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5일 (일)
(녹) 연중 제30주일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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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는 신앙으로는 조금 부족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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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헌모 [kanghmo7] 쪽지 캡슐

2020-10-14 ㅣ No.98109

찬미예수님!

 

뒤늦게 만나 사랑하다
인생을 알고 신앙을 선택한 작가 8인의 가톨릭 입문 이야기


박완서 - 나는 왜 가톨릭을 믿게 되었나
아들이고 딸이고 가리지 않고 우리 집에 태어난 새로운 생명을 그렇게 기쁘고 극진하게 모시는 시어머님은 지금 생각해도 특별한 분이셨다.


유교는 신앙으로는 조금 부족해서

나는 개성에서 이십여 리 떨어진 산골에서 태어났다. 가난하 지만 학문을 즐기고, 체면을 중시하는 선비 집안이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지만 할아버지의 각별한 사랑을 받아 부성애에 대한 결 핍감은 거의 모르고 자랐다. 아들 셋을 다 장가들인 후에도 한집안 에 거느리고 사셨던 할아버지가 가족을 통솔하는 통치 이념은 철저 하게 유교적이었다. 측은지심惻隱之心과 수오지심羞惡之心을 사람 다움의 근본으로 늘 강조하신 거나, 네가 싫은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마라, 잔칫집이나 친척집에 손님으로 가서 윗자리에 앉지 마라. 일 꾼이 게으르게 굴었다고 품삯 깎지 마라 등등 집안에서 흔히 듣던 할아버지의 훈계와 뜻을 같이하는 구절이 성경에서도 제일 먼저 마 음에 와 닿았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도 우리 집 가풍 과 비슷한 것 같았다. 누구 집에서나 아이들에게 나쁜 짓을 멀리하 고 착한 일을 하도록 가르치는 건 유아 교육의 기본일 것이다. 엄한 할아버지 모시는 우리 집 분위기도 물론 그랬지만 덮어놓고 야단치 고 훈계하는 게 아니라 재미있고 단순한 이야기를 통해 가르치셨다. 어려서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는 건 내 유년기의 가장 큰 축복 이었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이 단순하고 알아듣기 쉬운 비유로 말씀 하신 게 마음에 들었다. 루카 복음서에서 마르타와 마리아의 얘기 를 읽으면서는 예수님을 우리 할아버지로 착각할 정도였다. 할아버 지는 그 시절의 유학자로는 드물게 아들 딸, 손자와 손녀를 차별하 지 않으셨다. 특히 배우고 싶어 하면 손자든 손녀든 차별하지 않고 기특해하시고 밀어주셨다. 손녀 중에서는 내가 유일하게 사랑에서 나보다 큰 동네 머슴애들과 함께 천자문을 익혔을 뿐 아니라 넉넉 지도 않은 집안 형편에 걸맞지 않게 초등학교부터 서울서 다닐 수 있었다. 그때의 시대상이나 우리 집 형편으로 봐서 어떻게 그럴 수 가 있었을까. 그때는 특별히 고마운 줄 모르다가 철들면서 내가 누 린 특혜를 신기해하는 느낌은, 신약 성경을 읽으면서 그 시대에 예 수님은 여성을 어쩌면 이렇게 차별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신기해 하는 마음과도 비슷하다. 그렇다고 우리 할아버지가 성경을 읽으신 건 아닐 것이다. 평생 맹자 왈, 공자 왈밖에 모르시던 분이다. 그러 니까 그런 공통점은 고등 종교끼리의 공통점이라고 생각한다. 사랑 과 인仁이 다른 것이 아니듯이. 사람 노릇의 근본을 설한 걸로 보면 유교로도 부족함이 없는데 왜 그리스도를 따로 믿어야 했는지, 종교宗敎를 문자 그대로 으뜸 가는 가르침이라고 생각할 때 유교로도 부족함이 없었지만 신앙으 로서는 좀 부족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유교에는 고통 중에 기도하 고 매달리고 의논할 수 있는 초월적인 존재가 없다. 아무리 악을 멀 리하고 선을 행하기에 힘쓰는 도덕적인 인간이라도 이성으로 해결 할 수 없는, 매달리고 기도하고 싶은 때가 있는 법이다. 특히 죽음 의 문제에 있어서 그러했다. 내가 죽을 때도 물론 그러하겠지만 가 족이나 친지가 죽어 갈 때도 사람은 누구나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 라는 희망을 갖고 싶어 한다. 안 죽게 해 달라고 매달릴 때도 절대 자를 찾게 되지만, 마침내는 죽음의 손에 목숨을 내맡길 때도 이 세 상에 내 뜻으로 온 것이 아니듯이 거두어 가는 손길을 느끼고 그 손 길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고 싶어 한다. 죽을 때 우아하게 죽고 싶어서, 행복할 때 감사하고, 불행할 때 기도하고 싶어서, 자신의 존재가 불안하게 흔들릴 때 의지하고 싶어서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 다. 유교적인 집안이라고 기도를 안 하는 건 아니다. 6 - 25때 북으로 끌려간 오빠의 생사를 모를 때 엄마는 새벽이고, 밤이고, 끼니때고 아무 데나 대고 빌고 또 빌었다. 부뚜막에 오빠의 밥그릇에다 밥을 담아 놓고도 빌었고, 장독대에 정안수를 떠 놓고도 빌었고, 하늘 보 고 북두칠성한테도 빌었다. 까치가 짖으면 고마워서 가치한테도 두 손을 모았고, 까마귀가 짖으면 까마귀한테 삿대질을 하며 저주를 퍼 부었다. 체면을 중시하던 분이 이성을 잃으니 미친 사람 같아서 집 안 식구들을 불안하게 했다. 전쟁이 끝나고 엄마의 모든 정성은 무 위로 돌아갔다. 엄마는 그 후 절에 다니면서 마음을 달래시다가, 말 년에는 독실한 불교 신자가 되셨다. 기도는 사람의 정신을 돌게 하 는 게 아니라 바로잡아 주는 것이고, 바로잡는다는 건 중심을 잡아 주는 일이 아닐까. 종교의 다름은 그 중심에 누구를 세우냐의 차이 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경험한 기도의 묘미는 잗다란 기도는 잘 들어주시는 데 큰 기도는 잘 안 들어주신다는 것이다. 큰 기도는 과욕이나 허욕 아니면 신의 영역을 넘보는 기도였으니 안 들어주시 는 게 당연하고, 잗다란 기도는 잔 근심에서 나온 것이니 그런 잗다 란 근심은 기도하는 과정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게 되니까 들어주실 수밖에. 기도의 은총은 이루어지고 안 이루어지고에 있는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니까, 기 도한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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