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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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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스 교구 시노드에 참석했습니다. 3박 4일 동안, 3년 동안 준비한 시노드 결의 사항에 대한 투표가 있었습니다. 투표는 아주 중요한 것, 중요한 것, 덜 중요한 것으로 나누어서 투표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본당 행사에서 간식을 주는 것에 대한 투표가 있었습니다. 아주 중요하다는 의견, 중요하다는 의견, 덜 중요하다는 의견으로 투표했습니다. 교리 교육에 시대의 상황에 관한 것들을 반영하는 것에 대한 투표도 있었습니다. 낙태, 인종차별, 이민자, 환경 문제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이 필요한가에 대한 투표였습니다. 교구장님은 시노드의 투표를 참조해서 달라스 교구의 사목에 반영하겠다고 했습니다. 매일 아침 미사가 있었고, 미사 중에 주교님은 ‘희망’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희망은 절망 중에도 가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이사야 예언자가 선포했던 희망입니다. 메시아는 3번에 걸쳐 우리에게 오신다고 했습니다. 2,000년 전에 오셨고, 지금 우리의 마음에 오시고, 마지막 때에 오실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희망을 품고, 깨어 기다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성서 말씀은 구약과 신약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아하즈 왕은 유다 왕국의 위기에 직면했으나, 하느님께서 주신 징조를 거부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라는 표징(임마누엘)을 주셨지만, 아하즈는 이를 믿지 못하고 자신의 정치적 계산과 외교적 전략(앗시리아와 동맹)에 의존했습니다. 아하즈의 의심은 하느님보다 세상의 힘을 더 신뢰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 역시 하느님의 약속 대신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것들에 기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의 계획을 듣고 놀라움을 표현하지만(“어떻게 그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곧바로 순명하며 “말씀대로 이루어지소서”라고 응답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상황(혼인 전 임신으로 인한 사회적 위험)과 이해를 넘어, 전적으로 하느님께 의지하며 자신의 삶을 내어드렸습니다. 마리아의 순명은 인간의 연약함 속에서도 하느님의 사랑과 계획을 신뢰할 때 어떤 열매가 맺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야구 경기는 투수와 포수가 공을 던지고 받는 경기입니다. 그러기에 투수와 포수는 서로 호흡이 잘 맞아야 합니다. 포수는 투수가 던지는 방향을 정확하게 알아야 하고, 투수는 포수가 잘 받을 수 있도록 미리 던질 곳을 약속합니다. 던지는 공의 유형도 직구인지, 변화구인지 사전에 약속합니다. 이것이 투수와 포수가 함께 공유하는 사인입니다. 사인이 맞지 않으면 아무리 유능한 포수도 공을 잘 받을 수 없습니다. 사인이 맞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투수도 정확한 곳으로 공을 던질 수 없습니다. 야구 선수들은 훈련을 통해서 서로 사인을 숙지합니다. 그래야만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함께 더불어 살아가면서 상식과 양식이라는 사인을 공유해야 합니다. 관용과 인내라는 사인을 나누어야 합니다. 용서와 사랑이라는 사인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징표를 보여주시는 하느님과 그 징표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내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본다면 하느님께서는 내 가족들을 통해서, 내가 만나는 이웃을 통해서, 흘러가는 구름과 부는 바람을 통해서 표징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이제 곧 성탄입니다. 내 믿음의 눈에 이물질이 묻어 있으면 성탄의 기쁨을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내 사랑의 눈에 먼지가 잔뜩 묻어 있으면 주님 성탄의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내 희망의 눈에 고통의 비가 내리면 주님의 성탄을 제대로 볼 수 없을 것입니다. 해마다 계절이 오고 가듯이, 매일 태양이 뜨고 지듯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순환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눈을 뜨고 있어도 내 마음에 욕망의 먼지가 묻어 있다면, 내 마음에 분노의 이물질이 쌓여 있다면, 내 마음에 열등감의 비가 내린다면 우리는 늘 새롭게 다가오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대림 시기는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성찰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야만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이 되신 예수님을 제대로 맞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하즈처럼 의심의 눈으로 하느님의 표징을 보지 말고, 성모 마리아처럼 순명의 눈으로 하느님의 표징을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