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완성된 하느님 구원의 은총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지금 우리는 사순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사순 시기를 지내는 진정한 목적은 다름 아닌 “회개”입니다. 회개란 단순히 죄를 뉘우치는 것만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하느님께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사순 시기에 기도와 자선, 금식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이런 외적인 행동에는 마음의 회개를 통해서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 개개인과 사회와 국가가 회개하고, 하느님의 뜻대로 살고 있는지를 깊이 각성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도 진정한 회개를 통해 하느님의 은총으로 늘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회 역시 지상의 나그네 길에 있는 나약하고 회개할 것이 많은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올해의 사순 시기 주제로 “누구든지 나를 받아들이듯이 이런 어린이 하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곧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다”(마태 18,5)라는 말씀을 택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어린이들을 당신 제자가 되기를 바라는 모든 사람의 본보기로 내세우십니다. 어린이는 “형제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고통받는 사람, 가난한 사람, 병자 등 나약하고 힘없는 이들”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의 도움과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교황께서는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되는 것’과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우리 시대의 당신 제자들에게 되풀이하여 강조하십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세계는 어떠합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은 사랑과 평화보다는 무시무시한 전쟁과 테러, 폭력의 위협이 줄지 않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이들이 생명마저도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국가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 다른 나라의 생존권마저 위협하고 있는 일이 허다하게 일어납니다. 현대인은 점점 더 무신론적인 세속주의와 물질만능주의, 극도의 개인주의와 쾌락주의로 빠져들고 있는 것도 무서운 현상입니다.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생태학적 위기와 인간 복제 등 생명과 윤리를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떠합니까? 우리나라는 과거에 비해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누림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으로는 점점 피폐해 가고 있습니다. 빈익빈부익부의 현상이 심화되고, 집단 이기주의와 물질주의, 개인주의가 극성을 부리고 있습니다. 전통적 가치규범의 권위는 상실되고 특히 이혼의 급증으로 사회의 기본단위인 가정공동체마저 해체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외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힘없이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약자가 너무 많이 존재합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지도자, 정치가들은 사분오열되어 방향을 잃고 표류하고 있습니다. 경제는 점점 어려워지고 일자리를 찾지 못한 서민들의 삶은 불안과 절망의 늪으로 빠져듭니다.
과연 우리는 이러한 위기를 잘 극복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무엇보다 먼저 정치가를 비롯한 지도자들이 회개해야 합니다. 당리당략과 이기심보다는 국민의 공동이익이 무엇인지를 잘 헤아리는 진정한 지도자가 되어 주기를 바랍니다. 정치의 안정과 발전은 국민의 행복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올 봄의 총선은 지역갈등을 넘어서 국민을 위하는 봉사자가 많이 뽑히고 부정한 돈이 없는 깨끗한 선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신앙인도 회개해야 합니다. 신자들이 먼저 이 사회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잘 기억하며 사회의 부조리와 악에 대한 책임을 통감해야 합니다. 하느님과 함께하는 교회는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이 거룩한 사순 시기에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며 모든 인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의 전구를 통하여 여러분 모두에게 하느님의 은총이 가득 내리기를 기원합니다.
2004년 사순 시기를 맞이하며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정 진 석 대주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