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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와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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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kimhh1478] 쪽지 캡슐

2020-12-05 ㅣ No.98478

 

 ‘차라리’와 ‘그래도’


후배 하나를 만나 저녁을 먹었습니다. 와인도 따라왔지요. 우리는
“좋은 저녁이야”를 연발하며 분위기 좋게 시작했습니다.
후배가 두 잔의 와인을 마시면서 이야기가 길어지더니
벌떡 일어나고 싶을 정도로 지루하게 엇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시간은 좋은 대화가 핵심입니다. 좋은 시간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그는 모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의 말을 잇는 연결고리 중 ‘차라리’는 여러 차례 한숨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차라리 안 하고 말지!’,
‘차라리 돌아서고 말지!’, ‘차라리 헤어지고 말지!’ 등
인내를 시험하듯 ‘차라리’라는 말은 절 피곤하게 만들었습니다.


밥 먹다가 일어서지도 못하고 저는 최대한의 인내심을 가지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차라리’를 ‘그래도’로 바꿔봐. 네 기분이 변하고,
생각도, 행동도, 지금 이야기도 조금 변화되지 않겠니? 너 힘든 거 알지만
차라리(里)보다 그래도(島)가 좀 경치가 좋을 것 같지 않아?” 후배가
너무 엉뚱했는지 강의하느냐고 대뜸 얼굴을 치켜들다가 이내 고개를 숙입니다.


“언니, 미안해요. 요즘 제가 너무 우울해서요.” 후배가 말하는
‘차라리’를 너무 잘 알고, 너무나 많이 건너온 강이기에 저도 밥 먹다가
신경이 곤두섰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더 많이 건너온 강은 ‘그래도’입니다.
내가 수천 번도 넘은 강이고 또한 누구나 건너오고 건너가고 있는 강입니다.
김승희 시인이 “그래도라는 섬에 살고 싶다”라는 시에서
‘그래도’의 의미를 너무 잘 그렸습니다.


“가장 낮은 곳에/ 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도 사랑의 불을 꺼트리지 않는 사람들….”

저도 늘 ‘~ 때문에’, 그래서 ‘차라리’를 연발하긴 했지만,
결국 제가 생의 가장 빛나는 도시를 찾은 건
‘그래도’라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래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출발점이며 발견입니다.


언제나 희망의 공간입니다. 생은 높이뛰기였고 장애물 넘어서기이며
도전의 이름으로 땅을 넓히는 멀리뛰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신달자, 엘리사벳, 시인) (가톨릭평화신문)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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