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19일 부활 제7주간 화요일
사제가 된 후 꼭 지키려는 하나가 있습니다. 비밀을 만들지 말자는 것입니다. 비밀을 만들면 이를 지키기 위한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갑니다. 그러나 비밀 없이 살면 편합니다. 비밀을 지키려는 노력도 필요 없습니다.
예전에 책상 서랍에 열쇠를 달고 다녔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남들이 하니 저도 자물쇠를 단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어서일까요? 이 서랍 안은 잡동사니로 가득 차서 엄청나게 지저분해졌습니다.
갑곶성지에서 초 봉헌함에 자물쇠가 걸려 있었지만, 직원에게 퇴근할 때는 열어 놓고 가라고 했습니다. 자물쇠가 있으니, 돈이 많이 들어있는 줄 알고 좀도둑들이 와서 자물쇠를 억지로 열어 망가트린 것입니다. 그러나 열어 놓고 가니 자물쇠가 부서졌을까요? 전혀 없었습니다.
이처럼 비밀을 만들면 그 비밀 지키기에 더 큰 힘이 필요합니다. 그로 인해 다툼과 싸움도 생기게 됩니다. 오해를 사기도 합니다. 그래서 모두 공개하면 편합니다. 하지만 공개하려면 그만큼 삶에 떳떳한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누구는 이를 뻔뻔한 삶이라고도 하지만, 뻔뻔하다는 말을 들어도 떳떳하면 비밀이 없어지고 삶이 편안해집니다. 누군가 제게 “신부님만 알고 계셔요.”라면서 무엇을 말하려고 합니다. 비밀을 공유하려고 하는 것이지요. 그때 저는 자신 있게 말합니다.
“저 입 싸요.”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고별 기도라고 하는 매우 장엄하고 깊이 있는 부분입니다. 십자가 수난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하십니다. 이 기도를 통해 당신의 사명을 말씀하시고, 동시에 제자들을 향한 무한한 사랑을 담고 있습니다. 비밀이 전혀 없는 예수님이십니다. 떳떳한 삶을 사셨고, 그 사랑으로 하느님 나라의 비밀스러운 일까지도 모두 알려주셨던 것입니다.
특별히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한 17,3)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서 ‘안다’라는 말씀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단순히 지식적인 앎을 넘어서는, 인격적이고 친밀한 관계와 체험을 뜻합니다. 따라서 영원한 생명은 죽은 뒤에 가는 어떤 장소나 무한한 시간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하느님 아버지와 예수님과의 깊은 사랑의 관계를 맺고 친교를 누리는 상태 자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알아야 합니다. 숨김없이 모든 것을 다 알려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닮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떳떳한 삶입니다. 이 삶이 우리의 구원이며 생명이 됩니다.
오늘의 명언: 인생은 색칠책과 같다. 작은 부분을 하나하나 색칠하다 보면 언젠가 커다란 그림이 눈앞에 나타난다(세라 나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