'사랑의 사도인 요한 사도'가 오늘 제2독서(1요한4,7-16)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1요한4,7.10)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1요한4,11.16ㄴㄷ)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예수님도 사랑이십니다.

성령님도 사랑이십니다.

때문에 사제들도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때문에 신자들도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이 됩시다!

하느님의 사랑이 됩시다! 

 

조욱현 신부님_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1. 예수 성심의 의미

초기 교회로부터 예수 성심(聖心)에 대한 언급은 이미 존재했다. 성심은 단순히 신체적 기관이 아니라, 하느님이시며 동시에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 가운데 사랑의 중심이자 구원의 샘으로 이해되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그리스도의 심장은 교회의 탄생을 낳은 샘이며, 그분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은 성사들의 기원이 되었다”(Tractatus in Ioannem 120,2 의역)라고 말한다. 

 

이는 요한 복음의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요한 19,34)에 대한 교부적 해석으로, 교회가 성체와 세례성사로부터 태어남을 드러낸다. 비오 12세 교황은 회칙 “너희는 기쁨으로 물을 길으리라.”(Haurietis Aquas,1956)에서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상한 구세주의 심장에서 구원의 샘이 터져 나와 온 인류에게 은총이 흘러넘친다. 성심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결합 안에서 드러난 하느님 사랑의 상징이다.” 따라서 성심 공경은 단순한 감정적 신심이 아니라, 강생의 신비와 십자가의 사랑, 성체성사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구원 의지에 대한 응답이다. 

 

2. 역사적 전개

13세기 이후 독일 신비가들과 시토회 전통 안에서 예수 성심에 대한 묵상이 발전하였다. 그러나 이 신심이 보편 교회 안에서 제도적으로 확립된 것은 17세기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콕(1647-1690)을 통해서였다. 예수님께서는 파레이 르 모니알에서 성녀에게 발현하시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마음이 인간들로부터 받은 냉담과 배은망덕에 찢어지고 있다. 너는 이 마음을 공경하게 하고, 보속의 첫 금요일을 바치게 하여라.” 

 

이 요청에 따라 교회는 성체 성혈 대축일 후 첫 금요일을 성심 공경의 날로 정했고, 후에 비오 9세 교황이 보편 교회의 대축일로 선포하였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이 축일은 그리스도의 인류 구원 사랑에 대한 감사의 날로서 더욱 깊은 전례적 의미를 지닌다. 또한, 한국 주교회의는 이날을 사제 성화의 날로 정하여, 사제들이 예수님의 마음을 닮도록 기도한다. 

 

3. 복음 묵상: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오늘 복음(마태 11,25-30)은 예수 성심의 핵심을 보여 준다. 예수님께서는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셨다.”(25절)라고 하신다. 이 “철부지 어린이들”은 세속적으로 무력하지만, 하느님 앞에서 마음을 비우고 순명하는 자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가장 온전히 따른 이는 바로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그분은 하느님의 사랑을 완전히 드러내셨으며, 이제 그 사랑을 받아들인 자들은 진정한 평화와 안식을 얻게 된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28절)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은 단순한 덕목이 아니라, 하느님 사랑의 방식이다. 그분은 힘이나 권세로 다스리지 않고, 사랑과 겸손으로 구원을 완성하신다. 따라서 “예수님의 마음을 배우라.”는 초대는 곧 그분 사랑의 방식을 배우라는 부르심이다. 

 

4. 성심과 성체성사의 연관성

예수 성심 대축일이 성체 성혈 대축일 직후 금요일에 지내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성체는 곧 예수님의 심장에서 흘러나온 사랑의 실체이며, 성체 안에서 우리는 “상한 심장”의 사랑을 체험한다. 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분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왔듯이, 지금도 우리는 성체와 세례의 샘으로부터 생명을 얻는다.” 성체성사는 그리스도의 성심에서 흘러나오는 사랑의 성사적 표현이며, 우리의 성체성사 참여는 곧 성심 안에 들어가 그 사랑을 나누는 행위이다. 

 

5. 오늘의 실천과 성찰

예수님의 성심은 단지 공경의 대상이 아니라, 본받아야 할 마음이다. 사제들에게는 성심을 닮아 사랑으로 봉사하는 마음, 평신도들에게는 가족과 이웃 안에서 그 온유와 겸손을 실천하는 마음이 요청된다. 교리서는 이렇게 가르친다. “그리스도의 심장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의 상징이며, 성체성사와 수난을 통하여 우리에게 드러난 사랑의 표현이다.”(478항) 예수님의 성심을 닮아갈 때, 우리는 세상에서 그분의 사랑을 증언하고,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며, 세상에 하느님의 자비를 드러내는 사랑의 도구가 된다. 

 

6. 결론

예수 성심 대축일은 단순히 신심의 날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이 인간의 마음 안에서 피어난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배우고, 그분의 사랑을 닮아 세상에서 “온유하고 겸손한” 증인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 온유하고 겸손하신 당신의 마음을 우리 마음에 새겨 주소서. 우리도 당신의 사랑 안에 평화를 누리며, 세상에 그 사랑을 전하게 하소서. 아멘!”(예수 성심 기도)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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