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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성전 파괴 (요한2: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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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21-03-07 ㅣ No.145080

2021. 3. 78. 사순제3주일 복음묵상글

공동번역성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전 파괴

(요한2:12-22)

12 이 일이 있은 뒤에 예수께서는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파르나움에 내려 가셨으나 거기에 여러 날 머물러 계시지는 않았다. 13 유다인들의 과월절이 가까와지자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 가셨다. 14 그리고 성전 뜰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장사꾼들과 환금상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밧줄로 채찍을 만들어 양과 소를 모두 쫓아내시고 환금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며 그 상을 둘러 엎으셨다. 16 그리고 비둘기 장수들에게 '이것들을 거두어 가라다시는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하고 꾸짖으셨다. 17 이 광경을 본 제자들의 머리에는 '하느님이시여하느님의 집을 아끼는 내 열정이 나를 불사르리이다.' 하신 성서의 말씀이 떠올랐다. 18 그 때에 유다인들이 나서서 '당신이 이런 일을 하는데당신에게 이럴 권한이 있음을 증명해 보시오도대체 무슨 기적을 보여 주겠소?' 하고 예수께 대들었다. 19 예수께서는 이 성전을 허물어라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하고 대답하셨다. 20 그들이 예수께 '이 성전을 짓는 데 사십육 년이나 걸렸는데그래 당신은 그것을 사흘이면 다시 세우겠단 말이오?' 하고 또 대들었다. 21 그런데 예수께서 성전이라 하신 것은 당신의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22 제자들은 예수께서 죽었다가 부활하신 뒤에야 이 말씀을 생각하고 비로소 성서의 말씀과 예수의 말씀을 믿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이 내용을 가리켜 예수님의 성전 정화혹은 성전 청소성전 청결 사건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있고 성경조차도 이 문단의 소제목을 예수님의 성전정화라고 했는데 정화나 청결’ ‘청소라는 말은 깨끗이 소제해서 다시 쓰겠다는 의도를 포함하고 있는 단어죠그 문단에 소제목을 붙인다면 저는 예수님의 성전 소란혹은 성전 파괴라고 붙이겠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는 비어버린 돌 항아리가 상징하는 것처럼 형식주의에 빠져버린 생명력 없는 유대교와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완성되는 참된 혼인 잔치가 극명하게 대조되는 사건이었습니다형식주의에 빠져 버린 유대교는 마치 포도주가 떨어진 잔치집과 같다는 것이지요그러나 그 포도주가 떨어진 혼인 잔치를 기쁨이 가득한 어린양의 혼인잔치로 회복시키시기 위해 주님께서 오신 것입니다그리고 그 복된 어린양의 혼인잔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에 의해 완성이 된다고 하는 은혜의 복음이 그 가나의 혼인잔치 이야기에 담겨있는 메시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소란케 하신 사건도 동일한 내용인 것입니다요한복음 2장부터 12장까지의 표적의 책 부분은 표적-오해-강해의 순서로 기록이 되어 있지요그러니까 이 성전 파괴의 사건과 3장의 니고데모 사건그리고 4장의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가 모두 가나의 혼인잔치를 오해하고 있는 자들에게 그 진의를 친절하고 자세하게 강해하는 구조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그 관점에서 이 성전 파괴의 이야기를 풀어보자고요.


유다인들은 닛산월그러니까 일반 달력으로 4월에일주일간 과월절을 지켰습니다과월절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당시 어린양의 피를 인방과 문설주에 바름으로 죽음이 넘어가 버렸던 그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그 어린양이 죄인들을 위해 대신 죽으실 예수 그리스도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지요그 과월절의 어린양으로 예표 되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시나이산에서 이스라엘의 제사 제물로 계속 예표가 되었고 그 제사 제물이 바쳐지는 곳이 성막이요성전인 것입니다유대인들은 속죄는 하느님의 전적인 은혜인 주님의 피에 의해 주어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행하는 종교행위와 제사와 제물과 율법이 그들의 죄를 속하는 것이라고 오해를 하고 있었습니다바로 그 오해에 대한 강해로 이 성전 소란의 사건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 성전 소란의 사건을 머릿속에 그려보세요그 유대인들의 과월절과 과월절 어린양으로 바쳐지는 제물과 그 제물이 바쳐지는 곳인 성전과 진짜 제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한 번에 만나는 것이 바로 이 성전 파괴의 사건인 것입니다쉬운 말로 모형과 실체가 함께 만나 모형이 파괴되고 실체가 그 자리를 대체하는 사건이 바로 이 이야기입니다.

20세 이상의 이스라엘 남자들은 매년 3번 절기 때마다 의무적으로 예루살렘 순례를 떠나야 했습니다그 것은 선민 이스라엘의 명문화된 규례였습니다과월절에는 그 13만명의 순례자들이 25만 마리의 양을 잡아 성전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그 때 잡혀 죽게 될 양들이 성안으로 들어오는 문이 양의 문이었습니다. 5장에 베지타 연못이 양문 곁에 있는 연못이었지요그 양문이 바로 제물로 잡혀 죽을 양들이 성안으로 들어오던 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 온 그 순례객들은 성전에 들어갈 때에 속전(贖錢)’이라 불리는 聖殿稅를 내야 했습니다성전세는 유대화폐로 반세겔 이었는데 반 세겔은 당시 노동자 이틀 치 임금에 해당하는 돈이었습니다그런데 당시는 로마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뿐 아니라 식민지 유대 땅에 사는 유대인들도 모두 로마의 화폐나 헬라의 화폐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로마나 헬라의 화폐에는 황제의 형상이 새겨져 있었습니다그래서 유대교의 성전에서는 그 돈을 받지 않았고 성전세는 오직 세겔로만 받았습니다그래서 과월절을 지키러 온 사람들은 모두 의무적으로 자신들의 돈을 세겔로 바꿔야 했습니다그래서 절기 때가 되면 성전 마당과 부근 올리브산 일대에 환전상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환전상들을 관장하는 기관이 바로 산헤드린 공의회였습니다그래서 산헤드린 공의회는 절기 때마다 환전을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반 세겔을 바꿔 주는데 반 세겔의 50%를 수수료로 받았다고 하니까 상상이 가지요?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에 순례를 온 유대교인들은 성전에서 제사를 지내야 했습니다그 때는 흠 없는 제물을 바쳐야 했습니다그런데 순례를 오는 사람들이 아무리 자기 집에서 실한 가축을 끌고 와도 예루살렘에 도착하면 살이 빠지고 흠도 나고 해서 不合格 판정을 받기가 일쑤였습니다그래서 성전 부근 올리브산 일대에 네 곳의 가축 시장이 있었고 성전의 이방인의 뜰에까지 가축을 파는 가축상들로 붐볐다고 합니다.

그 가축상들을 주관하는 사람이 대 제사장이었습니다그래서 자기가 관장하는 가축 시장의 제물 이 아니면 수시로 불합격 판정을 내리는 바람에 멀리서 오는 사람들이 아예 집에서 가축을 가져올 생각을 못하도록 만들어 버렸다는 것입니다대 제사장의 무리들은 거기서도 엄청난 재물을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성경이 그러한 聖殿을 등장시키며 역설하고 있는 것은 하느님을 섬긴다는 명목 하에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성전을 이윤 추구의 장소로 만들어 버린 죄인들을 총체적으로 상징하기 위함인 것입니다바로 그 현장에 참 제물이신 주님이 들어가신 것입니다그리고는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셔서 그들을 다 쫓아내셨습니다모형이 물러가고 실체가 들어서는 순간인 것입니다.

산헤드린 공의회의 관청이 바로 그 성전 마당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유대종교 지도자들이 그 소란을 모를리없었을 것입니다아니나 다를까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께 항의를 했습니다본문 18절을 보면 유대인들은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은 우리가 기다리는 메시아밖에 없다네가 메시아가 맞다면 우리가 놀랄만한 표적을 행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표적을 한 번 보여 보아라.’ 라고 대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면 대단한 기적을 일으키며 등장할 것이라는 것을 철썩 같이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그렇다면 유대인들이 정말 예수님이 메시아일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고 그렇게 요구한 것일까요아니었습니다.

본문 18절의 유대인들이 나서서는 헬라어 아페크리떼산과 에이폰이라는 두 단어를 번역한 것입니다그 두 동사는 어떤 요구나 항변을 강력하게 드러내는 관용적 표현으로 대들었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1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라는 구절이 있지요거기서 쓰인 단어가 똑같이 아페크리떼산과 에이폰입니다그러니까 예수님께서도 그들에게 강력하게 대드신 것입니다그 불꽃 튀는 살벌한 현장이 상상이 가십니까?

오직 자기들의 이윤추구만을 목적으로한형식뿐인 종교 행위에 대해 질책하시는 주님의 모습과 주님의 그 지적을 못마땅해 하며 그 분을 죽이려고 이를 악무는 그 현장의 모습 속에서 오늘날 교회의 모습이 보이는 것은 비단 저만의 과민반응일까요?


주님께서는 그들의 요구를 들으시고는 그들에게 외치셨습니다이 성전을 헐어라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울께라고 말씀하십니다. 19절에서 쓰인 성전이라는 단어는 나오스입니다그 단어는 14절에 나오는 성전 히에론과 다른 단어입니다. 14절에 쓰인 성전‘’히에론은 성전 전체의 외형을 강조하는 단어입니다당시 사람들은 성전하면 성전과 성전 뜰그리고 그 부근의 올리브산 일대까지를 포함해서 성전이라 불렀습니다그 때 쓰이는 단어가 히에론입니다반면에 19절의 성전’ ‘나오스는 거룩한 성전 건물 자체만을 가리킬 때 쓰는 단어입니다.

그 단어는 요한묵시록 21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단어로 쓰였습니다그리고 고린도 전서 3장에서는 성령이 계시는 성도들을 가리킬 때 나오스라는 단어를 썼습니다그러니까 주님은 지금 건물로서의 성전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21절의 요한의 부연 설명처럼 성전이신 자신의 몸을 헐어라고 하신 것입니다거기서 헐어라라고 번역이 된 단어는 뤼사테라는 단어인데 파괴하다라는 뜻의 명령형 동사입니다그러니까 그 말은 너희가 나를 파괴하라라는 뜻입니다.

그리고는 이어서 내가 사흘 만에 세우겠다라고 대답을 하십니다거기서 쓰인 세우다’‘에게로는 다시 살리다라는 뜻의 미래 직설법 능동태 동사입니다.스스로 다시 살아나리라라는 뜻인 것입니다그러니까 주님은 너희가 나를 파괴하면 내가 사흘 만에 부활하리라‘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표적을 보여 달라는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나를 파괴 하라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리라라고 대답을 하신 것입니다.


이와 흡사 한 상황을 마태복음에서도 보았습니다.

(마태12:38-40) 38 그 때에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 몇이 예수께 '선생님우리에게 기적을 보여 주셨으면 합니다하고 말하자 39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악하고 절개 없는 이 세대가 기적을 요구하지만 예언자 요나의 기적밖에는 따로 보여 줄 것이 없다. 40 요나가 큰 바다 괴물의 뱃속에서 삼 주야를 지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도 땅 속에서 삼 주야를 보낼 것이다.

여기 쓰인 단어와 표현 방법만 다르지 똑같은 말이지요그러니까 우리는 여기서도 주님은 이 땅에 기적을 일으키러 오신 분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죄인들에게 닫힌 하늘을 열기 위해 오신 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주님께서 일으키신 모든 표적들은 전부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로 결론지어지는 것이지요그러나 우매한 죄인들은 주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주님은 이일로 인해 십자가에 달리시는 날까지 유대인들의 조롱을 받으십니다.

(마르15:29-30) 29 지나가던 사람들이 머리를 흔들며 '하하너는 성전을 헐고 사흘 안에 다시 짓는다더니 30 십자가에서 내려 와 네 목숨이나 건져 보아라.' 하며 모욕하였다.

그 십자가의 자리가 바로 죄인들에 의해 성전이 되신 주님이 헐리는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죄인들은 자기들의 영원한 생명을 위해 헐리는 주님을 조롱했던 것입니다.

정리를 하자면 지금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소란을 일으키시는 사건은 형식적으로 하느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자신들의 유익만을 챙기려는 유대교로 대표된 죄인들의 행태 자체를 파괴하시는 사건인 것입니다그리고 그러한 성전의 파괴라는 모형을 통해 그 더럽고 형식적인 성전이 되셔서 죽으셔야 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암시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건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르코복음으로 가서 그 곳에 기록되어 있는 또 다른 성전 파괴의 이야기를 보면 더욱 더 확실해 집니다.


(마르11:12-25) 12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아에서 나올 때에 예수께서는 시장하시던 참에 13 멀리서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시 그 나무에 열매가 있나 하여 가까이 가 보셨으나 잎사귀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무화과 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4 예수께서는 그 나무를 향하여 '이제부터 너는 영원히 열매를 맺지 못하여 아무도 너에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할 것이다하고 저주하셨다제자들도 이 말씀을 들었다. 15 그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한 뒤예수께서는 성전 뜰 안으로 들어 가 거기에서 사고팔고 하는 사람들을 쫓아내시며 환전상들의 탁자와 비둘기 장수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다. 16 또 물건들을 나르느라고 성전 뜰을 질러 다니는 것도 금하셨다. 17 그리고 그들을 가르치시며 '성서에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그런데 너희는 이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구나!' 하고 나무라셨다. 18 이 말씀을 듣고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예수를 없애 버리자고 모의하였다그들은 모든 군중이 예수의 가르치심에 감탄하는 것을 보고 예수를 두려워하였던 것이다. 19 저녁때 가 되자 예수와 제자들은 성 밖으로 나갔다. 20 이른 아침예수의 일행은 그 무화과나무 곁을 지나다가 그 나무가 뿌리째 말라 있는 것을 보았다. 21 베드로가 문득 생각이 나서 '선생님저것 좀 보십시오선생님께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라 버렸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2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느님을 믿어라. 23 나는 분명히 말한다누구든지 마음에 의심을 품지 않고 자기가 말한 대로 되리라고 믿기만 하면 이 산더러 '번쩍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하더라도 그대로 될 것이다. 24 그러므로 내 말을 잘 들어 두어라너희가 기도하며 구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았다고 믿기만 하면 그대로 다 될 것이다. 25 너희가 일어서서 기도할 때에 어떤 사람과 서로 등진 일이 생각나거든 그를 용서하여라그래야만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실 것이다.'

지금 요한복음의 성전 파괴의 이야기를 설명하기 위해 마르코복음의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그 성전 파괴의 이야기 앞뒤로 붙어있는 무화과나무의 저주까지 함께 인용을 했습니다그 이유는 히브리 문학의 특징인 샌드위치 구조 속에서 성전 파괴를 설명해 드리기 위함입니다히브리의 문학 기법 중에 하나인 샌드위치 기법이라는 것은 중요한 가운데 것을 설명하기 위해 양쪽에 빵을 대듯이 부연 설명을 다는 문학 기법을 말합니다그러니까 성전 파괴의 양쪽에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는 내용이 들어 있다는 것은 성전 파괴와 무화과나무의 저주가 같은 내용을 다른 언어로 설명하고 있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화과나무의 저주부터 시작해서 예수님의 성전 파괴 사건을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게 되는 공생활 마지막 주간에 주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던 중에 잎파리가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발견하십니다주님은 마침 시장하셨습니다그래서 그 무화과나무 앞에 가셔서 무화과 열매를 찾으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무화과열매는 우리나라 사람들로 따지자면 감자와 고구마 같은 부식이었습니다그래서 그 무화과를 식량으로 말려서도 먹고 날로도 먹곤 했습니다그런데 그 무화과나무에는 잎 파리만 무성했지 열매가 없었습니다주님은 이 내 그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셔서 말라비틀어지게 만드십니다.

재미있는 것은 성경이 그때는 무화과의 때가 아니었다.‘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는 것입니다무화과의 철이 아닌데 무화과나무 앞에가서 무화과를 찾는 사람도 이상하거니와 열매가 없다고 그 나무를 저주해서 말라죽게 만드는 사람은 성질이 얼마나 못된 사람입니까?

예수님은 그 때가 무화과의 때가 아닌 것을 아셨습니다정상적인 유대인 중에 과월절이 가까운 닛산월에 무화과열매를 찾는 바보 같은 사람은 없습니다그러면 주님은 왜 그 무화과나무 앞으로 가셨는가주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그들이 알고 있는 구약의 말씀들을 상기시키시며 은혜의 복음을 다시 한번 그림으로 명료하게 그려서 보여주시고자 했던 것입니다어떻게 그 것이 은혜를 설명하는 복음의 이야기가 되는지 보자고요.


(호세9:10) 10 이스라엘은 내가 처음 만났을 때 사막에 열린 포도송이 같더니너희 조상들은 처음 내 눈에 띄었을 때 맏물 무화과 같더니바알브올에 와서 징그러운 것에게 몸을 바치고 말았다우상을 좋아하다 우상처럼 추한 꼴이 되고 말았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시며 그들을 무화과나무 첫 열매로 보셨다고 합니다그 말은 하느님이 이스라엘에게서 무화과나무 열매와 같은 열매를 원하셨다는 말인 것입니다그러나 이스라엘은 복음서에 나오는 포도원 지기의 비유에서처럼 하느님께 드릴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이스라엘은 열심히 율법을 지켰고 열심히 제사를 지냈고 최선을 다해 선행을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그런데 하느님은 그 이스라엘을 가리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사람들에게 원하시는 열매라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우리는 여기서 주님이 시장해 하시면서 구하셨던 그 열매가 단순히 이스라엘이 행하는 종교 행위나 율법의 준수가 아니었음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하느님은 인간들이 뿌리고 가는 짐승의 피나 구수하게 태우고 가는 짐승의 기름을 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하느님은 인간의 종교행위나 율법의 준수를 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하느님의 형상을 드러내며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인정하는 예배의 삶을 살아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영어로 예배가 worship입니다그 단어는 가치 있다라는 ’worth'와 상태를 나타내는 ‘ship'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니까 예배는 자기가 앉아있던 가치 있는 자리에서 내려와 하느님을 가치 있는 그 자리에 앉혀드리고 그 분께 순종하며 의뢰하는 삶 전체를 禮拜라고 하는 것입니다그러한 자들의 삶 속에서는 자연스럽게 하느님의 성품인 성령의 열매가 맺히게 되는 것입니다.

(갈라5:22-23) 22 성령께서 맺어 주시는 열매는 사랑기쁨평화인내친절선행진실, 23 온유그리고 절제입니다이것을 금하는 법은 없습니다.


예배는 어떤 지정된 시간과 지정된 공간에 모여 잠깐 드리고 마는 것이 아니라 신자의 삶 전체가 바로 예배여야 하는 것입니다로마서 12장 1절에 보면 너희의 몸을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려라이것이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여기에서 이 육신을 갖고 살아내야 하는 우리의 삶을 말하는 것이고 산제사가 바로 예배를 말하는 것입니다우리는 우리의 모든 삶을 예배’ ‘worship'으로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하느님은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그 것을 요구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형식적으로 제사를 드리고 예배를 드리고 도덕적인 삶을 사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모든 것들을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그래서 주님은 모든 죄인들의 삶을 총칭해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로 비유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러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는 저주받아 죽어 마땅하다는 것을 무화과나무의 저주에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죽이시지 않고 자신이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가 되셔서 저주받아 죽으시고 (십자가정작 죽어야 할 열매 없는 나무들을 풍성한 열매를 맺는 나무들로 만드실 것임을 암시하시는 것이 바로 무화과나무의 저주 사건입니다.


(신명21:22-23) 22 죽을죄를 지은 사람을 처형하고는 나무에 달아 효시할 경우가 있다. 23 이렇게 나무에 달린 시체는 하느님께 저주를 받은 것이니그 시체를 나무에 단 채 밤을 보내지 말고 그 날로 묻어라그렇게 두어서 너희 하느님 야훼께 유산으로 받은 너희 땅을 더럽히면 안 된다.

이렇게 주님께서 저주받은 무화과나무가 되셔서 죽으심으로 어떤 결과가 나타났는지 마르코복음 11장 21절로 가보겠습니다.


(마르11:21-24) 21 베드로가 문득 생각이 나서 '선생님저것 좀 보십시오선생님께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라 버렸습니다하고 말하였다. 22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느님을 믿어라. 23 나는 분명히 말한다누구든지 마음에 의심을 품지 않고 자기가 말한 대로 되리라고 믿기만 하면 이 산더러 '번쩍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하더라도 그대로 될 것이다. 24 그러므로 내 말을 잘 들어 두어라너희가 기도하며 구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았다고 믿기만 하면 그대로 다 될 것이다열매를 구하시던 참열매이신시장하신 주님은 아사(餓死)해서 죽으시고 저주받아 죽어야 할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들이 이제 무엇이든지 구하면 풍성하게 받게 되는 열매 맺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마실 물이 없어 목말라 죽어야 하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생수를 퍼 주시고 자신은 내가 목마르다라고 외치시며 목마른 자가 되셔서 죽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와 똑같은 이야기인 것입니다바오로는 그 이야기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고후8:9) 9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은혜로우신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그분은 부요하셨지만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습니다그분이 가난해지심으로써 여러분은 오히려 부요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은혜의 복음이 하느님과 죄인들 사이에 놓여 있던 율법과 그 아래에서 자행되던 죄들을 바다로 던져 버리신 것입니다그래서 23절을 보면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라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라는 구절이 있는 것입니다거기서 이산이라는 것이 어떤 산입니까주님께서 성전으로 올라가는 길에 하시는 말씀이니까 그 산은 성전이 있는 시온산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모두 내 쫓으신 후에 그 일이 바로 자신이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가 되셔서 저주받아 죽으실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저주의 율법과 죄악들이 바다로 빠지게 될 것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그래서 이제 하느님과 죄인들을 가로막고 있던 산이 없어지고 죄인들이 의인들이 되어 열린 하늘로 올라가게 되었음을 가리키는 것이 바로 성전 파괴의 사건입니다.

다른 말로 예수님은 형식과 위선으로 가득 찬 옛 성전이 되셔서 파괴가 되시고 다시 새 성전으로 부활하셔서 이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진짜 열매를 맺는 참 성전이 되실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성전 파괴의 사건인 것입니다그래서 제가 성전 정화사건’ 을 성전 파괴의 사건’ 이라고 명명해서 부른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일련의 사건 속에 창세전에 택함을 받은 하느님의 백성들을 품고 일을 하십니다그래서 저주받아 죽어 마땅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들이 하느님께서 인정하시는 참 성전으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그래서 성경은 우리 성도들도 성전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고전3:16) 16 여러분은 자신의 하느님의 성전이며 하느님의 성령께서 자기 안에 살아 계시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그런데 그 모든 것은 다 하느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것입니다우리는 옛 성전 안에서 자신의 유익을 위해 장사나 하는 장사치들처럼 계속 죄만 짓고 있었는데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우리에게 무상의 선물을 주신 것입니다그래서 17절에서 주님이 참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기도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祈禱는 하느님 앞에 항복한 자들이 하느님 내 힘으로는 아무 것 도 할 수 없으니 오직 하느님의 도우심만을 구합니다.’라는 고백이 기도인 것입니다우리의 성전 됨은 오직 은혜로선물로만 주어지기에 그 참 성전은 너희들의 노력이나 행위로 지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기도하는 집’ 이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마르11:17) 17 그리고 그들을 가르치시며 '성서에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그런데 너희는 이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구나!' 하고 나무라셨다.

그러니까 이제 새롭게 지어진 성전들은 하느님의 그 크신 은혜 앞에 납작 부복하고 그토록 엄청난 선물을 주신 하느님께 터져 나오는 감사로 예배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그러니까 당연히 그의 삶은 하느님을 목표하게 되게 되는 것이고 하느님이 주시는 어떤 것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그런데 대 제사장들을 비롯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제사를 드리러 성전을 찾은 유대인들이 한 짓은 뭡니까하느님을 섬기는 것이 자신들의 목적이 아니라 모두다 자기들의 유익을 위한 풍성한 나뭇잎파리 같은 종교 행위만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형상 회복이라는 정작 맺어야 할 열매는 맺지 못하고 엉뚱한 들만 열심히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그게 바로 잎사귀만 풍성한 저주받을 무화과나무인 것입니다예를 하나 들어드릴까요?


(역대하34:1-4) 1 요시야는 팔세에 왕위에 올라 예루살렘에서 삼십일년간 다스렸다. 2 그는 야훼의 눈에 들게 바른 정치를 폈다모든 일에 태조 다윗을 본받아 한 발짝도 어긋나지 않고 그대로 살았다. 3 왕위에 오른지 팔년 되던 해 아직 나이 어린 몸으로 그는 태조 다윗의 하느님을 찾기 시작하여 십이년에는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부정한 산당과 아세라 목상새긴 우상과 부어 만든 우상을 치워 없애 버리기 시작하였다. 4 그의 앞에서 사람들은 바알의 제단들을 뜯어내고 그 위에 올려놓았던 분향단들을 부수어 버렸다그는 아세라 목상과 새긴 우상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부수어 가루를 만들어 가지고 그 우상들에게 제사지내던 사람들의 무덤 위에 뿌렸고

요시야 왕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히즈키야 왕과 더불어 성전을 청결하게 하고 종교 개혁을 단행해서 모든 우상들을 찍어버린 보기드문 훌륭한 왕입니다그는 성전을 수리하다가 성전 안에서 야훼의 율법 책을 발견하고 그 책을 읽습니다요시야 왕은 더욱 깊이 회개를 하고 더 깊이 하느님께 순종하기로 결심을 하고 야훼의 과월절도 잘 지킵니다얼마나 잘 지켰는가가 성경에 나오지요?

(역대하35:18-19) 18 예언자 사무엘 때 이후로 과월절을 이렇게 지킨 일은 일찌기 없었다요시야가 사제들과 레위인들과 거기에 있는 온 유다인과 이스라엘인들과 예루살렘 시민들을 거느리고 지킨 이번 과월절 같은 축제는 일찌기 어느 왕도 지킨 일이 없었다. 19 이 과월절을 지킨 것은 요시야가 왕이 된 지 십 팔 년 되던 해의 일이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바로 그 때에 예레미야를 시켜서 그 성전 문을 막아서게 하십니다그리고 이렇게 외치게 하십니다.

(예레7:1-4) 1 야훼께서 예레미야에게 내리신 말씀이다. 2 '너는 야훼의 성전 대문에 가 서서, '야훼께 예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오는 유다 사람은 모두 야훼의 말씀을 들어라하고 이렇게 큰 소리로 일러 주어라. 3 '나 만군의 야훼가 이스라엘의 하느님으로서 말한다너희는 생활태도를 고쳐라그래야 나는 너희를 여기에서 살게 하리라. 4 이것은 야훼의 성전이다야훼의 성전이다야훼의 성전이다한다마는 그런 빈말을 믿어 안심하지 말고

지금 열심히 종교개혁을 하고 우상을 찍어 없애 버리고 과월절도 역사에 다시없을 만큼 잘 지키고 있는 시점에서 하느님이 그 성전을 가리켜 거짓말이라고 일갈하시는 것입니다왜 그렇게 말씀하시는 지가 그 아래 구절로 이어집니다.

(예레 7:5-11) 5 너희의 생활태도를 깨끗이 고쳐라너희 사이에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하여라. 6 유랑인과 고아와 과부를 억누르지 말라이곳에서 죄 없는 사람을 죽여 피를 흘리지 말라다른 신을 따라 가 재앙을 불러들이지 말라. 7 그래야 한 옛날에 너희 조상에게 길이 살라고 준 이 땅에서 너희를 살게 하리라. 8 그런데 너희는 그런 빈말만 믿어 안심하고 있다그러다가 모두 허사가 된다. 9 너희는 훔치고 죽이고 간음하고 위증하고 바알에게 분향하고 있다알지도 못하는 다른 신들을 따라 가고 있다. 10 그리고 나의 이름으로 불리는 이 성전으로 찾아 와 나의 앞에 나서서 살려 주셔서 고맙다고 하고는 또 갖가지 역겨운 짓을 그대로 하고 있으니, 11 나의 이름으로 불리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너희가 하는 짓을 나는 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내 말이니 잘 들어라.


하느님은 고아와 과부를 돌보지 않고이웃들 사이에 공의를 행하지 않고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지 않고 하는 겉만 번드르르한 종교 행위를 하는 자들을 거짓말하는 자도적이라고 부르십니다하느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반드시 다른 이들을 용서하고 이해하며 자비를 베푸는 삶을 살게 됩니다그래서 마르코복음의 무화과나무의 저주 사건 뒤에 뜬금없이 용서의 권고가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마르11:25) 25 너희가 일어서서 기도할 때에 어떤 사람과 서로 등진 일이 생각나거든 그를 용서하여라그래야만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실 것이다.'


정확하게 원문에 맞게 다시 번역을 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가 너희를 용서하실 때에(동시에)너희도 다른 이의 혐의를 용서 한다.‘ 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용서의 삶자비의 삶이해의 삶이 아닌 자기들의 욕심이나 탐욕을 어떤 우상에게 투사시켜 놓고 그 것을 하느님이라 부르며 그 욕심과 탐심을 만족시켜 달라고 아우성치는 자들은 아무리 열심히 종교 행위를 한다고 해도 모두 절도요 강도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예배를 하고 종교 행위를 한다는 것은 하느님은 나의 주인 이십니다라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그 것은 주인이 주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만족스럽게 받겠다는 의미인 것입니다그리고 주인이 시키는 것에 전심을 다해 순종하겠다는 의지의 결단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인이 하라는 것을 할 것이며 주인이 하지 말라는 것은 안하고 주인이 기뻐하시는 것을 나의 기쁨으로 삼겠다고 결심하는 것이 우리의 예배이며 종교 행위 여야 하는 것입니다그런데 여전히 인생의 중심에 내가 앉아서 나의 유익만을 구하기 위해 종교 행위를 하는 자들은 아직까지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라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디모전6:3-5) 3 다른 교리를 가르치거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건전한 말씀을 받아 들이지 않거나 경건한 생활원칙을 다르지 않는 사람은 잔뜩 교만해져서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쓸 데 없는 질문과 토론에만 미친듯이 열중합니다그런 데서 시기와 다툼과 비방과 못된 의심과 분쟁이 생깁니다마음이 썩고 진리를 잃어서 종교를 한낱 이득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분쟁이 있게 마련입니다.


아직 하느님을 만나지 못한 타락한 자들은 경건조차도 이익의 재료로 삼는다는 것입니다이 중에는 혹시 그런 분 안 계신가요? ‘내가 성당에 나가 줌으로내가 봉사해 줌으로내가 헌금해 줌으로 하느님이 나에게 더 좋은 것으로 보상해 주실 거야‘ 라고 기대하는 분 안계십니까만일 그렇다면 여러분은 도적이고강도이며이곳은 강도의 소굴(掘穴)일 뿐입니다.

여러분은 왜 성당에 나오십니까정말 하느님이 좋아서 그 분의 은혜가 감사해서 하느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삶이 무엇인가를 배우고 그 하느님 나라는 얼마나 아름답고 황홀한 것인지를 배우기 위해 나오는 것입니까아니면 하느님의 이름은 부르지만 그 하느님이 신앙의 중심이 아니라 나의 이익을 위해 하느님의 힘을 빌리기 위해 나오는 것입니까?


(출애32:1) 1 백성은 모세가 오래도록 산에서 내려오지 않자아론에게 몰려와 청하였다. '어서 우리를 앞장설 신을 만들어 주시오우리를 에짚트에서 데려 온 그 어른 모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위하여 부르는 을 모두 우상(偶像)이라고 합니다신은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을 위해 우리가 존재하는 것입니다이스라엘은 하느님을 섬긴다고 했지만 그들이 섬긴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풍요와 다산을 줄 힘이 센 어떤 존재를 쫒은 것입니다그게 하느님이어도 좋고 바알이라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생각하고기대하고 있던 자신들 마음속의 하느님을 겉으로 표현해 낸 것이 바로 금송아지였던 것입니다그 금송아지는 그들이 이집트에서 섬기던 아피스의 암소와 하돌의 황소였으며 그들이 앞으로 들어가 살게 될 가나안 지방의 풍요와 다산의 신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 마음속의 하느님은 풍요와 다산을 주는 그런 존재였지 자신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물하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 아니었던 것입니다그래서 그들은 그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이가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낸 하느님이다라고 부른 것입니다.


히즈기야 왕이 신당과 우상들을 제거할 때 눈에 띠었던 것이 느후스단이라는 것입니다그 것은 모세가 광야에서 만들었던 놋 뱀이었습니다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느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히즈기야 왕 때까지 그 놋 뱀을 함께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 그 놋 뱀을 섬겼을까요그 놋 뱀은 병을 낫게 해 주었던 신통한 것이었거든요그래서 그들은 하느님을 섬기면서 병을 낫게 해 주는 놋 뱀도 놓지 못했던 것입니다인간들을 그렇습니다하느님의 하느님 되심 앞에 굴복하고 그 은혜 앞에 감사하여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이윤추구에 도움이 될 어떤 우상을 만들어 놓고 그 것을 하느님이라고 부르며 종교 행위를 하는 자들이 바로 타락 한 인간들인 것입니다.

하느님은 그런 것은 당장 찍어 버리라 하셨습니다그렇게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하느님께 제사하고 제물을 바치는 행위를 하느님은 뒤집어엎어 버리시는 것입니다주님은 그런 고기 필요 없으니까 그런 것은 너희나 먹고 너희는 제발 내 말을 들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레7:21-23) 21 나 만군의 야훼가 이스라엘의 하느님으로서 선언한다친교제에다가 번제를 보태어 바치고그 고기를 처먹어라. 22 너희 조상들을 에집트에서 데려 내 올 때내가 번제와 친교제를 바치라고 한 번이라도 시킨 일이 있더냐? 23 나는 내 말을 들으라고만 하였다그래야 내가 너희 하느님이 되고너희는 나의 백성이 된다고 하였다잘되려거든 내가 명하는 길을 따라 걸어야 한다고 하였을 뿐이다.


주님은 급기야 그러한 이스라엘의 성전 문을 닫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말라1:6-10) 6 아들은 아비를 어렵게 알고 종은 주인을 어렵게 아는 법인데 나를 아비로 어렵게 아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나를 주인으로 어렵게 아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나 만군의 야훼가 너희 사제들에게 말 하였다너희 사제라는 것들은 내 이름을 함부로 부르고 있다.' 그랬더니너희는 뻔뻔스럽게도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하느님 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다니요당치도 않습니다.' 7 너희는 제단 위에 더러운 빵을 바치면서도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제단을 더럽히다니요당치도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야훼의 젯상쯤이야 아무러면 어떠냐고 하는구나. 8 눈이 먼 짐승을 제단에 바치면서도 잘못이 없다는 말이냐절뚝거리거나 병든 짐승을 바치면서도 잘못이 없다는 말이냐그런 것을 너희 고관에게 바쳐 보아라나 만군의 야훼가 말한다그러고도 융성한 대접을 받을 것 같으냐? 9 그 따위를 바치면서 긍휼을 빈다고 너희를 곱게 보아 주겠느냐만군의 야훼가 말한다. 10 너희는 내 제단에 공연히 불을 피운다그러지 못하도록 아예 문을 닫아걸었으면 좋겠구나너희가 하는 짓이 나는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다만군의 야훼가 말한다너희가 바치는 제물이 나는 조금도 달갑지 않다.


그래서 하느님은 그 잎사귀만 풍성한 성전에 하느님의 아들을 보내셔서 그 성전을 닫으시고 새 성전으로 재창조하실 것을 천명하시고 구약을 닫으시는 것입니다.

(말라3:1) 1 '보아라나 이제 특사를 보내어 나의 행차 길을 닦으리라그는 너희가 애타게 기다리는 너희의 상전이다그가 곧 자기 궁궐에 나타나리라너희는 그가 와서 계약을 맺어 주기를 기다리지 않느냐보아라이제 그가 온다만군의 야훼가 말한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그 하느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입니다그리고 가차 없이 그 잎사귀만 풍성한 옛 성전을 파괴해 버리시는 것입니다우리가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이 것입니다우리는 정말 하느님이 좋아 하느님을 섬기고 있습니까아니면 나의 배를 위해 하느님을 이용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교가 하느님의 형상 회복이라는 본질을 놓치게 되면 그 때부터 형식에 치우치게 되고 형식에 매달리게 되고 형식만을 강조하게 되는 것입니다그래서 교회에 온갖 프로그램으로 치장을 해야 하고 자신들이 잘 가고 있다는 것을 고작 외형적인 성장으로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를 늘리는데 몰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것은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종교의 이름으로 자아성취에 몰두하는 것일 뿐입니다신앙은 自我成就가 아니라 자기 否認입니다하느님의 은혜를 알고 그 은혜에 감사하여 자기가 부인될 때 우리에게서는 하느님의 형상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그게 그리스도교의 본질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며 세상의 힘을 구하는 것은 나 하느님 없이 살게 해 주세요라는 말과 똑같은 것입니다우리의 힘은 오직 하느님이셔야 하는 것입니다하느님 말고 다른 힘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지금 하느님을 자기의 인생에서 몰아내고 싶어 안달을 부리는 사람인 것입니다.

내가 나를 불 태워 내 이웃과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지 내가 밖으로부터 무언가를 얻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신앙이 아닌 것입니다그러한 옛 성전의 삶은 주님 다시 오시는 날 반드시 파괴되고 말 것입니다오늘부터라도 하느님의 은혜 앞에 부복하여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며 하느님만을 바라며 사는 새 성전의 삶을 살기 바랍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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