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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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5주간 금요일 ... 독서, 복음서 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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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군 [ahyin70u] 쪽지 캡슐

2021-05-06 ㅣ No.146623

 

1독서<성령과 우리는 몇 가지 필수 사항 외에는 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5,22-31

그 무렵

22 사도들과 원로들은 온 교회와 더불어, 자기들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뽑아 바오로와 바르나바와 함께 안티오키아에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뽑힌 사람들은 형제들 가운데 지도자인 바르사빠스라고 하는 유다와 실라스였다.

23 그들 편에 이러한 편지를 보냈다.

여러분의 형제인 사도들과 원로들이 안티오키아와 시리아와 킬리키아에 있는 다른 민족 출신 형제들에게 인사합니다.

24 우리 가운데 몇 사람이 우리에게서 지시를 받지도 않고 여러분에게 가서, 여러 가지 말로 여러분을 놀라게 하고 정신을 어지럽게 하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25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을 뽑아 우리가 사랑하는 바르나바와 바오로와 함께 여러분에게 보내기로 뜻을 모아 결정하였습니다.

26 바르나바와 바오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입니다,

27 우리는 또 유다와 실라스를 보냅니다. 이들이 이 글의 내용을 말로도 전할 것입니다.

28 성령과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필수 사항 외에는 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29 곧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과 피와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불륜을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들만 삼가면 올바로 사는 것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30 사람들이 이렇게 그들을 떠나보내자, 그들은 안티오키아로 내려가 공동체를 모아 놓고 떠나보내자, 그들은 안티오키아로 내려가 공동체를 모아 놓고 편지를 전하였다.

31 공동체는 편지를 읽고 그 격려 말씀에 기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1독서 주해

22

야고보의 결정은 예루살렘 모교회 전체에 받아들여졌고 자체 내에서 사절 둘을 뽑아 바오로, 바르나바와 더불어 안티오키아로 파견했다. 이들의 역할은 안티오키아 교회에 경의를 표하고 예루살렘 지도부의 권위를 부각시키는 것이다. 나중에 예언자들로 소개되는 두 사절 가운데 하나는 이름이 바르사빠스(“안식일의 아들이라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결별한 후 바오로의 새 동료가 된 실라스였다. 실라스는 바오로의 중요한 협력자였던 실바노와 동일 인물로 추정된다.

 

유다 바르사빠에 대해서는 알려진 정보가 없다. 혹시 1.23에 나오는 요셉 바르사빠의 형제가 아닌지 모르겠으나 바르사빠(“안식일에 태어난의 뜻)라는 이름이 하도 흔해서 이를 확신할 수 없다. 실라스는 바오로의 여행 동반자인데, 일반적으로 1.2 데살 1.1에서 두 서간의 신자로 드러나고, 2고린 1.19에서는 코린토에서 바오로와 티모테오와 함께 설교하던 실바노와 동일시된다. 1베드5.12에서는 저자가 실바노를 이 서간의 필경사로 밝힌다. 실라스는 히브리 이름 세일라의 그리스어 번역이고 실바노는 그것의 라틴어 번역이다.

 

23

직역: “그들의 손으로”, 디아 케이로스는 “...에 의해서로 번역되는 칠십인역의 표현으로 2.23:5.12:7.25:11.30:14.3에도 나온다. 여기서는 이 편지가 이들 손에 의해 씌었다는 뜻이 아니라 이들을 통해 전달되었다는 뜻이다.

 

바오로가 시리아와 길리기아에 선교활동을 벌였다는 언급은 이제까지 없었다. 그러나 루카는 이 지방의 선교가 바오로의 도움으로 이루어졌음을 당연한 사실로 여긴다. 사도들과 원로들이 써보낸 편지는 이 세 지역 교회에만 해당되는 것은 물론 아니고 온 교회에 해당된다. 그러나 이 편지가 실제로 전달된 곳은 유다인들과 이방인들이 함께 모여 이룬 혼합 공동체였지 순수하게 또는 대부분이 이방인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들은 아니었다.

 

24

우리 가운데 몇몇은 예루살렘 지도부로부터 정식으로 파견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권위가 없었다. 루카의 이 묘사는 바오로의 서간과 내용이 일치한다.

 

25

바오로와 바르나바와 더불어 유다와 실라스를 지역교회들에 파견하기로 한 것은 예루살렘 지도부의 공식 결정이었기 때문에 논란을 불러이르킨 수구파 유다인들과는 달리 이들은 교회의 권위를 지니고 있다(27절 참조).

 

2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은 예루살렘 교회가 바오로와 바르나바에게 붙여준 영예로운 칭호다.

 

28

독자는 이 규정들이 무엇인지 알지만 이 편지가 전달되는 지역교회들은 아직 그것을 모른다. 성령과 사람 활동이 함께 협력하는 또 다른 예에 대해 13,1-3 참조).

 

29

지키다는 칠십인역에서 계약이나 계명에 충실하다는 의미로 통한다.

 

31

이 편지는 그들에게 격려가 되었다. 그 내용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할례받지 않은 상태로 있으면서도 완전한 그리스도인으로 교회에 영입될 수 있다는 위로의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복음<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12-1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13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14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15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16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17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서 주해

12

예수의 계명들을 지킴으로써 그의 사랑 안에 머물게 된다는 내용에 대한 설명이다. , 계명들서로 사랑하라는 하나인 계명으로 요약된다. 이 사랑의 계명은 그것을 지킴으로써 예수의 참된 제자들을 사랑한 모범적 사랑에 근거한다. 따라서 이 사랑의 계명은 9절도 설명한다. 즉 예수를 통해 이미 제자들에게 드러난 사랑에 근거한 계명으로 강조된다.

 

13

친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사랑의 최고 실증이라는 일종의 격언이다. 이 말은 14-15절에 연결되어 예수와 제자들의 관계가 친구관계로 설명된다. 문맥상 예수의 사랑을 가장 값진 친구 사랑으로 시사할 뿐 아니라 목숨까지 바치는 예수의 헌신적 사랑을 모범으로 제시하여 제자들로 하여금 그런 사랑을 실천할 준비를 갖추도록 촉구하는 동기가 된다.

 

14

예수를 본받아 사랑의 계명을 지키면 예수의 친구가 되는 기쁨을 가지게 된다는 뜻이다. , 친구라는 칭호는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가 명하는 사랑의 계명을 지키게 하는 동기가 된다.

 

15

예수와 제자들의 새로운 관계를 시사한다. 예수는 하느님과 자기 앞에서 으로만 여겼던 제자들을 친구로 생각하게 이끌고 동시에 그런 관계를 선사한다.

제자들은 예수가 행한 일에 대해 이미 알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제자들이 예수에게 선택되었을 때 이미 예수의 친구였다는 뜻이다. , 예수는 제자들을 하느님과 자기 자신에 대해 강압적인 주종관계가 아니라 자유롭고 선의에 가득 찬 친구관계로 선택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따라서 이 우정관계의 주도권은 예수에게 있다.

예수는 아버지에게 들은 모든 것을 제자들과의 우정관계 속에서 계시했고 또한 아버지의 사랑도 전달했다는 것이다. 예수의 계시는 제자들을 종이 아니라 친구관계로 머물도록 자유롭게 한다.

 

16

예수의 주도권을 시사하고 동시에 제자들에게 예수와의 우정관계가 선물임을 일깨운다.

제자들의 임무수행을 파견사상의 맥락에서 언급한다. 이 임무수행은 예수에게 무상으로 선택되었다는 의식에서 솟아나고 예수의 부름에 대한 응답이다. “(떠나)가서 열매를 맺는다란 표현은 문맥상 예수 안에 머물러 열매를 맺으라는 말을 회상토록 촉구하는 뜻이다. “그 열매가 남아 있다란 예수 자신과 그의 사랑 안에 머무는 것을 가리킨다. 제자들이 맺은 열매는 사람들 가운데서 사는 그리스도인다운 삶과 하느님의 사랑을 가리킨다.

 

예수와의 결속관계에서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 그 청을 들어주신다는 확신과 약속이다.

, 예수는 제자들에게 “(언제나) 남아 있는 열매를 원하고 제자들의 그런 간청은 아버지께서 들어주신다고 약속한다. 예수의 이름으로 청한다는 것은 제자들이 열매를 맺도록 예수 자신도 함께한다는 것을 뜻한다.

 

17

12절이 거듭 강조된다. 즉 제자들에게 열매를 맺도록 당부한 예수의 훈계 또는 경고가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에서 절정을 이룬다. 예수 안에 머물러야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비유말이 제자들을 친구로서 사랑한 예수의 사랑을 그들도 서로 나누어야 한다는 말로써 구체적으로 설명된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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