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9일 (목)
(백) 부활 제6주간 목요일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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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의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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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형 [largo7a] 쪽지 캡슐

2001-07-26 ㅣ No.4205

무언(無言)의 부탁

 

1997년 1월 15일 밤새 폭설이 내렸다.

뉴욕기상청 발표에 의하면 거의 1미터의 눈이 뉴욕의 시내를 온통 백색으로 물들였다. 거의 1세기만에 큰 눈이 뉴욕시내를 침묵으로 잠재우고,

허리께 까지 올라오는 적설량은 뉴욕의 모든 교통기능을 마비시켜 버렸다.

사람의 움직임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백색의 눈 덮인 도로를 헤치며 30대 후반의 남자가 힘겹게 걸어가고 있었다.

그 젊은이는 뉴욕 시립병원정문을 지나, 심장내과 입원병동의 입원실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는   엘리베이터의 7층 버튼을 눌렀다.

간밤에 내린 폭설로 인한 교통두절 때문인지 평소와는 달리 외래환자들은 보이지 않고,  차트와 주사기를 든 간호사들이 병동의 복도를 오가고 있었다.

그는 7층 1004호 실의 문을 노크하였다.

병실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다시 문을 노크하였다.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그는 병실문의 손잡이를 조용히 돌리며 문을 열자, 산소호흡기의 소리가 병실을 채우고 있었다.

병상에는 의식을 잃은 늙은 여인이 산소호흡기에 마지막 생명을 의지하고 있었다.

이 늙은 여인의 이름은 "안나 스트러커스" 이며, 약  1 주일 전 심장마비로 뉴욕시립병원에 입원하였다. 그녀의 입원사실이 뉴욕타임스신문  사회면에 보도된 이후 그녀의 현역 변호사 시절의 동료였거나 후배 법조인들, 그리고 평소 가까운 친지들은 입원한 그녀의 상태를 염려하며, 그녀를 한 번이라도 만나보고자 병원을 방문하였으나, 담당의사의 지시에 의하여 지금까지 면회는 금지되고 있었다.

그녀는 독신으로 오로지 금융전문 변호사로서 평생을 살아왔다.

때문에 그녀에겐 자식이나 가까운 혈육이 없었다.  

젊은 시절 그녀는 정말 아름다웠다. 맑고 푸른 눈동자를 지닌 그녀의 미모는 아름다움 그 이상이었다. 그리고 하바드 대학 법대 출신의 그녀는 금융계와 상류사회에서 잘 알려진 일급 변호사였다.

그녀가 수임한 사건의 승률은 거의 90%에 육박하는 신기록을 수립하였다.

그녀의 단골 고객은 소위 미국 월스트리트 가의 큰 손 들이었으며, 다국적 기업 내지, 미국 상위 랭킹의 기업군(企業群) 들이었다.

그녀는  성공한 변호사의 어떤 전설적인 존재였다.

상식선에서 생각하더라도 과거 그녀가 수임했던 사건의 수임료(受任料)와 승소하였을 때 받았던 별도의 사례비를 생각하면, 그녀는 거액의 돈을 은행의 저축계좌에 넣어 두었거나, 재산을 모았을 것이 분명하였다.

 

엄청난 눈이 뉴욕시내를 잠재운 날, 그 청년은 운 좋게도  간호원이 자리를 비운 사이 그녀의 병실에 들어가 그녀의 병상을 지키고 있었다.

그 청년의 이름은 "안토니 윌리암스"이며, 뉴욕타임스의 경제부 기자였다.

그 청년이 변호사 "스트러커스"에게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뉴욕의 저소득층이 주로 이용하는 뉴욕시립병원에 그 유명한 "스트러커스" 변호사가 심장마비로 입원하고 있다는 사회면 기사를 읽었기 때문이었다.

부와 명예를 공유하고 있을 변호사 "스트러커스" 여사가 생명이 위독한 상태에서 좋은 병원을 선택하여야함에도 불구하고, 시립병원에 입원하였다니,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보도 내용이었다.

"안토니 윌리암스" 기자의 생각이 그기에 미치자, 그녀의 뒷조사를 해보고 싶은 기자의 근성이 발동하였다.

그는 그녀에 관한 자료를 얻기 위하여  뉴욕타임스의 자료실과 그가 가지고 있는 정보원을 풀 가동하였다.  뉴욕 시내의 맨하탄에 있는 원 베드 룸 아파트가 확인할 수 있는 그녀 소유의 유일한 부동산이었다.

그녀가 평생을 모은 돈의 액수와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가 국세청(IRS) 뉴욕시 지부의  출입기자였을  당시 인간적 관계를 쌓았던   국장에게 특별히 부탁하여 그녀의 납세파일을 제공받았다.

그녀가 번 돈은 천문학적인 금액이었다.

그녀의 소득과 국세청 1040(개인소득신고)기록 사이에는  하나의 하자도 발견할 수 없었다.

국세청 세무보고 자료에는 그녀가 무명으로 기부한 양노원, 대학교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등이 기록되어 있었다. 기부한 액수가 큰 만큼 면세금액도 작지 않았고, 그 혜택마저도 모두 양노원과 대학교에 무명으로 기부한 기록이 적혀 있었다. 그녀는 최소한의 생계비와 의료비 그리고 활동비를 제외한 모든 개인소득을 사회에 고스란히 환원시켰고, 그 증빙자료가 오직 국세청 파일에만 존재하고 있었다.

그녀의 선행(善行)은 오로지 국세청 세무보고서에만 기록되어 있을 뿐, 이 사회의 누구도 모르게 비밀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그도 그녀의 대학 장학금 수혜자 150명중의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녀가 무명으로 기부한 장학금으로 공부한 150명의 장학생들은 현재 미국을 이끌고 있는 학자, 의사, 기자, 정치인 등  각계 각층의 인재들이었다.

그는 이 기사를 쓰고 싶었다. 그녀의 도움을 받았던 양노원과 모든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스트러커스 변호사의 행적 내용을 보아도 보도할 가치가 충분히 있고, 또 특종 감이었다.

 

오직 산소호흡기 소음만이 고요한 병실을 채우고 있었다.

"윌리암스" 기자는 의식불명으로 잠자듯 평온한 표정으로 누워있는 그녀의 모습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감긴 눈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지고 있음을 느꼈다.

무의식 상태의 그녀가 윌리암스 기자에게 무엇인가 이야기하는 것만 같았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그에게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이해할 것만 같았다.

그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무언(無言)의 약속을 하였다.

"스트러커스 여사님!

여사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여사님이 평생을 남모르게 행하신 착한 일들, 모두 그대로 하느님께 가지고 가십시오."

그는 밤새 정리한 기사의 원고를 상의에서 끄내 한 장 한 장 찢어 버렸다.

병실을 나서면서 "윌리암스" 기자는 "스트러커스" 여사님이 카톨릭 신자라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그의 발걸음은 성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가 그녀의 착한 영혼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오직 하느님께 드려야 할 기도뿐이었다 .

그리고 그녀의  영혼을 위한 신부님의 종부성사를 생각하고 있었다.

밝은 햇살이 하얀 눈 위에서 눈부시게 부숴지며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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