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22일 (화)
(녹) 연중 제25주간 화요일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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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 베르뇌 張주교의 순교 (순교일; 3월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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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iuihhh8] 쪽지 캡슐

2021-03-04 ㅣ No.145003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聖 베르뇌 張주교의 순교

                
(순교일; 3월7일)

        

      

 

 


베르뇌

시므온

새남터

1866.3.7

도리

헨리코

새남터

1866.3.7

블리외

루도비코

새남터

1866.3.7

랑페르 브르뜨니에르

유스토

새남터

1866.3.7

남종삼

요한

서소문 밖

1866.3.7

         
     

  

 

 

    

 

 

 

 


 

 


    聖 베르뇌 시므온

   관 련  새남터 순교일1866.3.7



 

 

베르뇌’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장 시므온 주교는

조선교구 제4대 교구장이며 한국명은 장경일(張敬一)이다.
프랑스의 르망 교구 출신인 장 주교는 1837년에 사제가 되었고
동양의 선교 지역인 베트남으로 건너갔다가 2년 동안 옥살이를 치렀다.
그 뒤 만주 요동 지역에서 10여 년 동안 활동하였고,
조선교구 제4대 교구장으로 임명되어 1856년 3월에 서울에 도착하였다.
깊은 신심과 신학을 겸비한 장 주교는
이 땅에서 10년 동안 사목 활동을 하면서 배론에 한국 최초의 신학교를 설립하고
서울에 인쇄소 두 곳을 설립하는 업적을 남겼다.
또한 당뇨병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사목에 힘쓰면서 여러 지역의 교우들을 열심히 돌보았다.
1866년 2월 23일에 체포되어 감옥에서 앞무릎에 곤장 열 대를 맞고도
고통스러운 기색을 조금도 보이지 않았으며,
3월 7일 백 유스토, 서 루도비코, 김 헨리코 신부와 함께 새남터에서 순교하셨다.

 

*주교회의 중앙협의회 자료

 

 

   

    

   ♬♬ 

4

 

 
 
 

 

 

베트남과 만주에서의 13년 동안의 선교활동 후에
잔혹한 박해가 벌어지는 조선에 입국하여
 
배론에 한국 최초의 신학교를 설립하고 서울에 2곳의 인쇄소를 설립하는 등

10년 동안의 선교 발자취를 남기고
새남터 형장에서 선교사 세 분과 함께 참수 순교하신
성 베르뇌 시므온 張敬一주교님이시여
 

한국 교회에 성령의 불꽃이 타오르도록

천상 기도의 축복을 보내 주옵소서!...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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